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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외 문화(그들이 본 우리 010)
한국의 역사외 문화(그들이 본 우리 010)
저자 : 모리스 쿠랑
출판사 : 살림
출판년 : 2009
ISBN : 9788952212450

책소개

「직지」를 유럽 세계에 알린 모리스 쿠랑의 논문집
한국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최초’인 학자

『그들이 본 우리(Korean Heritage Books)』총서는 서양인이 우리를 인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16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한국이 근대 국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묘사한 과거 속의 우리를 찾아본다. 그들의 서술이나 묘사를 통해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 비춰졌으며,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으로 구성되어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제10권《한국의 역사와 문화》은 모리스 쿠랑의 한국 관련 논문 11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논문들에서 쿠랑은 광개토대왕릉비를 해독하고, 한반도의 화폐제도를 고찰하며, 한국의 문자 체계와 종교의식을 개괄한다. 또한 한일관계가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19세기 말 열강들의 각축장이던 조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쿠랑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중국의 음악을 주제로 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는 한국 음악에 관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한국 음악을 서양 세계에 최초로 알린 글이다. 그는 또한 서양 최초의 광개토대왕비 연구 논문을 쓰기도 했고, ≪한국서지≫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에 관한 글은 유럽 세계에 최초로「직지(直指)」를 알렸다. 이뿐 아니라 그는 리옹 대학에서 유럽 최초로 한국사 강의를 개설했으며, 1904년에 서양 최초의 한국 관광 전문 안내서를 쓰기도 했다.

저자는 많은 서양 학자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자료에 의거하여 연구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한국을 직접 관찰하고 한국의 문헌을 연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주요 묘소, 유적 등을 답사하여 비명을 탁본하거나 해독하였다. 모리스 쿠랑은 중국어를 전공했기에 한자로 된 우리나라의 문헌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다양한 주제의 방대한 자료를 근간으로 훌륭한 논문을 집필했다. 이런 점에서 그를 학문적으로 한국을 연구한 최초의 서양인이라 할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직지』를 유럽 세계에 알린 모리스 쿠랑의 논문집
19세기 말 20세기 초 정치, 경제, 문화사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겪던 구한말 한반도를 방문한 많은 외국인 선교사, 여행자, 외교관 들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모리스 쿠랑은 많은 서양 학자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자료에 의거하여 연구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한국을 직접 관찰하고 한국의 문헌을 연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주요 묘소, 유적 등을 답사하여 비명을 탁본하거나 해독하였다. 모리스 쿠랑은 중국어를 전공했기에 한자로 된 우리나라의 문헌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다양한 주제의 방대한 자료를 근간으로 훌륭한 논문을 집필했다. 이런 점에서 그를 학문적으로 한국을 연구한 최초의 서양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리스 쿠랑이 남긴 한국 관련 논문 11편을 담고 있다. 이 논문들에서 쿠랑은 광개토대왕릉비를 해독하고, 한반도의 화폐제도를 고찰하며, 한국의 문자 체계와 종교의식을 개괄한다. 또한 한일관계가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19세기 말 열강들의 각축장이던 조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 실린 “조선 주재 일본 조계지-15세기 이후의 부산”에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권리’가 사실과 다름을 밝히고자 했다. 그가 한국학에 관한 한 당대 최고 권위자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논문들 하나하나는 당시 서양인들의 한국 인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최초’인 학자
베이징 프랑스 공사관을 거쳐 1890년 5월 통역서기관으로 서울로 전속되었을 때만 해도 모리스 쿠랑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서적을 소개하겠다는 야심찬 포부(『한국서지(韓國書誌)』 출판)를 품은 데는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영향이 컸다. 한국의 유물과 문헌을 수집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던 플랑시가 쿠랑을 설득해 작업에 동참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플랑시의 격려로 본격적인 한국 연구를 시작한 쿠랑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 다닌다. 중국의 음악을 주제로 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는 한국 음악에 관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한국 음악을 서양 세계에 최초로 알린 글이다. 그는 광개토대왕비 연구 논문(이 책에 실린 “중국 소재 고구려비”)을 1898년 『동방학지』에 싣기도 했는데, 이 또한 서양 최초의 광개토대왕비 연구 논문이다. 쿠랑은 자신의 최대 업적인 『한국서지』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直指)』에 관한 글을 썼는데, 이 또한 유럽 세계에 최초로 『직지』를 알린 일이다. 이뿐 아니라 그는 리옹 대학에서 유럽 최초로 한국사 강의를 개설했으며, 1904년에 서양 최초의 한국 관광 전문 안내서를 쓰기도 했다.

기념비적인 업적 『한국서지』
모리스 쿠랑의 최대 업적은 총 4권으로 출판된 『한국서지』다. 플랑시와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도움을 받아 1894년 출판된 1권으로 시작해서 1901년 4권으로 완간된 이 방대한 저술에서 쿠랑은 3,821종에 달하는 한국의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쿠랑은 플랑시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의 도서관들에 보관되어 있던 한국 자료를 섭렵했고, 유럽의 수집가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까지 찾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수시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직접 서적을 수집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앞에서 밝혔듯이 『한국서지』는 『직지』의 존재를 유럽 최초로 밝히는 등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까지 세계의 한국학자들이 필수로 찾아보는 자료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1. 한반도에서 사용된 화폐에 관한 역사적 소고
2. 한반도 역사의 주요 시대
3. 한국의 여러 문자 체계에 관한 소고
4. 9세기까지의 한일 관계와 일본 문명의 탄생에 한반도가 끼친 영향
5. 마당극과 무극
6. 중국 소재 고구려비
7. 조선 및 일본 연구에 대한 고찰
8. 한국의 종교 의례-약사
9. 샹 드 마르스의 한국관
10. 조선과 열강
11. 조선 주재 일본 조계지-15세기 이후의 부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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