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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유목제국사 552~745 (아사나 권력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 (아사나 권력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
저자 : 정재훈
출판사 : 사계절
출판년 : 2016
ISBN : 9788958289814

책소개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를 통합한 최초의 유목제국 돌궐의 200년 역사

돌궐은 6세기 중엽 몽골 초원과 중가리아를 배경으로 세력화에 성공한 뒤 서쪽으로 진출해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하나로 통합한 거대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로 분열되었고, 이후 50년간 당조의 지배를 받다가 부흥하는 등 부침을 거듭했지만 200년 넘게 이어지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고대 유목 국가의 원형인 흉노의 뒤를 이어 거대 유목제국을 세운 돌궐의 유산이 몽골 제국으로 이어지며 북아시아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친 과정을 검토한다. 돌궐의 지배 집단인 아사나를 중심으로 한 유목 군주권의 추이를 따라가며 정주 농경 국가와는 다른 유목 국가로서 돌궐이 가졌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한다.

또한 아사나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을 중심축으로 건국 신화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개별 유목 국가의 역사 전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 동시대 동아시아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돌궐사의 위상과 의미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분석한다. 무엇보다 한문 자료와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의 비교 연구를 통해 그동안 사료의 제한으로 주제의 편향이 심했던 돌궐사를 좀 더 ‘중립적’으로, 즉 중국도 돌궐도 아닌 ‘제삼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출간 의의

‘유목 군주권’에 주목하여
돌궐의 고대 유목제국적 성격을 새롭게 규명한
국내 최초의 돌궐 통사


이 책에서는 신화시대부터 200여 년에 걸쳐 발전과 쇠퇴를 거듭한 돌궐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중국사나 일본사와는 다른 역동성을 지닌 초원 유목민의 역사로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동쪽 끝의 만주에서 서쪽으로 몽골, 중가리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러시아까지 거대한 띠를 두르듯 드넓게 분포한 초원을 무대로 펼쳐진 유목민의 역사를 다각도로 조명해 북아시아가 어떻게 하나의 역사 단위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초원과 오아시스의 결합을 기반으로 등장한 많은 유목 국가들은 세계사를 뒤흔들 만큼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전근대 시기 정주 농경 세계와 함께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수레의 두 바퀴라고 평가되었다. 돌궐은 유목 사회를 기초로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공납貢納을 징수하거나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획득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고대 유목 국가’의 하나였다. 이는 ‘정복 왕조’로 불리는 거란, 여진, 몽골, 만주 등과는 다른 양상을 띤 돌궐 나름의 특징이다. 그런데 돌궐은 흉노처럼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그 범위가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교역권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착안해 돌궐을 ‘고대 유목제국’이라고 규정하고 그 실체를 설명하려는 실증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역시 돌궐사의 전개 과정에 맞춘 계기적 설명보다는 일반적인 특성을 추출하는 정도의 접근에 그쳐 돌궐만의 특성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기록 내용이 풍부해 체계적인 검토가 가능하고, 복잡한 돌궐사의 전개를 일관되게 정리해 그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인 ‘유목 군주권’에 주목했다. 고대 유목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유목 군주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정주 농경 국가의 군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념적·경제적 토대, 관료제나 법률과 같은 고도의 질서 체계, 역사 기술을 통한 정통성 계승 등 모든 면에서 취약했던 유목 국가의 군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급자족이 어려운 유목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정주 지역 출신의 관료 집단과 결합한 ‘권위주의적 상인 관료 체제’, 정주 지역에서 획득한 물자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확보한 안정된 유통망을 통해 다른 문명권으로 유통시키는 ‘중상주의적 교역 국가’를 지향해야 했다. 이런 지향을 가진 유목 군주에게는 무엇보다 정주 문명권, 특히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했고 실제로 돌궐의 성립과 발전, 붕괴에는 이 관계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유목 군주권’, 구체적으로 돌궐의 지배 집단인 ‘아사나’의 권력 추이에 초점을 맞춰 돌궐의 고대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한국 연구자의 눈으로
한문과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를 비교 연구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한 돌궐의 역사


6세기 중엽부터 200년 넘게 전개된 돌궐사는 주변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이전 시대에 비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중국에 남아 있는 한문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 돌궐사 연구는 『주서』, 『수서』, 『북사』, 『통전』, 『구당서』, 『신당서』 등의 한문 자료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더해 ‘오르콘 룬 문자’라고 불렸던 고대 투르크 문자로 쓰인 비문 자료들이 한동안 학계에서 경쟁적으로 해독되면서 정주 지역의 관점에서 쓰인 한문 자료의 한계를 일부 극복할 수 있었다. 비문 자료는 단순히 한문 자료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자료의 비교 연구를 가능하게 하여 돌궐사 자체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돌궐이 이전의 유목민들과 달리 독자적인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미 6세기 후반에 그들에게 종사했던 소그드인의 문자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680년대에 국가를 재건한 다음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문자 생활을 했던 덕분이다. 이 같은 고대 투르크 문자의 제작과 사용은 유목 사회의 문명화와 민족적 자각이 시작된 전환점이라고 평가될 만큼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돌궐이 유목 세계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이후 위구르, 키르기스 등에서도 이 문자를 10세기까지 계속 사용했고, 그 뒤에 등장한 거란, 서하, 여진, 몽골, 만주 등도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19세기 말 이래 학자들이 벌인 비문 해독 경쟁과 계속된 연구를 통해 고대 투르크 유목사, 즉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몽골 초원에 국가를 건설한 돌궐과 위구르, 그리고 10세기경까지의 키르기스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한문 자료와 비문 자료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료를 비교 연구하여 그동안 사료의 제한으로 주제의 편향이 심하고, 연구자마다 자료를 자의적으로 선택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였던 돌궐사를 ‘중립적’으로 정리해보려 했다. 여기에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더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돌궐의 위상을 확인하고, 이것이 이후 ‘투르크’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함으로써 유목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한 것이 이 책의 빛나는 학술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건국 신화 기록을 세밀하게 비교 분석해
새롭게 복원한 돌궐 건국 전사前史


돌궐의 역사는 몽골 초원을 차지하고 있던 유연을 격파하고 유목 국가인 ‘돌궐’을 세우기 이전에 군주인 카간을 배출한 지배 또는 핵심 집단 ‘아사나’가 발생해 세력화한 과정인 건국 전사前史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아사나의 원류와 원주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개별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재구성하여 오히려 혼란만 초래했다. 이는 건국 전사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기록 자체가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중요한 기록인 건국 신화마저 허구적인 이야기처럼 기록되어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화 기록은 원래 자신의 조상을 미화해 창업자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글이라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고, 문자가 없던 시대에 구술로 전승되다가 후대에 채록되면서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배태한 돌궐의 신화 내용은 중국과의 관계가 시작된 서위西魏, 북주北周에서 수대隋代를 거쳐 당 초에 북조北朝의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사서에 채록되었다.
이 책에서는 건국 이전의 역사를 구체화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추출하기 위해 채록자의 돌궐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편찬의 ‘시차’가 기록의 성립과 그 내용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주목해 현존 기록들을 재정리했다. 시대 상황과 기록자의 신화 내용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바로 현존 기록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존하는 다섯 사서인 『주서』, 『수서』, 『북사』, 『통전』, 『유양잡조』의 기록을 중심으로 기록 순서에 따라 신화 내용을 소개하고 비교 분석했다. 특히 ‘이리’ 신화소를 매개로 한 건국 신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유목 국가들 상호 간에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역사의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돌궐사의 위상과 의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드러냈다.

주요 내용

돌궐 건국 전사 -아사나 건국 신화의 역사화

552년 돌궐 건국 이전 시기를 살펴 건국 전사前史를 복원한다. 기본 사료인 건국 신화 기록과 기존의 연구 성과를 재검토해서 추출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초로 신화시대로 남아 있는 건국 이전 지배 집단 아사나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소개한다. 이를 통해 사료 비판을 기초로 건국 신화의 내용을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복원할 수 있는가를 타진함으로써 아사나의 세력 형성 과정을 정리한다. 이는 아사나가 이후 초원의 패자가 된 다음 조상에 대한 신화를 조작해 어떻게 정통성을 창출했으며, 어떻게 권력을 공고화하고 제국을 운영하려고 했는가를 추적하기 위한 전제다. 이것은 유목 세계의 새로운 황금씨족이 된 아사나의 권위가 이후에 어떻게 투르크 유목민들의 유산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전망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돌궐의 조상은 평량平?의 잡호雜胡로, 성은 아사나씨였다. 후위後魏 태무제太武帝가 저거씨沮渠氏〔가 세운 북량〕을 〔영화 7년(439)에〕 멸망시키자 〔그들의 추장이었던〕 아사나가 5백 가를 이끌고 여여에 도망가 대대로 금산에 살면서 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들이 살던〕 금산의 생김새가 투구와 비슷했는데, 그들의 말로 투구를 ‘돌궐’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으로 삼았다. _ 46~47쪽

돌궐 신화는 하늘의 명령을 전달해주는 매개자인 샤먼shaman의 역할을 한 이리가 중개자를 낳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돌궐의 아사나는 이리 신화소를 매개로 자신을 하늘의 명령이나 권위를 전달해주는 존재로 신화 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이것은 아사나가 북아시아에서 내려오는 정통성을 계승한 존재가 되었음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것이었다. _ 94~95쪽

돌궐 제1제국 -거대 유목제국으로의 발전과 한계
돌궐 제1제국 시기인 552~630년까지를 다룬다. 이는 아사나가 552년 유연을 무너뜨리고 ‘돌궐’이라는 유목 국가를 몽골 초원에 건설한 다음,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 초원을 아우르는 거대 유목제국으로 발전한 과정과 함께 이후 종실 내부의 분열과 중국의 간섭으로 몰락했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이 시기는 건국 이후 유목제국으로 발전한 시기(552~579)와 제국이 해체되어 동서로 분립된 시기(579~614), 그리고 수조隋朝가 약화된 틈을 이용해 동돌궐이 다시 발전했다가 붕괴되는 시기(614~630)로 구분된다. 이것은 고대 유목제국이었던 돌궐사의 전개 양상에 대한 총체적인 정리로, 그 국가 체제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고 아사나의 권위가 어떻게 형성되어 확고한 권위로 자리 잡았는가 하는 데 대한 규명 작업이다.

새로운 거대한 유목제국인 돌궐은 과거와 같은 분절적인 체제가 아니라 비문 자료에서 ‘? 투르크’라고 부른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세계였다. 그리고 이를 묶어냈던 권위의 근원은 새롭게 등장한 황금씨족이 된 아사나의 성장에서 기인했는데, 이것은 중앙아시아 세계의 향후 전개 과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_ 190쪽

당조의 기미지배 -당조의 유목 세계 질서 재편과 돌궐의 대응
당조의 기미지배 시기(630~679~682~687)를 다룬다. 630년 당의 공격을 받아 붕괴된 뒤 그 지배 체제 아래서 돌궐이 어떻게 존재했는가와 다양한 유목 부락을 통제하기 위해 당조가 도입한 ‘기미지배 체제’가 유목 세계의 내적 세력 관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정리다. 이 시기는 동돌궐이 붕괴한 이후 당조에서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체제를 확립해가는 부분이며, 그 뒤 세력 간의 이해 결합적인 성격이 강한 기미지배 체제가 성립되어 유지되다가 679년 돌궐의 부흥 운동이 시작되면서 해체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는 당조가 유목 세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사나의 권위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약화되었던 아사나가 어떻게 다시 재기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접근이다.

이른바 ‘기미지배 체제’라고 불리는 당조의 유목 부락에 대한 통제 방식은 표면적으로 초원의 유목 족속들을 압도하고 유목민들 역시 그에 적극 동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주변 족속들의 상호 이해가 결합한 상태에서 유지되었다. 이것은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유지될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당조의 대외 확장을 가능하게 했음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_ 153~154쪽

돌궐 제2제국 -유목 세계의 분절화와 아사나의 부침
돌궐 제2제국 시기(687~745)를 조명한다. 돌궐이 679년에 시작된 부흥 운동에 성공해 687년 몽골 초원에 아사나가 유목 국가를 재건한 다음 어떤 체제를 만들어냈는가 하는 점과 당조의 인정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궐이 당조의 지속된 견제와 유목 세계의 분절화 속에서 어떻게 존립하며 권위를 재생산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687년 돌궐이 부흥에 성공한 뒤부터 720년대 초까지 결코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당조와 계속 무력 대결을 벌였던 시기와 당조를 중심으로 한 질서에 편입되어 공존하려고 했던 시기로 나뉜다. 그리고 740년대 중반 돌궐이 붕괴된 후 안사의 난 시기(755~763)까지 몽골 초원을 떠나 당조에 투항한 다음 내지內地에서 활동했던 시기인 아사나의 권위 소멸 과정도 살핀다. 특히 당조의 간섭을 극복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던 아사나의 권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재확립되다가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정리했다.

돌궐의 세 번째 부흥 운동 역시 계속된 당조의 공격과 이에 동조한 주변 세력들이 포위망까지 구축하면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일테리쉬 카간은 당조의 강력한 견제에서 벗어나 강고한 기미지배를 무너뜨리고 ‘투르크 일(나라)’을 재건하고자 했다. _ 418쪽

이것은 알타이 산지 부근에서 성장해 6세기 중반 몽골 초원으로 진출한 뒤 국가를 세워 거대 유목제국으로 발전했다가 중간에 분열과 패망으로 50여 년간 당조의 기미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 부흥해 몽골 초원을 차지하고 발전을 구가했던 아사나를 중심으로 한 200여 년 돌궐 역사의 완전한 종언을 의미했다. 이후 몽골 초원에는 다른 투르크계 유목민인 위구르의 지배 집단 야글라카르가 소멸된 아나사를 완전하게 대신해 유목 세계의 새로운 황금씨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펼쳐갈 수 있게 되었다. _ 576~577쪽

부록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의 소개와 번역
돌궐을 비롯한 투르크 유목민들은 ‘바람’처럼 사라지듯 기록을 남기지 않은 다른 유목민들과 달리 최초로 자신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한 비문을 남겼으며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말과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비문은 이른바 ‘문명화文明化’의 상징으로 주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2차 자료에만 의존해야 하는 유목사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고대 투르크 문자 해독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돌궐과 위구르 유목제국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던 고대 투르크 문자로 쓰인 비문들(〈퀼 테긴 비문〉과〈빌게 카간 비문〉, 〈톤유쿠크 비문〉)을 번역 소개한다. 이를 한문 사료와 상호 비교 연구함으로써 유목 세계의 전개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친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텡그리(하늘 또는 신)와 같고 텡그리에서 생긴 투르크 빌게 카간 나는 이때에 앉았다. 나의 말을 온전히 들어라! 먼저 나의 동생들, 나의 아들들, 하나로 된 나의 우구쉬(무리), 보둔(백성), 오른쪽으로 샤다프트 벡(관리들)들, 왼쪽으로 타르칸(장군들)들, 부의룩(대신), 벡들, 오투즈…… _ 620쪽 〈퀼 테긴 비문: 남: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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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머리에 _4

서론 1. 무대: 통합된 초원과 오아시스 세계 _13
2. 자료: 한문 자료와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의 비교 _22
3. 지향: ‘고대 유목제국론’의 재검토 _27
4. 내용: 아사나 권력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 _35

제1편 돌궐 건국 전사
-아사나 건국 신화의 역사화

1장| 건국 신화 기록의 정리와 내용의 재배열
1. 신화 기록 내용 _42
2. 신화 기록의 비교와 내용의 재배열 _53

2장| 아사나 원류 연구에 대한 재검토와 신화 내용의 재구성
1. 아사나 원류 연구에 대한 재검토 _65
2. 이리 신화소로 연결된 사료 (A)와 (B)의 내용 재구성 _75
3. 사료 (C)와 (A)의 내용 재구성 및 아사나의 원주지 비정 _98

3장| 6세기 전후 톈산 산맥 주변 정세와 아사나의 등장
1. 톈산 산맥 주변 세력들의 충돌과 아사나의 형성 _108
2. 아사나의 세력화 과정: 대장장이에서 카간으로 _118

제2편 돌궐 제1제국 552~630
-거대 유목제국으로의 발전과 한계

1장| 지역 단위 유목 국가에서 거대 유목제국으로의 발전 552~579
1. 몽골 초원 장악과 아사나 중심 국가의 성립 _134
2. 급속한 대외 팽창과 거대 유목제국으로의 발전 _170
3. 교역 국가로의 지향과 제국 체제의 정비 _191

2장| 유목제국의 해체와 중국 의존적인 유목 국가로의 위축 579~630
1. 아사나 종실의 내분과 제국의 균열 _224
2. 돌궐의 분립과 수조 중심 질서로의 편입 _257
3. 수말 당초 동돌궐의 질서 재편과 당조의 대응 _293

제3편 당조의 기미지배 630~687
-당조의 유목 세계 질서 재편과 돌궐의 대응

1장| 패망 이후 돌궐의 존재 양상 630~646
1. 돌궐의 대규모 투항과 당조의 지배 구조 _330
2. 돌궐의 고비 남부로의 이주와 실패 _357

2장| 당조의 기미지배 체제 도입과 돌궐의 내적 변동 646~687
1. 돌궐의 기미지배 체제 편입과 아사나의 약화 _379
2. 아사덕 주도의 돌궐 부흥 운동과 아사나의 부활 _397

제4편 돌궐 제2제국 687~745
-유목 세계의 분절화와 아사나의 부침

1장| 돌궐의 유목 세계 재통합과 발전 687~715
1. 돌궐의 몽골 초원 귀환과 아사나 중심 국가의 재건 _418
2. 카프간 카간의 대외 확장과 대결 구도의 심화 _440

2장| 돌궐의 당조에 대한 저항과 타협 715~741
1. 돌궐의 와해 위기와 빌게 카간의 수습 _471
2. 돌궐의 당조 중심 질서로의 편입과 한계 _499

3장| 돌궐의 붕괴와 아사나의 소멸 741~757
1. 아사나·아사덕 연합 권력의 해체와 돌궐의 붕괴 _551
2. 아사나의 당조 투항과 소멸 _563

에필로그 돌궐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유산 _579

부록Ⅰ.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
1.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 소개 _600
2.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의 번역 _620
〈퀼 테긴 비문〉, 〈빌게 카간 비문〉, 〈톤유쿠크 비문〉

Ⅱ. 돌궐 군주 세계표 _642

찾아보기 _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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