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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공원에서 (고영민 시집)
사슴공원에서 (고영민 시집)
저자 : 고영민
출판사 : 창비
출판년 : 2012
ISBN : 9788936423544

책소개

전통 서정시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편들!

고영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공원에서』. 2002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2년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자신만의 시세계를 펼쳐온 저자의 이번 시집은 두 번째 시집이후 3년 만에 펴낸 시집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과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풋풋한 서정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에서 오는 그윽한 깊이를 더하고 농익은 감수성으로 삶의 풍경을 노래한 ‘극치’, ‘장작 목회’, ‘친정’, ‘끼니’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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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순정과 연민을 녹인 따뜻하고 유쾌한 상상력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부드러운 시정(詩情) 속에 유머와 해학이 어우러진 개성 있는 시세계를 펼쳐온 고영민 시인의 세번째 시집 『사슴공원에서』가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비 2009)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과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농익은 감수성으로 삶의 풍경을 노래한다. 요즘 시단에서 흔한 엽기적인 상상력과 관념적인 언어유희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독특한 발상과 투명하고 명징한 언어의 두레박으로 일상에서 길어올린 소박한 시편들이 가슴속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절실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영민의 시는 순박하고 소탈하다. “12남매 중 막내”인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보다 먼저 간 넷째 형, 그리고 늙으신 어머니를 몸에 들이고 딱 그만큼의 시를 몸 밖으로 꺼내놓”(윤성학, 발문)는다.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는 특히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셨”다가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밥 한 그릇을 드시고 “다음날 돌아가”(「끼니」)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지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문득 내 살던 집의 팽나무가 보고 싶은 시간”(「공전」),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형을 마음속으로 불러내 애틋한 그리움에 젖는다.

형이 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죽은 아들을 살려 떠메고/함께 웃으면서 왔으면 좋겠다/봐라 아버지란 자고로 이런 거다, 너털웃음에 큰소리를 치며/시끄럽게 왔으면 좋겠다//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은 다시 살아서 온다/달큰한 아버지의 술냄새처럼/꽃들은 온다/비틀비틀 온다/산 절로 물 절로, 흥얼흥얼 고래고래/노래를 부르며 온다(「마중」 부분)

여전히 젊은 시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어느덧 중년에 이른 덕분일까. 시인의 시는 기존의 풋풋한 서정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에서 오는 그윽한 깊이마저 더하게 되었다. 시인은 “어둠이 혼자서 성큼성큼 걸어오”(「저녁 밥상을 물린 뒤」)는 “뿌리 젖은,/이승의 저녁”(「한적한 흙」) 무렵, “당신을 땅에 묻고 와 내리 사흘 밤낮을” 자고 “일어나 반나절을 울고/다시 또 사흘 밤낮을 잤”(「망종(芒種)」)던 기억을 되새기며 애잔한 슬픔에 잠긴다. 자신을 일러 “눈물 많은 소”(「호미」)라고 말하는 시인은 “울고 싶을 때 울고”(「손등」),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중얼거”(「오지」)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을 기어이 일상의 남루함 속에서 이끌어가야만 하는 우리네 인생, 그것이 슬픔과 고독을 불러온다는 것을 이제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그것들을 애써 부정하고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 듯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새와 나무와 꽃의 “몸을 빌려” 슬픔을 다독인다.

어젯밤에는 잠든 사이/양철지붕을 빌려/비가 한참을 울다 갔다/애가 울면 아내는/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젖을 꺼낸다//나는 여태껏/매미가 우는 줄 알았다/나무가 매미의 몸을 빌려 울고 있었다/울음이 다하면/얼른 다른 나무 그늘에 붙어/대신 또 몸으로/울어주고 있었다(「빌려 울다」 부분)

그는 딸의 이야기를 시에 종종 담는다. 그에게 있어 딸은 일상 속에서 문득 소박한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딸을 만나 그 시절을 함께한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추억하는 계기가 되고, 생에의 슬픔과 고단함은 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푸릇푸릇한 희망으로 진화한다. 나아가 시인은 그러한 전환 속에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어떤 지순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민물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약간 미지근한/물살이 세지 않은/입이 둥근 물고기가 모여 사는//(…)//어탕이 끓는 동안/깜박 잠이 든 세살 딸애가/자면서 웃는다/오후의 볕이 기우는 사이,/어디를 갔다 오느냐/이제 막 민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아이야(「민물」 부분)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흰죽」)라고 말하는 시인의 소박한 심성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버림받은 후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주인을 기다리”며 “끝끝내 버림받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개”를 지켜보며 시인은 “모든 과오는 네가 아닌 나에게서/비롯되었다는”(「꼬리는 개를 흔들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을 따듯한 연민의 정으로 어루만지며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마음 가는 대로/열이 되”(「수필」)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길가 돌멩이 하나를 골라/발로 차면서 왔다/저만치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집에 당도하여/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그 돌멩이/모난 눈으로/나를 멀끔히 쳐다본다/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차여/끌려온 돌멩이 하나/책임 못 질 돌멩이를/집 앞까지 데려왔다(「동행」 전문)

무척이나 애틋한 연시(聯詩)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사슴공원에서』를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시인은 주변 대상을 연민하고 어루만지는 순정한 마음과,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자 하는 소탈한 바람, 사랑하는 이들과 나눈 기억을 현재화하는 탁월한 감수성 등을 기반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그 속에 녹록지 않은 깊이를 간직한 연시들을 선보인다.

공원을 한바퀴 도는 동안/계절이 바뀌었다/어디까지가 여름이고 어디부터가 가을일까/(…)/젊은 어느날의 책 속처럼 지금도/사슴공원 어딘가에선/사랑이 생기고 비가 내리고/멀리 빈 들판엔 철새가 돌아온다/누가 구름을 사라지게 하고/비를 멈추게 할 수 있나/투명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담아 들고/한 소년이 급히 어딘가로/달려간다/(…)/사슴 울음소리를 들으며/나도 서둘러 당신에게 가야 한다/사랑이 식기 전에/밥이 식기 전에(「사슴공원에서」 부분)

올해로 등단 10년째인 고영민 시인은 제7회 지리산문학상(2012)을 수상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시적 성취를 평가받으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고영민의 시만큼 서정시의 문법에 정통한 사례도 드물 것”(이영광 시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는”(손택수 시인) 깊은 성찰과 삶에 밀착된 섬세하고 농밀한 언어로 묵묵히 ‘공손한’ 시의 밭을 일구어나가는 그의 손길에서 전통 서정시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개미가 흙을 물어와/하루종일 둑방을 쌓는 것/금낭화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길게 몇번을 우는 것/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늙은 소나무 밑에/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노랗게 쌓여 있는 것/마당에 한 무리 잠자리떼가 몰려와/어디에 앉지도 않고 빙빙 바지랑대 주위를 도는 것/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늙은 어머니가 묵정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어스름녘,/고갯마루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우체부가 밭둑을 질러/우리 집 쪽으로/걸어오는 것(「극치」 전문)

추천사
“누가 목줄을 당기던 바람을 보았다 했나”(「거웃」). 시에 목숨 걸었다 말하는 사람들이여, 목은 이렇게 거는 거다. 아무도 모르게, 바람만이 알 듯 모르게. 눈물과 미소와 햇살과 사랑은 스미고 흐르는 것. 시 또한 떨림이 되어 가슴에 스미고 미소가 되어 가만 입가에 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꽃이 피고 지는 일은 꽃도 모르는 일, 시가 태어나고 시가 사라지는 일도 시인은 모르는 일. 피고 지는 순간, 다만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꽃과 시와 시인의 책무.
책의 표지만 덮으면 도무지 너나 구별 없는 시단에서 고영민의 시는 ‘꽃 피는 형식’과 ‘똥 싸는 내용’을 간직한 채 홀로 도저하다. 그의 시는 두서없는 댓바람에 휘둘리지 않는다. “먹어둬!/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끼니」). 그의 시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피어나며, 그가 “사랑이 식기 전에/밥이 식기 전에”(「사슴공원에서」) 닿고자 하는 시작(詩作)의 궁극엔 속 깊고 연약한 것들의 떨림과 그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그는 묵은 간장처럼 “어떤 안간힘으로/칠흑의 어둠을 다 긁어모아”(「간장」)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짭조름한 시의 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박후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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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제1부
거웃 / 극치 / 공전 / 망종(芒種) / 장작 목회 / 손등 / 친정 / 수필 / 끼니 / 원두 / 어둠이 올 때 / 입술 / 저녁 밥상을 물린 뒤 / 국립중앙도서관 / 하지(夏至) / 꼬리는 개를 흔들고 / 독경 / 한적한 흙 / 마흔 / 회감(回感)

제2부
구례 산동 / 독서 / 모란꽃 그림 / 흰죽 / 호미 / 찔레나무 / 수국 / 물금 / 소가 여물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 통정 / 방언 / 모래 / 물배 / 천장 / 오늘 한 일이라곤 그저 빗속에 군자란 화분을 / 내놓은 것이 전부 / 생장 / 벽돌 한장 / 그늘 / 오지 / 감꽃 / 마중 / 단풍을 말하기 전

제3부
통증 / 반음계 / 새 / 간장 / 질감 / 도마도 / 꽃 조문 / 동행 / 비의 성분 / 붉은 이불 / 민물 / 사슴공원에서 / 빌려 울다 / 물웅덩이 / 눈물소금 / 그림자 / 잔상 / 가을장마 / 피 묻은 손으로 / 문장

발문|윤성학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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