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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박성우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박성우 산문집)
저자 : 박성우
출판사 : 창비
출판년 : 2015
ISBN : 9788936472733

책소개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성우 시인이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에서 삶에 힘이 되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풍경을 오롯이 기록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각별한 마음을 보낸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담쟁이 창가에서 보내온'시인의 순정'
순한 쪽으로, 정직한 쪽으로, 시큰하게 아름다운 쪽으로


박성우 시인은 '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는 마을에 작업실을 얻어 마당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착해빠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업실 창가에 앉아 일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시인의 순정'을 담은 사진엽서를 보내왔다.(이 엽서들은 2014년 4월부터 일년여간 창비문학블로그에 연재되었다.) 엽서에는 작업실이 있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수침동(종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인은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일궈 살아가는지, 그 안에 쿡쿡 웃음이 나고 가슴이 저릿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고 또 소중한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들로 꾹꾹 눌러 썼다. 그사이 시인은 대학교수 일을 스스로 그만두고 더 열심히 동네 마실을 다니며 아랫녘의 아름다운 사계와 숨어 있는 들꽃,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과 주름진 할매들의 손길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등의 시집으로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박성우 시인은 삶이 묻어나는 따뜻하고 진솔한 시편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소년시'에 눈 돌려 청소년들을 만나 고민과 갈등을 함께 나누었고, 그 결실로 첫번째 청소년시집 『난 빨강』을 선보인 바 있다. 박성우 시의 바탕에는 이렇듯 직접 만나고 교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소박한 삶이 깃들어 있다. 이번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에서도 시인은 삶에 힘이 되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풍경을 오롯이 기록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각별한 마음을 보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아 더욱 특별한 사람들이었고 잘나지 않아 더욱 잘난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알되 결코 안주하지 않고 블루베리와 먹감과 콩대와 아궁이와 금낭화와 구절초와 옥수숫대와 세월호와 대설 아침과 같은 시간을 제각기 함께하며 순박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한발 비켜선 자리에서 각박한 세상의 중심을 조금은 '따순'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도 카메라만 꺼내면 금시 표정이 어색해지던 내 사람들, 사랑하고 응원한다.(시인의 말, 270-271면)

백중날 같이 일하고 같이 모시개떡을 쪄 먹고 같이 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투판에서 팔천원을 잃고 울었던 블루베리 농사꾼 갑선이, 한때 넓은 집에서 편히 살았지만 지금은 '냉장고 없이' 살아도 불편함이 없는 온겸이네, 서울처녀 김유리 과장을 듬직한 '굳은살 박인 손'으로 꼬신 지고지순한 시골총각 순기 형님, 오락실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바로 살림을 차린 승용이, 전교생이 다섯명 중에 '거의' 일등만 한다는 똑똑한 열살 소년 가윤이, 동네 벚꽃 구경하러 왔다가 삼개월 만에 결혼한 성준이네 부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마을에서 '세월호 자전거'를 모는 팽나무집 진섭이 형님, 상례마을 할매 집 수리를 위해 대설 아침에 다 같이 모인 산내면 청년들, 시인의 '엄니' '큰어매' '딸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먹먹해지다가도 시인이 직접 찍은 물기를 머금은 풀잎들, 꽃이 흐드러지고 눈이 덮인 사계절 풍경을 바라볼 때면 답답한 방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연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모종에 앉아 모시를 다듬는 할매는 셋이다. 백국형 할매(남동떡, 88)와 이야순 할매(마장이떡, 88) 그리고 양봉순 할매(가춘떡, 92)가 새색시 같은 얼굴로 날랜 손을 놀린다.
“핫따매, 뭔 모시를 이렇게나 많이 다듬는다요?”
“뭐 헐라고 다듬기는 백중잉게 모시개떡 쪄 묵을라고 그라제.”
“하이고미, 모시개떡 묵다가 배 터져 죽겄는디요.”
“긍가? 안 죽을 맹큼만 묵어야제.”
할매들 손을 거친 모시는 모싯대와 모싯잎으로 간결하게 나뉜다.
모싯잎은 장작불에 남실남실 삶아지고, 백중 울력을 마치고 온 사람들은 마을회관 앞에서 백중 굿판을 벌인다.(26면)

가진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온겸이네. 온겸이 아빠 김준규 씨는 가족이 매일매일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돈벌이를 위한 돈벌이는 안한다'가 원칙이라고 했다. 온겸이 아빠는 한때 잘나가는 사장이기도 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빚에 몰린 빚쟁이이기도 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빚을 갚고 나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었다. 돈을 손에 쥐어도 그런 맘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김준규 씨는 '살아온 이유'를 떠올려보기도 했고 '살아갈 이유'를 궁리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54면)

꼭, 엄니의 눈물방울을 모아놓은 것 같은 콩. 늙은 엄니가 여태 살면서 흘린 눈물을 모으면 몇가마니나 될까. 1937년에 태어난 울 엄니는 올해로 일흔아홉이다. 아부지와 결혼해서 논일하고 밭일하고 베 짜고 품 팔다가 쉰네살에 내 모교이기도 한 대학에 청소부로 들어가 일흔한살까지 일하셨다. 엄니는 호적에 이름이 다섯해나 늦게 올라가서 일흔이 넘도록 일을 하신 뒤에야 고향 쪽으로 돌아오셨다. '김 여사는 작대기 작작 끌고 다님서 한다고 해도 그만한다고 할 때까지는 하시라'고 말하던 청소용역회사 이사장님의 말은 분명 고마운 말이었으나 내겐 어지간히 아픈 말이기도 했다.
(…)
“그나저나 엄니, 사진 좀 박게 쌍그라쓰 끼고 콩 앞이서 한번 웃어보쇼잉.”
“일케 웃으면 쓰겄냐.”(178-187면)

박성우 시인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야말로 '나답게' 살아가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눈여겨보면서 “번지르르한 겉보다는 늘어가는 굳은살로 세상 사는 이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새삼 크고 귀하고 소중하다”(12면)고 말한다. 시인이 귀 기울인 수침동 마을과 이웃 동네 사람들의 이 구구한 사연들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바탕이고, 앞으로의 우리를 '우리답게' 살아가게 할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쉬는, 우리 마을 사람들 / 그대 안의 블루베리, 갑선이 / 온통 연둣빛, 온겸이네 / 오토바이 발로 차며 울어봤니? 현기 형 / 해바라기 씨(氏), 종화 성 / 라삐, 안녕! / 규연이의 그림일기 / 자두나무 총각, 대혁 씨 / 전동차 타고 달리는 고양이, 동한이 / 내 친구, 점례 엄니 / 잊지 않을게요, 사랑으로! / 팽나무집, 집섭이 형님 / 페인트칠과 옥수수 편지 / 콩나물처럼, 김종대와 엄군자 / 사내마을 열살 소년, 가윤이 / 행복해서 행복한, 재원이네 / 야생화 키우는 야생화, 병희 / 나는 아빠다! / 콩 고르는 울 엄니, 김정자 씨 / 소 키우는 사람 여기 있소, 위순기! / 아내 생일을 기다리는, 승용이 / 아빠 교과서 남편 교과서, 필수 씨 / 울 큰어매, 김영례 씨 / 그 많던 고구마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성준이 / 구철초 축제 마당, 수침동 사람들 / 엄동설한 바람막이, 산내면 청년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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