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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우드스탁
테이킹 우드스탁
저자 : 엘리엇 타이버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10
ISBN : 9788954610872

책소개

[와호장룡] [색, 계] 이안 감독의 2009년작 [테이킹 우드스탁]의 원작. 1960년대 카운터컬처와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인 이 책은 한때 무산 위기에 처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어떻게 무사히 열려 전설로 남게 되었는지에 관한 뒷이야기이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을 가능하게 했던 한 청년, 그러나 그 자신이야말로 우드스탁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엘리엇 타이버, 본명은 엘리야후 타이크버그. 십사 년간 양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허덕였던 엘리엇 타이버는 우드스탁을 통해 세상과의 화해,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화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는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공연 자체를 다루지 않는, 그러면서도 페스티벌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회고록"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에 대한 기록이자 엘리엇 타이버라는 한 남자의 성장기이며, 우드스탁 40주기를 기리는 진솔하고 유머러스한 에필로그이다. 팝 칼럼니스트 성문영이 번역을 맡았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이안 감독의 2009년 신작 의 원작!

섹스보다 짜릿하고 마약보다 강력한 힘으로
세대와 인종을 초월하여 모두를 변화시킨 우드스탁 페스티벌!
‘사랑과 평화의 3일’이 탄생하기까지, 그 폭소와 눈물 넘치는 실화

올봄 음악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는 ‘우드스탁 코리아의 개최 여부’였다. 한 관계자가 웹상에 개최 소식을 올리면서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그 진위 여부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공연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그간 국내 음악팬들이 겪은 쓰라린 경험은 이런 공방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나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개최자 중 하나인 아티 콘펠드가 자신의 트위터에 인사말을 올리고 공연을 기획한 국내 기획사가 기자회견을 예고하면서 일단 우드스탁 코리아의 역사적인 개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미 국내에도 펜타포트, 지산, ETPFEST 등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들이 자리잡은 지도 꽤 되었고 점점 더 많은 페스티벌들이 열리고 있지만, 우드스탁 코리아 페스티벌 개최 소식이 음악팬들에게 미치는 여파는 남다르다. 음악 페스티벌이 단순히 음악을 듣고 공연을 즐기는 이벤트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차이가 공존하는 세상’을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장이라면 이 모든 시작에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있기 때문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1969년 미국,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끓어오르던 시기의 미국에서 열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1960년대 카운터컬처와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우드스탁을 회고하는 책과 영화는 그간 많았는데,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한때 무산 위기에 처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어떻게 무사히 열려 전설로 남게 되었는지에 관한 폭소와 눈물 가득한 뒷이야기이다. 엘리엇 타이버는 누구인가? 우드스탁에 관한 자료는 엄청나게 많지만 거기서 그의 이름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드스탁을 개최한 4인방도 아니고, 자신의 농장을 콘서트 장소로 제공한 통 큰 농장주도 아니고, 페스티벌을 수놓았던 쟁쟁한 뮤지션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우드스탁 호는 좌초했을지도 모른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을 가능하게 했던 한 청년, 그러나 그 자신이야말로 우드스탁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대만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화 작업을 하는 이안 감독은 으로 1960년대의 변화의 물결이 사그라지고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허무가 지배하던 1970년대 미국사회의 스산한 풍경을, 으로 게이 카우보이들의 비극적 사랑을 그려낸 바 있다. 미국사회 속 이방인이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미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보여준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해인 1969년을 그린 으로 2009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은 한국에서 2010년 6월 말 개봉 예정이다.
『테이킹 우드스탁』 한국판은 독특한 글쓰기와 가사 번역으로 유명한 팝 칼럼니스트 성문영 씨가 번역을 맡아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위트 넘치는 번역으로 촌철살인의 유머와 감동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1969년 여름, 한 시대가 그의 집 뒤뜰에서 시작되었다!

엘리엇 타이버, 본명은 엘리야후 타이크버그. 그는 압도적인 종교적 아우라에 짓눌려 사는 유대인과 이탈리아인들이 대부분인 뉴욕 브룩클린 벤슨허스트에서 성장했다. 각각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출신의 유대계 이민자였던 부모님은 독특한 교육철학과 투철한 절약정신을 가진 이들이었는데, 아버지는 자식 교육이라면 일단 매질부터 하고 봤고 어머니는 블랙홀보다 강한 흡입력으로 돈을 빨아들이는 수전노였다. 엘리엇은 늘 멍청하고 뚱뚱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 애정 결핍에 자신감 부족인데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서 텔레파시를 받는다는 엄마의 뜻에 따라 랍비 신학교 ‘예시바’에 보내져 제대로 된 동네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고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부모님의 잡화점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하다 미술에 재능을 보이게 되면서 헌터 칼리지에 진학한다. 그 시절 그는 마크 로스코, 애드 라인하트, 지미 에른스트 등 훗날 현대미술의 거장에 오른 이들과 어울리지만, 당시 그들은 하나같이 무명의 빈털터리에 어두운 예술적 열정에 집어삼켜진 자들이었다. 고생은 자라면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그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맨해튼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뉴욕 주 북쪽의 베델에서 모텔 사업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SOS신호를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가업을 떠맡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타이크버그 가의 저주’라 부르는 굴레를 자진해서 짊어지게 된다.
한편 엘리엇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또다른 삶이 있다. 열한 살 무렵부터 타임스 스퀘어의 영화관들을 들락거리다 그곳에서 동네 형과 첫경험을 치른 그는 그곳이 온갖 섹스 행각이 벌어지는 장소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에서 낯선 상대와 벌이는 섹스에 눈뜬 그가 정작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건 대학 입학 무렵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맨해튼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카포티,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게이 예술가들과 교류하거나 섹스 상대로 스쳐지나간다. 동성애를 교정 가능한 정신병으로 간주하던 시절, 그는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동성애자들이 내면화된 동성애혐오에 좀먹어드는 황폐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렇게 주중에는 맨해튼에서 게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주말에는 베델에 내려와 이성애자 사업가로, 그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무려 십사 년 동안이나. 설상가상으로 베델이 뉴요커들의 근거리 휴양지로 각광받다가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할 무렵 그곳에 모텔을 사들인 나의 부모님은 텅 빈 에어컨 박스, 전화선이 연결되지 않은 전화기, 시트 세탁을 외국말로 아는 청결상태,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손님접대로 장사를 하는 배짱 두둑한 분들이다.
비밀스런 이중생활과 경제적 파탄에 짓눌리던 그는 8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뉴욕 주 월킬에서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공연 개최권을 놓친 것에 아쉬워한다. 그런데 몇 만 명이나 되는 히피와 섹스와 마약이 판치는 광경을 떠올린 월킬 시의회가 공연 허가를 취소하자, 그는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라며 곧장 한 통의 전화를 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클 랭이 이끄는 우드스탁 주최 팀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하지만 우드스탁 팀은 습지가 대부분인 모텔 부지는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내리고, 절박해진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맥스 야스거의 농장을 공연 장소로 추천한다.
그렇게 극적으로 베델에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유치하게 되면서 엘리엇은 오랜 꿈을 이루게 된다.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해 모텔을 숙박지로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올리고, 그 길로 모텔을 어떤 바보 부자한테 팔아치우는 꿈을. 하지만 우드스탁은 그 소박한 꿈을 이루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축제는 엘리엇 타이버를, 그의 부모님을, 그가 살던 구닥다리 시골인 베델을,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꿔놓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성난 베델 주민들도, 돈벌이 기회를 노리는 마피아도, 걸핏하면 규정을 들먹이는 당국도, 그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자 우드스탁 네이션, 즉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선포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우드스탁에서 열리지 않았다?!

1969년은 미국 현대사에서 특별한 해였다. 그해 6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는 동성애자들이 경찰의 폭압에 저항하는 스톤월 폭동이 일어났고, 7월에는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고, 8월에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다. 베트남전 반대운동, 성과 인종에 따른 차별의 철폐를 부르짖는 인권운동과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카운터컬처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전후 미국인들이 굳게 믿었던 아메리칸 드림의 위대한 신화를 전면 거부하는 사람들의 부상이기도 했다. 암살과 시위와 전쟁이 일상을 침투하던 시절 우드스탁은 가장 평화적이고 가장 강력한 힘, 바로 음악을 통해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기정사실이며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원래 우드스탁은 TV시트콤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광고를 게재한 존 로버츠과 조엘 로젠먼이 때마침 유명 뮤지션들이 이주한 전원마을 우드스탁에서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최첨단 녹음실을 오픈할 기획을 갖고 있던 마이클 랭과 아티 콘펠트와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과 달리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의 노하우가 전무하던 시절 그들은 주식회사 우드스탁 벤처스를 설립하고,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240만 달러(한화 약 26억 8천만 원)의 경비을 들여 공연을 개최하기로 한다. 그러나 히피 5만 명이 운집할 거라는 예상에 공연 한 달을 앞두고 개최지로 정해졌던 월킬의 시의회가 허가를 취소했고, 장소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우드스탁 측은 엘리엇 타이버의 제안으로 맥스 야스거의 농장으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개최지가 확정되었다는 발표가 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야스거의 농장과 베델 지역에는 히피 1백만 명,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부색과 성적취향의 사람들이 운집하기에 이르렀다.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총 관객 수는 공식 집계로는 50만 명, 추정으로는 1백만 명 이상이다.)

“내가 지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웃어주었고, 어떤 이들은 손을 흔들었다. 사랑이 우리 모두를 감싸며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내 영혼 깊은 곳 어딘가에서 편안함, 심지어 약간의 평화마저 느껴졌다. 나는 인류라는 거대한 바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일부였다. 모두가 사흘간의 음악과, 운이 좋다면 약간의 사랑까지 얻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결국 그것이 우리 중 누구라도 소망하는 최선이었으리라.” _p.183

살아오면서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간 군상 중심부에 던져지는 압도적 경험에 그 누구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수줍은 게이 청년도, 완고한 아버지도, 수전노 어머니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모여든 사람들이 뿜어내는 메시지는 우리가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십사 년간 양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허덕였던 엘리엇 타이버는 우드스탁을 통해 세상과의 화해,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화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테이킹 우드스탁』은 한 청년의 성장담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공연 자체를 다루지 않는, 그러면서도 페스티벌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회고록”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에 대한 기록이자 엘리엇 타이버라는 한 남자의 성장기이며, 우드스탁 40주기를 기리는 가장 진솔하고 가장 유머러스한 에필로그일 것이다.
또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미국의 유행과 취향을 결정짓는 숨은 실세, 바로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솔직하고도 흥미진진한 묘사로 가득하다. 패션만 하더라도 ‘패셔너블한 것’ ‘트렌드 세터’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은 게이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창조물이거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마돈나 같은 슈퍼스타나 펑크 록커, 젊은 고스족들이 주도하는 트렌드들조차 알고 보면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다. 그것들은 게이들로부터 비롯되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SM 패션 성명으로 이미 발표된 바 있다. 이러한 게이들의 영향력은 소설, 연극, 시, 회화, 연기, 디자인 등 모든 예술세계의 지류로 흘러들었다.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엘리엇 타이버가 경험하는 게이 커뮤니티에는 트루먼 카포티, 테네시 윌리엄스과 같은 문인들과 영화배우 록 허드슨,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같은 도발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말론 브랜도와 마크 로스코, 애드 라인하트, 지미 에른스트 등 위대한 예술가들까지 등장하면서 ‘1960년대 뉴욕’이라는, 현대예술에서 특별한 시공간의 예술적 지형도를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위대했던 페스티벌의 유치 성공담이 아니다. 성적 소수자로, 망해가는 집안의 맏아들로 두 개의 삶을 살던 주인공이 인생의 빛나는 지점을 거치며 어떻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변화해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회고담이다. 우여곡절의 페스티벌과도 같은 삶을 이토록 낙천적으로, 위트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분명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 저자

『테이킹 우드스탁』의 독특한 점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공연 자체를 다루지 않는, 그러면서도 페스티벌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회고라는 점이다. 우드스탁의 기록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엘리엇 타이버라는 한 남자의 성장기로서, 이 책은 우드스탁 40주기를 기리는 가장 진솔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유머러스한 에필로그일 것이다.
-성문영, 팝 컬럼니스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진정한 영웅 엘리엇 타이버의 이야기이자 미국의 위대했던 시절에 관한 스냅셧. _ 워싱턴 포스트

놀라운 우연과 운명의 힘으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리는 데 기여한 한 남자의 이야기. 강력 추천! _ 라이브러리 저널

엘리엇 타이버는 우리를 1969년 그해 여름, 우드스탁의 현장으로 완벽하게 데려간다. _ 미드웨스트 북 리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1 화이트 레이크라는 이름의 수렁

2 타이크버그가의 저주

3 나의 ‘반대쪽’ 삶

4 미친 듯 웃으며 더 깊은 수렁 속으로

5 스톤월, 해방의 시작

6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엘 모나코에 착륙하다

7 세상이 다시 만들어지다

8 첫번째 파도

9 화이트 레이크 저항군들

10 모두가 자기 몫을 원한다

11 어려운 고비는 지나고

12 우드스탁 접수하기

에필로그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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