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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주역사전 2 (동양편 079)
역주 주역사전 2 (동양편 079)
저자 : 정약용
출판사 : 소명출판
출판년 : 2007
ISBN : 9788956262635

책소개

『역주 주역사전』은 무진년(1808년) 순조 8년에 간행된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周易四箋) 무진본(戊辰本) 24권을 번역한 것이다.

다산은 신유년(1801년)에 강진에 유배된 이후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오히려 학문을 닦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주역』 연구에 침잠하게 된다. 다산의 무진본 주역사전의 서문에 해당되는 제무진본(題戊辰本)의 기록에 따르면, 계해년(1803년) 겨울부터 『주역』을 읽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산이 그의 친구 윤외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잡는 것, 입으로 읊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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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다산이 『주역사전』의 완성을 위해 쏟은 정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주역사전』이 세상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04년에 펴낸 갑자본(8卷)이었는데, 다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후 연속해서 을축본(8卷, 1805년), 병인본(8卷, 1806), 정묘본(24卷, 1807), 무진본(24卷, 1808년)의 개정본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1804년에 갑자본(甲子本)이 나온 이후로 네 번의 개정본을 내었으며, 그 양은 처음에 8권이다가 정묘본(丁卯本)과 무진본(戊辰本)에는 24권으로 대폭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다산의 저술 중에서 다산이 이처럼 정성을 기울인 저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주역사전』을 다산은 자신의 다른 어떤 저술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다. 다산은 자신의 『주역사전』이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天助之文字’(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文字)라고 부른다.

다산은 자신의 저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고, 비난하는 사람은 많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하며, 만일 천명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불에 태워버려도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만일 자신이 저술한 책 중에서 『주역사전』과 『상례사전(喪禮四箋)』 만이라도 전승해간다면, 나머지 책들은 그냥 없애버려도 좋겠다고 말한다. 다산의 『주역사전』이 지니는 대단한 가치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격려한 사람은 다산의 중형(仲兄)이었던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이었다. 『주역사전』이 완성되었을 때,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던 손암은 이를 읽어보고, 복희, 문왕, 공자의 세 성인 마음 속의 오묘한 이치가 이제야 찬연하게 밝혀졌다고 기뻐하였다. 손암은 말하기를 “처음에는 놀라고, 중간에는 기뻤고,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무릎이 굽어졌다.

저자인 내 동생을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미용(美庸) 저 자신도 모를 것이다”. 손암은 특히 『주역사전』 중에서 고점법(古占法)에 대한 부분을 특별히 독립시켜 저술한「시괘전(蓍卦傳)」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주역사해(周易四解)는 그 어는 것이 장관이 아니오리마는 시괘전에 이르면, 더욱 절기(絶奇)한 문자인 것이다(周易四解, 孰非壯觀, 而至蓍卦傳, 尤是絶奇文字)”라고 하였다. 손암과 더불어 『주역사전(周易四箋)』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인물로는 아암(兒庵) 혜장(惠藏:1722~1811) 선사(禪師)가 있다. 혜장선사는 다산이 강진 유배시에 친하게 지냈던 불승으로서, 『주역(周易)』에 대해서도 박식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으나, 다산역학을 접하고 나서는 산승(山僧)이 20년 동안 역학을 공부한 것이 모두 헛된 일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의 ‘사전(四箋)’이란 글자 그대로는 ‘네 가지 주석’이라는 뜻이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다산이 『주역』 해석을 위해 개발한 ①추이(推移), ②효변(爻變), ③호체(互體), ④물상(物象)의 네 가지 방법론을 가리킨다. 먼저 추이(推移)란 전통적인 역학방법론인 괘변설(卦變說)을 가리키고, 호체(互體)란 상괘(上卦)와 하괘(下卦) 외에 중간에서 괘를 취하는 것을 가리키며, 물상(物象)이란 괘사(卦辭)를 해석할 때, 철저하게「설괘전(說卦傳)」에 설명된 괘의 상징에 의해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중에서 효변(爻變)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법론은 역학사를 통해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보다 정밀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다산에 의해서 새롭게 정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산역학의 가장 독창적인 요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연코 효변(爻變)의 방법론이다. 다산은 이 효변법(爻變法)을 개발함으로써 첩첩산중 가로막고 있던 해석학적 난제를 단숨에 해결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효(爻)란 획(?)과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획(?)이란 단순히 그어진 선(線) 이외의 것을 가리키지 않는 정태적 개념이라면, 효(爻)는 음(陰)에서 양(陽으)로, 혹은 양(陽)에서 음(陰)으로의 변화를 가리키는 동태적 개념이다. 이 효변 개념은 역해석자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효변설(爻變說)을 따른다면, 음(陰)은 비록 음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이미 양(陽)으로 변동되고 있는 과정을 가리키며, 양(陽)은 비록 양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이미 음으로 변동되고 있는 과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효변설을 취하면, 다른 모든 해석자들이 陽으로 보고 있는 것을 실제로는 陰으로 보고, 陰으로 보고 있는 것을 실제로는 陽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역학사상 효변을 통해 괘사를 해석한 역학자의 예(例)는 정말로 희귀하다. 주자(朱子)의 경우에도 점법(占法)에서는 효변설을 취하고 있으나, 괘사(卦辭) 해석에서는 전혀 효변을 취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다산은 효변설에 관한 한, 거의 대부분의 역학자들의 견해와 맞서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의 효변설이 역학사상(易學史上) 일대사건(一大事件)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효변설이 지니는 혁명적인 발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어떻게 이 효변설에 착안하게 되었으며, 다른 대부분의 역학자들의 통설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지닐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춘추좌씨전』에 소개되어 있는 춘추관점(春秋官占)의 점서례(占筮例)를 통해서였다. 다산은 『춘추좌씨전』과 『국어』의 점서례(占筮例)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것이 『주역』 64卦 384爻 전체에 모두 적용되어야 하는 방법론임을 확신하게 된다. 다산은 효변설(爻變說)을 취하고, 다시 변동된 물상을「설괘전(說卦傳)」에 대조해 보면 3백84개의 효사(爻詞)가 글자마다 부합하고 글귀마다 계합(契合)하여 털끝만큼도 의심스럽거나 통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일단 효변설을 취하게 됨으로써 다산은 『주역』의 해석학적 난제들을 파죽지세처럼 풀어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효변설을 추이설(推移說) 등의 다른 방법론적 수단과 효과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마침내 만족할 만한 『주역』 해석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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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역자 서문

周易四箋 戊辰本 券之四
3. 수뢰 준
4. 산수 몽
5. 수천 수
6. 천수 송

周易四箋 戊辰本 券之五
7. 지수 사
8. 수지 비
9. 풍천 소축
10. 천택 리

周易四箋 戊辰本 券之六
11. 지천 태
12. 천화 동인
13. 화천 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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