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본문

대학의 기업화 (몰락하는 대학에 관하여)
대학의 기업화 (몰락하는 대학에 관하여)
저자 : 고부응
출판사 : 한울
출판년 : 2018
ISBN : 9788946070738

책소개

자본에 의해 몰락하고 있는 대학에 관한 고찰,
공공성이 이루어지는 대학을 위한 제언

오늘날 대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아마도 대학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일 것이다. 자본에 지배되고 자본에 복무하는 미국식 대학이 각국에 이식되었고 이제 대학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 세계적으로 ‘대학의 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가장 야만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대학이다.
대학이라는 말은 원래 학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학문공동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 한국 대학에는 공동체도 없고 공동체 의식도 없다. 학생의 공부는 기업체 취업을 위한 것이 되었고, 교수의 연구는 성과 업적을 올리기 위한 논문 편수 채우기가 되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위상을 스스로 저버리며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술책을 대학에 도입하고,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에 관한 책무를 방기한다. 신자유주의의 기조 아래에서 대학 내외부 주체들은 각자도생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대학의 기업화를 이끄는 것은 사립대학제도, 대학수업료제도이며, 이것이 대학순위평가,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관리, 교수업적평가, 인문학의 쇠퇴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책은 근대 대학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국 대학의 기업화 양상을 기점으로 하여 한국 대학의 기업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자율적 학문공동체라는 대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업료 없는 대학, 숫자를 추구하지 않는 대학, 자치가 이루어지는 대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미몽에 빠진 상아탑’을 목도한 대학교수의 외침
자본에 의해 몰락하고 있는 대학을 고찰하다

흔히들 대학을 ‘상아탑’으로 비유하곤 했다. 이 같은 비유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이에 대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세속적인 관심을 끊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는 곳인 상아탑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오늘날 대학은 세속의 최전선에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며,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대학’이라는 말은 원래 학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학문공동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대학에는 공동체도 없고 공동체 의식도 없다. 학생의 공부는 기업체 취업을 위한 것이 되었고, 교수의 연구는 성과 업적을 올리기 위한 논문 편수 채우기가 되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위상을 스스로 저버리며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술책을 대학에 도입하고,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에 관한 책무를 방기한다. 신자유주의의 기조 아래에서 대학 내외부 주체들은 각자도생에만 골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대학의 현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나름의 명분으로 이 상황을 그저 바라보거나 외면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고부응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학교가 재벌 그룹에 인수되면서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목도했고, 더 이상 대학의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은 그동안 지속해왔던 공부의 작은 결실이다. 고부응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현재 한국 대학이 처한 암담한 상황에 맞서, 공부를 본업으로 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성의 비관주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의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중요 목적이다. 그렇지만 대학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은 아니다. 참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모색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람시가 말하는 비관과 낙관의 변증법적 지양을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은 현실에 대한 냉혹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냉혹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오늘날 한국 대학이 처한 참혹한 현실은 바로 ‘대학의 기업화’다.

오늘날 대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아마도 대학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일 것이다. 자본에 지배되고 자본에 복무하는 미국식 대학이 각국에 이식되었고 이제 대학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 세계적으로 ‘대학의 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가장 야만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대학이다. 저자는 현재 대학이 “끔직한 미몽의 상태”에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쇠퇴기에 사회 자체가 지옥 같은 고통의 장이 되듯이 대학 역시 암흑의 세계에서 방향을 잃고 서서히 몰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 대학은 ‘왜’, ‘어떻게’ 기업화되었나
대학의 역사, 미국 대학의 기업화를 바탕으로 분석한 한국 대학의 기업화

책의 전반부에서는 대학의 이념에 초점을 두고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대학의 역사를 개관한다. 논의가 상세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은 현대 대학의 모델인 근대 대학이다. 근대 대학은 칸트가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국가권력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그 사상적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학문은 학문 자체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었다. 이 사상을 이어받은 훔볼트는 학문의 자유를 구현하는 베를린훔볼트대학교를 설립했다. 이 대학은 학문적 성과로 근현대 대학의 모델이 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학문의 성지였던 근대 대학과 현대 대학을 대조하여 보여줌으로써 기업화로 인해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현재의 대학을 더욱 극명하게 나타낸다.
이를 바탕으로 책의 중반부에서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한국 대학의 기업화를 살피기 위해서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를 우선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을 규범으로 삼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의 기업화 양상을 추종하면서도 기업화의 정도는 훨씬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학은 초창기부터 대부분 사립대학 형태로 운영되어왔고, 학생등록금과 기업 출연 지원금이 학교운영비의 큰 몫을 차지한다. 대학 운영진은 대학의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 대학이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거나 그 자체로 기업에 되어야 했던 역사적·사회적 조건이다. 미국 대학의 기업화는 일반대학의 기업화, 영리 대학과 기업 대학의 설립과 운영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대학 자체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거나 기업의 하청 연구기관 또는 직업훈련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대학은 바로 이러한 미국 대학을 추종하고 있다.
한국 대학도 처음부터 역사적·사회적으로 기업화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시작이 사립대학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의 기업화는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되면서 체계화되고 본격화된다. 관련 정책과 법안으로 대학설립준칙주의, 대학정원 자율화, 국립대학 민영화, 총장직선제 폐지, 교수 계약제, 등록금 자율화, 교육시장 개방, 대학평가 등이 도입되거나 바람직한 안으로 제시되었다.
사립대학 운영자들은 영리 추구를 위한 대학 운영을 합법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 첫째가 ‘사학청산법’ 추진이다. 둘째는 영리 대학 설립 추진이다. 마지막으로 대학 기업화의 조금 더 완벽한 형태는 일반대학을 기업의 사내 대학으로 전환하는 데서 나타난다. 한국 대학에서 기업화가 태동한 지 20년 정도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 문제가 거의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더하다는 것이다.

공공성이 이루어지는 대학을 위한 제언
대학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의 대학을 말하다

자본주의적 시장 원리는 대학에 침투해 대학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의 모든 운영은 자본주의의 방식을 따른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가 시장의 상품과 같게 되고, 대학 시설은 상품 판매를 위한 매장이 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이론적 배경과 전개 양상을 신자유주의 국가정책, 지식 기반 경제로서의 신경제, 지구화로 나누어 분석한다. 신자유주의 국가정책에 의해 대학은 돈을 벌기 위한 기업으로 변한다. 지식 기반 경제라고 불리는 신경제는 대학의 지식을 기업을 위한 상품으로 변하게 한다. 지구화는 유학생을 유치하거나 해외에 대학을 설립함으로써 대학의 수입원을 확보하게 한다.
대학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 자본주의는 1995년의 5·31 교육개혁으로 본격화되었으며, 현재 진행 중인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사업자의 이익을 보장하게 하면서 대학을 기업을 위한 기관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대학 자본주의는 공공재로서의 지식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유린하며, 이에 따라 대학의 공적 기능을 파괴하고 있다. 즉, 대학 자본주의로 인해 대학의 공공성은 소멸되었고, “고등교육법”이 명시하는 ‘인격을 도야하고……국가와 인류 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은 사라지고 지극히 소수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그림자만 남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 대학에서 기업화와 자본주의가 세를 떨쳐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으로 사립대학제도와 대학수업료제도를 우선 꼽는다. 이것이 대학순위평가,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관리, 교수업적평가, 인문학의 쇠퇴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지적하며 이들에 대해 정밀 분석한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상적인 대학을 회복하거나 만들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상적인 대학은 숫자로 대학 스스로를, 학생을, 교수를 평가하지 않는 대학이다. 학문 탐구의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대학, 학문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대학을 회복하거나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또한 정상적인 대학은 대학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의 자치로 운영되는 대학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료 없는 대학이다. 교육과 지식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육이 무상이 되어야 지식과 교육의 공공성이 확보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학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시끄러운 싸움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대학 자본주의에 맞서는, 온갖 꽃이 같이 피고 온갖 사람이 각기 주장을 하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의 대학을 꿈꾼다.

[책속으로 추가]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으로 대학의 연구가 기업을 위한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학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정책이지만, 응용과학 대학 네트워크의 경우처럼 지구화 시대에 국가 단위를 넘어서 기업을 위한 지식을 생산해야 함을 주장하게 될 때 이제 명분은 국가가 아니라 유럽이 된다. 유럽 국가에 속한 대학들만으로 기업을 위한 연구 네트워크가 구성될 때는 유럽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지만, 유럽의 대학과 미국의 대학이 협력 체제를 구축할 때는 서구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의 대학과 유럽의 대학, 미국의 대학이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전 세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듯하다. 응용과학 대학 네트워크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이 기업과 연계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력과 지식을 산출해야 한다는 말이 사실상 허구이며, 국가의 이익과는 관계없는 기업자본의 이익을 위해 대학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이라고 할 수 있다. _ 169쪽, ‘제5장 대학 자본주의: 대학 공공성의 소멸’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국가권력에 못지않게, 아니 사실은 더 심각하게 자본권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학문의 자유 침해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 또는 특정 사안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그 결과의 진술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자본권력에 의한 학문의 자유 침해는 대학과 학문 자체를 자본권력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자본권력은 국가권력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특정 사안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탐구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교수를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에게 자본의 가치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어 학문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훼손한다. _ 186쪽, ‘제6장 대학의 기업화와 학문의 자유’

기업식 관리 체제가 도입된 대학에서 운영진은 교수의 모든 학문적 결과물을 교수의 연구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교수의 연구 결과는 논문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신문 같은 대중매체에 기고문 형태로 실리는 학문 탐구 결과는 연구업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논문이라고 해도 해당 논문이 실린 학술지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 목록이나 미국의 정보산업 기업인 톰슨 로이터스(Thomson Reuters)의 JCR 학술지 목록에 포함되지 않으면 그 논문은 교수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학술논문이 게재될 수 있는 학술지의 목록이 정해져 있고, 그런 학술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기술된 학문적 논의만이 교수의 학문적 성과로 인정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연구 성과로 인정되는 대학교수의 연구가 푸코가 말하는 담론의 질서에 예속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_ 231~232쪽, ‘제7장 대학의 기업식 관리 체제’

대학이 많지 않던 시절에 대학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으며 일반인 대부분은 대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학이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상품으로 볼 수 있더라도 대규모 시장을 형성하는 상품은 아니었다. 미국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군인원호법’의 도입으로, 한국의 경우는 1980년대 졸업정원제의 도입과 1990년대 대학설립준칙주의의 도입으로 대학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 이때 대학은 엘리트 계층을 위한 교육기관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변모한다. 대학이 대중을 위한 교육기관이 되면서 대학 교육은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약해지고 더 나은 보수와 지위를 위한 투자라는 관점이 확대된다. 이에 따라 대학은 대규모 시장을 형성하는 투자 상품이 되었다. 이 같은 상품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상품 설명이 필요한데, 미래 고객인 예비 학생이나 그들의 학부모를 위한 대학 상품 설명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대학순위평가다. _ 253쪽, ‘제8장 대학순위평가’

국가의 학문 활동 지원은 지적으로 성숙한 국민을 형성해 더 나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가의 학문 활동 지원은 보편적이고 일반 국민을 위한 학문 활동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구현하려는 학문 지원은 제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영학이나 공학 같은 기업 이익을 실현하는 학문 활동에 대해서는 국가가 굳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분야는 국가가 지원하지 않더라도 기업을 위한 제품 개발과 기업 경영전략 구축의 필요성 때문에 기업이 지원하게 되어 있다. 국가의 학문 활동 지원은 특수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기본 학문인 인문학, 자연과학, 기반 사회과학(사회학, 정치학 등) 분야에 중점을 두어 지원해야 한다. _ 294쪽 ‘제9장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관리’
시장 원리가 학술논문에, 더 일반적인 말을 쓰면, 지식에 적용될 때 학문은 위기에 처한다. 인용 빈도가 높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지식 체계 또는 기존 지식의 생산, 전달, 수용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식의 순환은 지식 담론의 장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용 빈도가 높은 논문이란 결국 동시대의 많은 학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루었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학문적 토대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만 동시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새로운 주제를 탐구하는 논문은 인용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런 면에서 인용 빈도가 높다는 것이 좋은 논문이라는 뜻이 되지도 않고 인용 빈도가 낮다고 좋지 않은 논문이라고 평가될 수도 없다. 사실 교수 연구업적평가에서 작용하는 인용 빈도는 해당 교수가 쓴 논문의 인용 빈도도 아니다. 그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영향력 지수다. 따라서 교수들은 다른 학자들과 학문적 교류가 될 만한 논문을 쓰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어떻게 게재할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_ 321쪽 ‘제10장 교수업적평가와 학술논문’

대학의 인문학자들은 이제 인문학을 위해,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을 위해, 더 나아가 조금 더 건전한 지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위해 인문학 전문가임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이제 대학의 인문학자는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아마추어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아마추어란 애호가, 연인을 뜻하는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한 말로,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아마추어들이 갖는 아마추어 정신(amateurism)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에 따르면,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면서 연결을 만들어내는, 전문 영역에 묶이기를 거부하는, 전문 직업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익이나 보상이 아니라 더욱 큰 그림을 그리려는 애정과 이에 대한 불굴의 관심이 일으키는 욕구”다. 즉, 아마추어 지식인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 영역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지식의 큰 그림을 그리려고 경계를 넘으면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_ 375쪽 ‘제11장 인문학의 몰락’

대학이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 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고등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그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현재의 대학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변화는 현 체제를 흔들 때 가능하다. 지금까지 대학의 변화가 권력과 자본에 복무하는 길을 확대하기 위한 변화였다면 이제부터 변화는 권력과 자본의 지배를 끝내고 학생과 교수가 명실상부하게 대학의 주인이 되는 길을 여는 변화여야 한다. 대학이 시끄러워져야 한다. 강의실에서는 교수의 권위가 끊임없이 도전받아야 한다. 대학 교정 곳곳은 대학의 권력을 비판하는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대학생과 교수가 만나는 곳곳에서 온갖 종류의 권력을 비판하는 성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온갖 사람이 각기 주장을 하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대학, 이런 곳이 필자가 꿈꾸는 대학이다. _ 411쪽, ‘제13장 내가 꿈꾸는 대학’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제1장 문제는 사립대학
제2장 대학의 역사: 근대 대학의 형성을 중심으로
제3장 대학 기업화의 원조: 미국 대학의 기업화
제4장 한국 대학의 기업화
제5장 대학 자본주의: 대학 공공성의 소멸
제6장 대학의 기업화와 학문의 자유
제7장 대학의 기업식 관리 체제
제8장 대학순위평가
제9장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관리
제10장 교수업적평가와 학술논문
제11장 인문학의 몰락
제12장 고난의 시대, 몰락한 대학
제13장 내가 꿈꾸는 대학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