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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저자 : 우동선
출판사 : 효형출판
출판년 : 2009
ISBN : 9788958720850

책소개

왜 지금 여기서 조선 궁궐의 소멸을 이야기하는가!
우리 궁궐의 수난사

한 세기 전 나라의 운명과 궤를 같이한 우리 궁궐의 수난사를 건축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이 책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원구단 등 서울의 주요 궁궐 전각과 상징적 건축물은 물론, 이제껏 널리 알려지지 않은 평양 풍경궁의 수난사를 담았다. 없어지고, 훼손된 궁궐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지 100년. 그동안 조선의 궁궐 역시 호된 고초를 겪었다. 철거되고, 해체되고, 옮겨지고, 여기저기 팔려나가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행방이 묘연해진 경우가 허다했다. 이에 저자들은 실증적 연구와 분석을 통해 근대기 조선 궁궐 훼철의 실태를 파헤친다. 고종의 대한제국이 외세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를 궁궐의 변화 양상 속에서 파악하고, 우리 궁궐이 일제에 의해 어떻게 이건되고 변용되었는지 확인한다. 아울러 당시 조선 궁궐에 새로 들어선 근대 건축물의 면면을 살펴본다.

지난 100년 세월 동안 학계는 근대기 조선 궁궐의 사정에 대해 무지했다. 궁궐 등 각종 문화 유산의 복원 사업이 복원되는 지금, 정작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왜 복원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과연 가장 먼저 복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단순한 물질적 복원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의식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한 세기 전 우리가 잃은 건 국권뿐이 아니었다.
도성 안을 가득 채웠던 조선조 500년의 수많은 궁궐 전각,
그 촘촘한 역사의 나이테는 모두 어디로 사라져갔을까?


왜 지금 여기서 조선 궁궐의 소멸을 이야기하는가
19세기 말 에 도시圖示된 경복궁 내 건물의 수는 총 509동.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 남은 건물은 40동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469동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쉽게도 그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에 가깝다. 근대 한국의 궁궐사는 얼마나 왜곡되었고, 우리는 또 이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사실을 파악할 만한 문헌과 경로의 발굴은 그동안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몇몇 학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당대 역사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해내지는 못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는 궁궐사宮闕史의 사각지대가 되어버렸다. 요정으로 팔려가 기생의 놀이터가 된 경복궁의 전각.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집이 된 경희궁의 임금 침소. 일제의 박람회를 위해 널따란 마당이 되어버린 조선의 정궁 경복궁. 지금, 우리 궁궐은 이보다 나은 처지라 할 수 있는가.

한 세기 전 조선 궁궐의 멸실, 그 잔인한 훼철의 실상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지 100년. 풍전등화와 같던 조선(대한제국)의 운명은 짧고도 격렬한 시공을 거쳐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조선의 궁궐 역시 호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철거되고, 해체되고, 옮겨지고, 여기저기 팔려나가기 일쑤. 그 와중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행방이 묘연해진 게 대부분이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훼철毁撤의 역사’다. 이를 위해, 한 세기 전 나라의 운명과 궤를 같이한 우리 궁궐의 수난사를 건축사적 관점에서 넓고도 깊게 분석한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원구단 등 서울의 주요 궁궐 전각과 상징적 건축물은 물론, 이제껏 널리 알려지지 않은 평양 풍경궁의 수난사까지 아우른다. 저자들은 실증적 연구·분석을 통해 근대기 조선 궁궐 훼철의 실제를 파헤친다. 궁궐의 변화 양상 속에서 고종高宗의 대한제국이 외세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를 파악하고,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우리 궁궐이 어떻게 이건移建되고 변용變用되었는지 확인한다. 아울러 당시 조선 궁궐 내 수많은 전각을 헐어낸 자리에 새로 들어선 서양식 근대건축물의 탄생 배경과 그 면면을 살펴본다.

근대화의 의지와 좌절, 그 반세기의 여로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서는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가 조선의 운명에 치명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가운데, 비록 긴장된 줄타기였지만 고종황제는 이이제이以夷制夷로써 각 세력의 힘을 조정하려 했다. 또한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함으로써 조선왕조 내내 이어져온 중국(청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함과 동시에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다.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이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음을 살피고, 아울러 그 결실이 일제에 의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 밝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실제로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추적한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과 임금 침소인 회상전은 남산의 사찰 조계사曹谿寺로 팔려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데 봉사하게 되었다. 경복궁의 전각들은 일본계 사찰에 불하되어 그곳 시설물로 쓰이거나 일본으로 팔려가 유력 인사 자택의 일부가 되었다. 심지어 일본인 상대 요정에 팔려가 기생의 놀이터가 되었다. 고종황제의 구국 의지가 서린 평양 풍경궁 일대는 일제의 군사기지로 전락했고, 그곳 정문인 황건문은 서울의 일본계 사찰 조계사曹谿寺로 팔려왔다. 창경궁은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채 한 세기 가까이 행락객을 맞아야 했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에서는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 등에 대해 파악한다. 아울러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고, 거기 담긴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거듭되어서는 안 될 슬픈 궁궐사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우리 학계는 근대기 조선 궁궐의 사정에 대해 무지했다. 궁궐 등 각종 문화유산의 복원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지금, 정작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왜 복원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과연 가장 먼저 복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복원이 아니라, 바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의식의 회복일 터. 이 책은 이처럼 궁궐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당국에 의해 진행되는 물질적 복원에 앞서, 올바른 역사 인식의 복원을 근간으로 근대기 궁궐사의 공백을 메우고, 이를 통해 현재의 궁궐과 미래의 궁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한다. 아울러 오늘의 궁궐 복원 움직임이 또 다른 궁궐 수난사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사의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책을 내며 : 그 많던 조선 궁궐은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
1. 고종삼천지교高宗三遷之敎 ? 창덕궁에서 경복궁을 거쳐 덕수궁까지
2. 조선 황제의 애달픈 역사를 증명하다 ? 원구단의 철거와 조선호텔의 건축
3. 궁궐 의례의 변화와 존속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
1. 평양의 황건문이 남산으로 내려온 까닭은? ? 궁궐 전각의 민간 이건과 변용
2. 대한제국, 평양에 황궁을 세우다 ? 풍경궁의 영건에서 훼철까지
3. 창경원과 우에노공원, 그리고 메이지의 공간 지배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
1. 궁궐에 들어선 근대건축물
2. 근대의 환상, 신문물 축제의 향연

참고 문헌
도판 출처
궁궐 연표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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