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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양장)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양장)
저자 : 루돌프 차벨
출판사 : 살림
출판년 : 2009
ISBN : 9788952211576

책소개

신혼여행 길에서 만난 1904년의 한국
저널리스트 차벨, 러일전쟁과 한국을 기록하다

『그들이 본 우리(Korean Heritage Books)』총서는 서양인이 우리를 인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16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한국이 근대 국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묘사한 과거 속의 우리를 찾아본다. 그들의 서술이나 묘사를 통해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 비춰졌으며,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으로 구성되어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제8권《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이 책은 독일인 부부가 바라본 한국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 독일 출신의 여행가이자 언론인인 루돌프 차벨이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한국 땅을 여행한 뒤 1906년에 책을 펴낸 것이다.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인상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한반도를 비롯, 중국과 일본 등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날카로운 관찰과 논평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은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이전 10여 년간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을 기록한 것으로 마치 치밀한 보고서를 방불케 한다. [양장본]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그들이 본 우리 총서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LG연암문고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살림출판사가 출간하는 총서 제8권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독일인 저널리스트 루돌프 차벨이 러일전쟁 취재차 스무 살 새 신부와 함께 한국행 신혼여행을 하는 중에 겪은 낯설고 황당한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기록에서 저자는 낯선 곳을 걷는 여행자들의 독특한 심상을 풍부하게 살리면서도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총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수집·소장하고 있는 한국학 관련 희귀 자료의 국역 사업이다. 이 자료들 중에는 국내 다른 기관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희귀본들이 국내에서 빛을 보게 되어 동북아 지역과 관련된 여러 인문사회과학 분야 및 한국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단 한 종밖에 없는 도서를 찾아 전 세계 고서점을 뒤져 가격에 상관없이 수집하였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 문화와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사업은 또한 근대 초기 서양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아왔는지를 점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외국이 바라보고 이해해 온 우리의 모습에 대한 검토 없이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총서는 16세기 이래 한국을 바라본 서구의 시선을 종합하여 우리를 객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한국문화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총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10,000여 점의 고서 및 문서, 사진 등 한국 관련 자료 가운데 91종을 엄선하였다. 2008년 출간을 시작으로 매년 10종 이상을 출간할 계획이다.

신혼여행 길에서 만난 1904년의 한국

1904년, 한 독일인 부부가 신혼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기선을 타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페낭, 싱가포르, 홍콩, 요코하마를 거쳐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국. 책은 이 여행의 기록이다.
하지만 단순한 인상기는 아니다. 글쓴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관한 날카로운 관찰과 논평을 남겼다. 특히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이전 10여 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을 상론한 마지막 장은 흡사 국제정세에 관한 한 편의 치밀한 보고서를 방불케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저자의 시선이 후발 산업국으로서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의 입장과 겹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한 편의 신혼여행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스무 살 신부와 스물여덟 새신랑이 낯선 땅에서 겪고 느낀 일들이 특유의 익살과 풍자 가득한 필치로 씌어 있다. 일본인 염탐꾼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참을 도리가 없을 정도다. 여행 도중 촬영한 100여 컷의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는데, 머지않아 나라를 잃게 될 사진 속 백성들과 그 산천이 그 어떤 말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사연
스물여덟 살의 저널리스트 루돌프 차벨은 스무 살의 꽃다운 아가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결혼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예정보다 앞당겨서 결혼식을 치렀다. 루돌프 차벨이 급작스럽게 러일전쟁을 취재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부부가 된 젊은 남녀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남편이 지구의 반대편―한국―으로 취재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부부가 되자마자 떨어져 살 수는 없는 법. 이들은 “당신이 가시는 곳이라면 나도 함께 가리오.”라는 룻의 신조를 충실히 따르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부부는 먼 여정에 오른다.

영국인들, 두통으로 고생하다
페낭에 도착했을 때 일본의 뤼순 점령 소식을 들려왔다. 일본과 동맹을 맺은 영국인들은 클럽에서 승리 축하연을 열기로 했지만, 통념상 일본 인사들은 중국인, 말레이인, 혼혈인과 마찬가지로 사교계 출입 자격이 없었다. 영국인들은 식민지 역사상 최초로 이 원칙을 허물어야 했지만, 다음날 로이터 통신이 뤼순 함락 소식이 오보라고 정정 보도한다. 영국인들은 숙취 때문에 한 번, 축하연에 쓰인 비용 결재 때문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두통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 금지
홍콩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영국 극동함대는 언제든 출동 가능한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일본행 화물량이 급증하고 있었다. 일본 내해는 이미 해저 지뢰로 봉쇄된 상황이어서 부부가 탄 여객선이 도쿄 만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일본측의 안내선을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아 통과해야 했다.
일본에 도착했지만 곧바로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떠날 수는 없었다. 일본 정부에서 취재를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일종의 전시 언론통제). 도쿄에는 이미 각국에서 파견한 종군기자들이 취재를 떠나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대기하고 있었는데, 곧 제2진이 출발한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공식적인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았다.
루돌프 차벨은 독일 영사를 통해 일본 정부에 취재를 공식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독일 영사의 미적지근한 일처리와 권위적인 태도에 분을 삭이지 못 하고 영사와 전면전을 감행한다. 그럼에도 결국 공식 취재를 허가받지는 못하고, 한국으로의 여행만 간신히 허락받는다.

독일인의 일본 비판
일본 방문이 벌써 세 번째인 루돌프 차벨에게 일본은 비판의 대상이다. 당시 독일인들이 극동의 여러 민족 중에서 일본인이 자신들의 사고와 감성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일본에 열광하던 것과는 다른 태도이다.
첫째, 메이지 유신은 서양 문명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독일인들의 상식을 비판한다. 그의 눈에 그것은 오히려 서양과 대적하기 위해 일본이 선택한 전술이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해 일본에 기술을 전수한 서양 국가들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악귀를 끌어들인 셈”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둘째, 그리하여 일본이 중국의 가장 영양가 높은 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독일 제국의 신민이라는 저자의 정체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인데,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오히려 황화는 동아시아에서 전개되는 일본의 외교 및 무역 정책에 숨어 있었다. 부정한 수단도 마다 않는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한 동아시아 무역에 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유럽이 중국에서 쌓아 온 영향력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중략) 당시만 해도 아직 중국을 유럽 편으로 만들 여지가 있었지만 그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이제 일본이 선두에 올라섰고, 중국이라는 먹잇감의 최고로 좋은 부위가 일본 앞에 떨어진 셈이 되었다.”(본문 84~86쪽)

철도 ― 일본 식민정책의 핵심
차벨은 러시아의 식민정책과 비교하면서 일본의 식민정책을 설명한다.
첫째, 러시아가 북에서 남으로 철도를 건설했다면 일본은 남에서 북으로 철도를 건설했다. 당초 프랑스인 감독 아래 착공된 철도였지만, 일본은 민간인의 주식 매입이라는 방법으로 철도를 일본 소유로 만들었다. 철도를 건설하면서 불하받은 철도 구간 근처의 집과 토지를 중심으로 한반도 전역에 일본인 거류지가 거미줄처럼 퍼졌고, 바로 거기에서 한국의 일본화가 진행되었다.
둘째, 러시아가 철도 노선에 이른바 ‘철도 위병’을 투입해 병참 도로를 운영한 데 반해, 일본은 일본인 거류지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철도의 종착역과 출발역에 수비대를 배치했다. 철도의 기동력을 감안할 때 매우 효과적인 군대 동원 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을 불러일으킨 뻐꾸기 알
북쪽에서 내려온 러시아와 남쪽에서 올라온 일본은 압록강 부근에서 양국의 이익을 두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러일전쟁 직전 양국 간에 마지막 외교 교섭이 있었지만 “일본이 만주라는 러시아의 둥지에 자국의 뻐꾸기 알”을 집어넣어 결국 교섭은 결렬되었다.
일본의 뻐꾸기 알이란 것은, 일본이 부산에서 시작해 톈진을 거쳐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철도 직행 노선을 러시아에 승인 요구한 것을 말한다. 이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다롄까지 남하하고 있었던 러시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받아들일 경우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내려온 물류가 일본 철도를 거쳐 중국 전역으로 운송되거나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어 동북아시아 경제의 중심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했다. 러시아가 국제 교통에서 배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일본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일전쟁은 일본이 원한 전쟁이었음이 분명하다.

플릭과 플록 ― 일본인 염탐꾼 이야기
차벨 부부는 여행 내내 일본인 염탐꾼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차벨은 그들을 플릭과 플록(플릭과 플록은 루돌프 차벨이 키웠던 두 마리의 닥스훈트의 이름임)으로 불렀다. 염탐꾼의 임무는 “금지 구역의 촬영을 막고, 군사 정보가 러시아로 새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검열 받지 않은 전보를 금하고, 경찰이 읽지 않은 편지를 고국에 부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전시 언론통제 정책의 일환이었다.

“두 마리의 닥스훈트가 그사이 환생이라도 했단 말인가! (중략) 현재의 플록은 우리와 숨바꼭질 놀이라도 벌일라치면 꼭 검은 안경을 썼고,(중략) 사실 플록은 환생 과정에서 사람의 모습을 갖기로 결정되어 있었으나, 윤회를 관장하는 조물주가 그만 다윈의 학설을 떠올리는 통에 원래의 의도와 달라진 것은 아닐까.” - 256쪽

“흥정에 정신이 팔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던 플록이 어느새 내 옆에 떡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변장을 했는데도 내가 묘한 인사를 건네 퍽 실망이 컸을 것이다.” - 259쪽

겐산과 원산, 그리고 길에서 만난 한국
원산은 지도에 ‘원산’ 또는 ‘겐산’으로 표기하거나, ‘원산’과 ‘겐산’이 이중 표기되었다(‘겐산’은 ‘원산’의 일본어 표기). 실제로 이 도시는 겐산과 원산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겐산은 서양식 주택과 넓은 도로가 있는 원산의 중심가로 인근의 경제 중심지라면, 원산은 초가집, 벌거숭이 아이들, 가슴을 드러낸 추한 아낙네, 지게를 맨 짐꾼들과 이들에 대비되는 새하얀 옷과 새하얀 신, 그리고 갓을 쓴 지체 높은 사내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차벨은 길에서 마주친 한국인에게서 받은 인상을 여행기 곳곳에 남겨 놓았다. 그 기록들을 보노라면 그의 관점이 제국주의자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제국주의자의 시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구석이 있다. 그는 문화상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맨살을 드러내는 일이 무조건 예절 감각에 어긋난다고 역설하기도 곤란한 노릇이었다. 예절 감각이란 것도 일차적으로는 풍습과 유행의 산물인 만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똑같은 예절 감각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202~203쪽

한국인의 뛰어남을 묘사하기도 한다.

“개울물을 이용해 논에 물을 대는 이 마을 주민들의 솜씨는 실로 대단했다. 감탄할 만한 관개시설이 아닐 수 없었으니 한국 농부들의 부지런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솔직히 해안 지역의 한국인들은 유약하고 게으르며 미덥지 못한 인상을 주었지만, 이곳 내륙 지방에서는 그 같은 판단을 여러모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388~389쪽

하지만 그가 느낀 한국에 대한 인상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다소 거북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인의] 생활신조가 다름 아닌 ‘되도록 돈은 많이, 일은 적게, 말은 많게, 담배도 많이, 잠은 오래오래’였다. 때로는 거기에 주벽과 바람기가 추가되었다. 술 취한 한국인이 길거리에 누워 있는 모습은 흔한 구경거리였고, 여자 문제로 살인이 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라고 했다. (중략) 이런 모습은 결국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노예 상태와 압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 241~242쪽

“병사들을 잘 살펴보면 한국이 예로부터 이웃나라 변덕의 노리갯감이었다는 사실에 수긍하게 된다. 여기에는 중국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특별히 잘난 게 없는 중국인조차 일본인이 그러는 것 못지않게 한국인을 멸시하였다. 무릇 사람은 스스로 한 만큼 대접을 받는 법. 결국 국가도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개개인이라고 해서 다른 대접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들이 다르게 대접받을 만하다면 다른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스스로의 권리를 관철시킬 것이다. 정치에서 감상은 절대 금물이다!” - 243~244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옮긴이 서문

1. 출발
세상 끝까지 / 빈 도착 / 브루크 / 트리에스테 / 브린디시 /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포트사이드로 / 사기꾼 소굴 / 수에즈 운하 / 러시아 함대 / 홍해 / 처세의 달인 / 페낭 / 쓰라린 영일동맹 / 싱가포르 / 중국 승객 / 전운이 감도는 홍콩-일본 입항

2. 일본의 분위기
‘싹싹한’ 인력거꾼 / 대기 중 / 일본 열광의 허상 / 메이지 유신 / 일본의 야망 / 동아시아 정책 / 반자이Ax! / 신혼 보금자리 / 명단 마감 / ‘선량한’ 독일 공사 / 일본 언론의 선동전 / 전원생활 예찬 / 종군기자 지침서

3. 한국으로 가다
압록강 전투 / 독일 공사와 벌인 다툼 / 한국 여행을 결정하다 / 고베 / 취소된 원산행 기선 / 일본 내해-부산 입항

4. 한국의 남녘땅
첫인상 / 통관 검사 / 호텔 찾기 / 부산, 푸산 / 양식당 / 부산의 시계 / 일본의 식민정책 / 마산포 쟁탈전 / 위험한 동해 / 부산의 일본인 / 모기장 / 옛 부산 / 향회 일행 / 기차 여행

5.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 중간쯤
우라토마루호 / 선상의 수난 / 일본식 청결 / 원산항

6. 원산과 겐산
만하이머 씨 / 숙소 문제 / 지명과 지도 / 일본인 도시, 겐산 / 한국인 도시, 원산 / 육로 여행 준비 / 통역 찾기 / 플릭과 플록 / 원산의 ‘괴짜’ 영국인 / 백동화

7. 육로 여행 첫째 날
막판에 구한 통역 / 뒤죽박죽된 대열 / 사환과 당나귀 / 대로에서 만난 일본군 / 안변

8.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 밝았다
아침의 평화 / 아쉬운 석왕사 만찬 / 밥값과 품삯 / 조랑말 천국 / 미행 / 사랑에 빠진 조랑말 / 숲 속의 황홀경 / 한낮의 휴식 / 칠면조 결투 / 달아난 짐꾼

9. 한여울 기슭
악화 / 플릭과 플록을 따돌리다 / 산간 지역 / 통역을 해고하다 / 고원 / 호랑이 사냥꾼 / 물 대기 / 평강, 철원 / 물레방아, 한여울

10. 서울 가는 길
즐거운 여행 / 부지런한 아낙 / 제련소 / 뱀 사냥 / 대로변 마을들 / 서울 입성

11. 서울
미스터 핼리팩스 / 제물포행 열차 / 카레예츠호와 바략호 / 제물포에서 부산까지 / 집으로!

12. 한국 ‘독립’의 역사
(1) 개항에서부터 청일전쟁까지
(2)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러일 대립까지
(3) 러일 양국의 개전開 ?외교
(4) 러일전쟁과 한일 관계
(5) 무엇을 할 것인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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