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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의 행간에서 조선의 지식문화를 읽다 (목판과 조선시대 사회문화사 연구)
목판의 행간에서 조선의 지식문화를 읽다 (목판과 조선시대 사회문화사 연구)
저자 : 남권희|노경희|성봉현|손계영|송정숙
출판사 : 글항아리
출판년 : 2014
ISBN : 9788967350963

책소개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4권. 2012년 3월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유교 목판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판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교 목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과제를 안고 수년간 국내외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연구 성과를 집적하고 있었다.



문제는 국내에 목판만을 전문으로 연구한 전문 학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국내 목판 심층연구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7명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각기 자신들의 전공분야와 유관한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모두 세 차례의 워크숍을 통하여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현장 답사를 함께했다.



전공 분야가 다른 연구자 7명이 모여서 1년 동안 진행한 이번 연구는 다채로운 성과를 낳았다. 목판이 지니는 서지학적 측면을 비롯해서 목판 제작의 사회경제적 배경, 지식 정보 전달 매체로서 목판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었으며 이웃한 일본 목판의 특징 그리고 목판이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는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문헌정보학.국어국문학.역사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과 한국국학진흥원이 뜻을 모으고, 선조로부터 받은 목판을 기꺼이 기탁해준 여러 문중 어르신들의 도움에 힘입어 탄생한 빛나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목판은 조선시대의 지식문화와 사회환경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풍부한 목판 사료와 함께 생생하게 읽는 조선시대 출판·지식문화


◎통치수단으로서의 목판: 대량출판이 가능한 목판은 국가가 통치에 필요한 서적을 반포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조선의 대표적 기록유산이자 전통사회의 매스미디어: 지식인들의 사고와 문화를 보존·전승하는 데 왜 목판이 효과적이었으며,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목판 판각사업의 실제: 자금 확보부터 판면 제작, 각수刻手 고용, 판면에 글씨를 새기고 찍어내며 보관하기까지, 목판 출판의 지난한 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본다
◎조선시대 출판문화 연구: 조선시대 목판 출판 방식과 출간된 서적의 종류를 살펴보고 나아가 주변국과의 비교를 통해 근세의 출판문화와 지식 생산구조의 특성을 고찰한다

국내 목판 심층연구서로서의 의의
2012년 3월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유교 목판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판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교 목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과제를 안고 수년간 국내외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연구 성과를 집적하고 있었다. 문제는 국내에 목판만을 전문으로 연구한 전문 학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국내 목판 심층연구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7명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각기 자신들의 전공분야와 유관한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모두 세 차례의 워크숍을 통하여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현장 답사를 함께했다.
전공 분야가 다른 연구자 7명이 모여서 1년 동안 진행한 이번 연구는 다채로운 성과를 낳았다. 목판이 지니는 서지학적 측면을 비롯해서 목판 제작의 사회경제적 배경, 지식 정보 전달 매체로서 목판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었으며 이웃한 일본 목판의 특징 그리고 목판이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는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문헌정보학·국어국문학·역사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과 한국국학진흥원이 뜻을 모으고, 선조로부터 받은 목판을 기꺼이 기탁해준 여러 문중 어르신들의 도움에 힘입어 탄생한 빛나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목판 연구, 왜 중요한가
목판은 국가의 매우 중요한 통치수단이자, 당시 지식인들의 지적 활동과 삶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유산이다. 목판의 큰 특징은 대량 출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목판을 이용하여 통치에 필요한 법률서, 농업서, 의학서, 천문서, 과학기술서, 경서, 역사서 등 수많은 서적들을 인출, 반포했으며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여 지식과 학술정보를 보충하기 위한 서책생산 방식으로 목판을 활용했다. 또한 목판은 문인과 학자들의 관심사나 저술, 문학적 성과물, 주변 인물과의 서간 등을 수록하여 그들의 학문적 역량과 업적을 후대에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목판에는 판목, 종이, 먹 등 출판 관련 산업의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고 판각에 직접 참여했던 인원들과 각수 같은 전문 기능인들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목판 판각 사업에서 파생되었던 효과와 소요 물자, 비용, 판각 기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목판은 가문과 학맥으로 이어진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이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주며, 판각에 직접 참여한 전문 기능인인 각수刻手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들의 활동 범위와 역할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목판 인쇄는 오랜 준비과정과 수차례의 교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막대한 인력과 자금, 정성이 필요한 만큼 처음 목판을 이용한 출판사업은 중앙정부 주도로 정보를 생산하고 지식을 유통시키는 일방향적 형태였다. 그러나 점차 지방과 사찰, 개별 가문에서도 활용하게 되면서 목판 인쇄는 당대의 지식과 문화 발전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 목판 인쇄는 금속활자와 더불어 서책의 생산과 보급을 통한 지식 전달의 한 축이자, 전통사회의 매스미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기록매체로서 목판의 특성
기억의 보존고로서 목판은 여러 강점을 갖고 있다. 특히 활자와 비교하면, 활자는 조판하여 인출하고 나면 판을 해체하는 데 비해 목판은 판각 후 목판을 보관하여 필요할 때마다 인출함으로써 기억을 영구적으로 보존·재현하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다. 아울러 활자는 문자 이외에는 인출이 어려운 데 비해 목판은 그림이나 지도 등의 이미지와 필적도 보존?재현?확산할 수 있다.
목판의 수명은 반半영구적이므로 판각하여 책판을 준비한 뒤에는 종이와 먹만 준비되면 한 번에 대량 인출이 가능하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 인출도 가능하다. 따라서 목판에 담긴 지식과 정보는 원문의 왜곡 없이 언제든지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다. 목판에 담긴 지식과 정보는 확산의 범위가 공시적으로 매우 광범하고, 통시적으로 지속성이 유구하므로 그 영향력도 매우 크다. 목판을 전통사회의 ‘매스미디어’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이에 1878년(고종 15) 도산서원을 방문했던 곽종석(1846~1919)은 도산서원에서 판각한 책판이 갈무리되어 있는 장판각藏板閣 앞에서 “붓 들어 번거롭게 쓰지 않고도 하루에 천 장을 찍을 수 있으니, 이 책판은 유가의 무진장無盡藏이네”라는 시를 지어 목판을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창고 ‘무진장’에 비유했다. 또한 조선조 태종은 성리학의 연원이며 학자들이 반드시 먼저 공부해야 할 서적인 『성리대전』과 『사서대전』 『오경대전』을 신료에게 널리 퍼뜨리기 위해 판목에 새겨 주자소鑄字所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인쇄하게 했다. “『좌전左傳』은 학자들이 마땅히 보아야 할 서적이다. 주자鑄字로 이를 인쇄한다면 널리 반포하지 못할 것이니, 의당 목판에 새겨 널리 간행하도록 하라”고 한 세종의 발언 역시 금속활자에 비해 목판활자의 보급성 및 파급력이 우수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림 및 도형을 판각해 인쇄할 수 있으며, 필자의 서체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목판인쇄의 강점이다. 세종 때 전의감에서 의서를 인쇄할 때도 책에 도형이 없으면 주자 즉 금속활자로 인쇄하고, 도형이 있으면 주자로 인쇄하기가 어려우니 목판에 판각했다. 또한 목판본은 필사본과 같이 필사자의 필체가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글씨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필사자의 개성이나 인격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명가의 글씨를 목판에 판각한 서판이나 책판은 명가의 필적을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하고 확산하는 효과를 거둔다. 즉 목판출판은 글씨를 통해 선인을 만나게 하는 창의 역할을 했고, 이는 책의 권위를 강화해주기도 했다.

목판본 간행의 역사
우리나라의 목판본 인출은 중국으로부터 각종 서적이 유입되고 기록매체가 보급되어 유통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한 나라에서 독자적인 판본을 만들어 기록을 재생산 한다는 것은 먹墨·붓筆·종이紙와 인쇄기술 그리고 문화적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목판본은 한 사회의 지식문화 발전단계와 그 성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우리나라 목판본은 경주 석가탑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본인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을 시초로 한다. 고려시대에는 국시로 불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경전의 수요가 급증했고 점차 발전된 목판 인쇄술과 문화적 역량을 갖추게 된다.
고려시대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한 목판 인쇄문화는 조선에 이르러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유교 경전인 『성리대전』 『사서대전』 『오경대전』을 비롯해 『동국사략』 『자치통감훈의』 등의 역사서와 기본 윤리 지침서인 『효행록』 『삼강행실도』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세종대에 이르러서는 인문과학에서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서적들을 편찬·간행했다. 이상 조선 전기 목판 인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유교 경전을 바탕으로 하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서적들이 역대 왕들의 관심 아래 국가적 정책으로 간행되었다. 이는 곧 교육, 교화, 삶의 질 향상, 통치 수단 등으로 목판본이 활용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선조대의 임진왜란과 인조대의 병자호란 등 거듭된 전란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인쇄기술의 전반적인 역량과 문화적 환경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인쇄문화는 다시금 침체에 빠진다.
조선 후기에 들어 임병양란의 여파가 차츰 안정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학맥의 사승관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저술활동이 이루어졌다. 중앙에서는 활자를 이용해 문집을 간행한 데 비해 지방에서는 목판본을 근간으로 지방 관아와 서원, 사가에서 수많은 문집들을 양산했다. 지방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목판 문집 인출은 학맥과 문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내포된 활동이었다. 이 당시 목판으로 간행된 서책의 배포, 유통, 집서 등은 『고사촬요』 『해동문헌총록』 『누판고』 등의 책판 목록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유학의 진흥, 여러 학문 분야의 발달 및 인재 양성의 필요성 등의 요인은 국가, 사찰, 개인 단위의 문헌 수요를 창출했고 그리하여 인쇄사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목판의 제작, 지난하고도 흥미로운 여정
목판본이란 달필가達筆家에게 원고를 출판된 모양과 같도록 정서精書하게 한 다음, 이를 나무판에 뒤집어 붙이고 앞면의 글자가 비치게 한 뒤에 각수가 정성껏 판을 새기면 먹을 바른 뒤 준비된 종이를 붙이고 문질러 찍어낸 책이다. 하나의 목판은 외형적으로 볼 때 크게 양쪽 손잡이 및 새긴 판면을 보호하는 마구리와 판면板面, 판심版心으로 나눠지고, 이 목판은 다시 용도에 따라 책판冊板, 서판書板, 능화판菱華板, 괘판罫板, 공문판公文板, 도판圖板, 현판懸板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목판본은 기능과 단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그 다양한 명칭만큼 여러 가지 기술과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요구한다. 목판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새긴 후 먹을 바르고 필요한 부수만큼 문질러 찍어내는 인출과정까지, 전문 지식을 가지고 내용의 교정 및 감수를 보는 지식인층과 판면 제작 및 인쇄 작업을 진행하는 기술자들이 상호 협조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때문에 목판인쇄작업이 진행될 때는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지역사회의 협조와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판각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목판본의 간행 단계에서 사회문화적 배경과 지적 저술활동 그리고 편찬 및 배포의 절차를 제외하고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목판 자체와 먹, 종이 같은 재료들이다. 이를 매개로 주어진 정보를 표출하는 행위, 즉 새기고 교정하는 단계를 거쳐, 묶고 제책함으로써 간행이라는 작업은 완성된다. 이 책에서는 목판본 제작이 지역환경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목판의 세세한 제작단계와 재료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당대 인쇄기술과 제작환경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목판의 제작과 건조, 판서본의 제작과 판각, 교정을 거쳐 인출하고 책판을 보관하기 좋게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목판본 인출은 일단락되지만, 여러 원인 때문에 인출본이 석연치 않을 경우 재판이나 보각, 주석 등의 추가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흔했고 보관된 판목이 변형되어 판목 자체를 보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목판의 제작에 있어서는 기술과 재료의 확보만큼 재원과 인력의 확보도 큰 문제였다. 이런 전체적인 과정과 규모는 문집 간역 당시의 기록 자료를 통해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퇴계선생문집』의 『선생문집개간시일기』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의 문집 간행일기에 해당되는 『간소일기』 등 몇 종류의 간행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책의 제1장에서는 『간재선생문집』 간행 당시의 기록인 『문집간역시일기』를 분석함으로써 간행 경위와 준비과정, 간행 작업의 주관자, 원고의 교정자, 판각을 담당한 각수와 각수승, 이를 지원하는 여러 사람과 서원 등의 사항을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집간역시일기』는 인출·제본된 문집을 3차에 걸쳐 나눈 배포처에 대한 상세한 기록 등을 함께 남기고 있어 간행된 목판본의 파급력과 사회적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목판의 행간에서 읽는 조선인의 세계인식과, 세계 속의 조선
조선시대 목판은 조선의 사회상과 문화를 나타내는 기록일 뿐 아니라 조선과 세계를 잇는 통로이자, 주변국과 비교하여 조선 지식 환경이 어떠했는가를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예컨대 서점 상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상업적 성격이 강했던 에도시대 일본의 목판 출판문화와 지방관아나 서원 등의 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학술적 성격이 강했던 조선 목판 출판문화의 비교는 양국 지식문화 생성 방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한편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외국에서 전래되는 문물과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새로운 사회인식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지식 정보의 유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역시 목판이었다. 목판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중반에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는데, 이는 지식 정보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조선시대 지식정보의 전파 방법은 필사, 목판, 목활자, 금속활자 네 가지로 크게 나뉜다. 이 가운데 필사본은 원본을 한 자씩 베껴 쓰는 것으로 널리 전파되기에는 한계가 커 대개 유일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목활자본은 책을 발간한 다음에 활자판을 해체하기 때문에 다시 찍어내기가 어려우며, 금속활자본은 서체가 아름답고 많은 양의 책을 찍어낼 수 있지만 제작비용이 많이 들고 민간에서 쉽게 제작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 가장 유용한 지식 정보의 전달 매체로서 널리 사용된 것은 목판으로 제작된 책판이었다.
이덕무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책판의 제작을 “백대百代의 이익이며 만인萬人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천하의 지극한 보배”라고 언급한 것은 지식의 대중적 보급에 목판이 얼마나 유효적절한 수단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목판의 제작은 특정 저술을 당대의 지적, 문화적 공유자산으로 전환시키는 문화사업의 일환인 동시에 서책을 시공간의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매체적 변혁이었다. 이처럼 목판본은 조선사회 최신 정보의 통로로 기능했으며 당대의 세계인식을 바꾸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른 시기의 일례로 1634년 목판본으로 출간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조선시대 문화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수광이 세 차례에 걸쳐 명나라를 사행한 경험과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내외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동시에 천주교의 교리와 세계 지형과 풍물, 문화를 알리고 있어 신지식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봉유설』을 비롯해 정사신의 『매창집』, 이준의 『창석집』 등에 전해지는 「조완벽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 포로로 잡혀간 조완벽이라는 선비가 일본 상인의 노예로서 베트남에 다녀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의 학자들이 쓴 것인데, 여기서 당시에는 생소하고도 먼 나라였던 베트남의 문물이 조선 지식인의 말글을 통해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나아가 「조완벽전」에는 이수광의 시가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 유행하고 있더라는 내용이 함께 전해지는데, 이런 기록들을 통해 이국의 문화를 점차 가깝게 느끼게 되는 당대 지식인의 인식 변화를 흥미롭게 관측할 수 있다. 목판본으로 보급된 이러한 기록들은 조선 지식인들이 “조선중화주의”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조선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목판이라는 매체의 확산은 지식문화의 생성과 보존을 넘어, 정보를 확산함으로써 동시대인의 세계관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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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머리에 _005



여는 글 목판과 지식문화 - 남권희 _011

목판본의 정의 및 특성│한국 목판의 조사와 연구│한국 목판본 간행의 역할과 기능│목판본 간행

의 경제적 측면과 판각 사업│목판의 제작과정│판면 관련 사항│마구리 관련 사항



제1장 『간재선생문집』의 『문집간역시일기』 읽기 - 남권희 _083

『문집간역시일기』 연구│『간재선생문집』과 『문집간역시일기』의 서지│『문집간역시일기』의 수록 내

용│권말의 문집 반질頒秩기록│문집 간행과정 이해의 중요성



제2장 에도시대의 목판과 한학서 출판 - 노경희 _125

전통시대의 출판│에도시대 교육 기관의 한학서 출판│에도시대 유학자의 한학서 출판│한일 한

학서 출판의 차별적 지점



제3장 『누판고』를 통해 본 정조대의 책판 현황 - 성봉현 _163

『누판고』란 무엇인가│『누판고』의 내용과 연구방법



제4장 책판 간행 이면의 조선 지식문화 저변 - 손계영 _205

지식 공동체가 창출한 책판의 공식 간행처│책판의 실질적 간행 공간│책판 간행 공간의 조건│책

판의 간행 비용 및 지출 항목│책판 연구의 의의와 속성



제5장 지식과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목판 - 송정숙 _251

전통사회의 매스미디어, 목판│기억의 보존고로서 목판의 속성│목판에 담긴 지식과 정보



제6장 조선시대 책판은 어떻게 관리되었나 - 옥영정 _281

조선시대 유교 책판 관리의 전통│책판 관리의 기록과 체계



제7장 조선 지식인, 목판을 통해 세계를 만나다 - 김순석 _317

조선사회 최신 정보의 통로, 목판│조선 지식인의 외국 인식│「조완벽전趙完璧傳」을 통해 본 조선

지식인의 베트남 인식│목판이 선인의 세계관을 바꾸다



부록 _347



주註 _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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