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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자서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과 휘장의 떨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자서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과 휘장의 떨림)
저자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출판사 : 한국문화사
출판년 : 2018
ISBN : 9788968176340

책소개

예이츠의 『자서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1916)은 슬라이고와 런던, 더블린 등에서 그가 유년기부터 20대 중반까지 겪은 일들을 적고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 제1부와는 달리, 제2부 『휘장의 떨림』(1922)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그가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며 겪었던 공적, 사회적 삶의 기록이다.
『자서전』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이 작품이 그의 다른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이츠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므로 『자서전』은 그의 다른 작품들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둘째로 『자서전』은 예이츠 문학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인 예술과 삶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절대적 걸작이며, 예이츠가 남긴 최대의 작품’이라는 아서 시먼스의 평처럼 『자서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젊은 시인의 초상

자서전이란 무엇인가? 자서전을 예술작품의 하나로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자서전을 읽는가?

과거에는 잘 알려진 문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 주로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 필자의 범위는 시대가 흐를수록 확대되어 왔다. 이런 현상은 단지 출판문화의 환경변화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자신을 표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의 수적 증가는 개개의 인간이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은 흔히 회고록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둘 사이의 경계는 사실상 모호하다. 그런데 ‘자서전’이라는 말은 그 대상이 필자 자신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 반해, ‘회고록’이라는 말에는 회고의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윈스턴 처칠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처칠 자신의 얘기라기보다는 세계대전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처칠의 회고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자서전은 주로 한 개인의 생애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 데 반해 회고록은 한 개인의 눈을 통해서 보는 사회로 초점이 열려 있다. 자서전은 그 집필행위를 하는 주체와 대상이 동일한 데 반해, 회고록은 주체와 대상이 동일할 수도 상이할 수도 있는 셈이다.

자서전은 일기나 일지와도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일기나 일지도 집필자 자신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서전과는 달리 매일 매일의 기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자서전이 그 필자의 전 생애를 대상으로 한다면 일기나 일지는 특정 기간의 세세한 일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이 일기나 일지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더 문학적인 틀을 지닌다는 것이다. 일기나 일지는 그날그날 새로이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나중에 하나의 일관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재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단순한 기록의 누적에 불과하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 요구되는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긴밀하게 연결된 통일적 구조와 전개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서전을 전기의 파생된 형태로 보아야 할지, 문학의 장르 상 소설양식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지 하는 등의 문제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엄밀히 보아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서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자서전 하면 흔히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나 <헨리 애덤스의 교육>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예컨대 소설 형식을 취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은 작품도 자서전의 범주에 포함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논의들을 제쳐놓고라도 우리가 자서전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읽는 것은 자서전을 발행하는 행위로 해서 이미 알려지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 아닌 비밀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위는 아니다. 물론 자서전을 쓴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나 그 사람이 혹시나 밝힐지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을 수도 있다. 혹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관심 때문에 읽을지도 모른다.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그보다는 좀 더 복합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선 자서전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 외에도, 현대 영미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그의 시와 시극 등 다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현대 영미시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는 엘리엇과 흔히 비교된다. 몰개성 이론을 내세웠던 엘리엇은 시에서 개인적 목소리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반면 예이츠는 작품에 그의 생애가 그대로 녹아난다.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엘리엇은 고전주의자로, 예이츠는 낭만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생애나 그가 살았던 시대 혹은 역사적 환경을 통해 작품분석을 하는 것을 현대비평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이츠의 경우에는 이렇듯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점에서 자서전은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란 삶에 대한 해석을 영구한 형태로 만든 것이며, 자서전은 예술가 자신의 삶을 예술화한 것이다. 예이츠의 자서전이 중요한 것은 그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인 예술과 삶의 관계를 이 책을 통해 여실히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이츠는 예술과 삶을 하나로 인식한 인물이다. 예이츠는 ‘시인이란 전적인 성실성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시가 훌륭할수록 그의 삶도 성실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과 삶은 불가분의 연속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술가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사적인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 예술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술작품이 되려면 그것들을 객관적 예술형태 속에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이츠가 즐겨 쓴 방법 중의 하나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작품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예이츠의 자서전은 그 자체로도 문학적 중요성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대학생 필수독서목록에도 자주 이름을 올린다. 아서 시먼스는 이 자서전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는 <휘장의 떨림>에 대해 ‘절대적 걸작이며, 예이츠가 남긴 최대의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예이츠의 아버지는 그 자서전에 자신이 아들에게 책을 집어던진 사실이 언급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역시 이 책이 ‘영원히 고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이츠의 자서전은 판본이 여러 개 있다. 처음 <예이츠 자서전>이 나온 것은 1926년의 일로서, Autobiographies: Reveries over Childhood and Youth and The Trembling of the Veil by W. B. Yeats(런던: 맥밀런 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예이츠가 언제부터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자서전 초판에 실린 글들은 예이츠가 애초부터 자서전 일부로 계획하고 썼다기보다는 이미 출판되었거나 초고의 형태로 있던 글들을 다시 다듬고 증보한 것이다.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1916)은 1914년에 쓴 글로서, 예이츠가 유년기부터 20대 중반까지 슬라이고와 런던, 더블린 등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예이츠의 삶을 기록한 제2부 <휘장의 떨림>(1922)은 전체가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이츠 자서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38년에 예이츠의 자서전은 이미 초판 출판 이전에 쓴 일기와 그간 나온 각종 글을 추가하여 The Autobiography of William Butler Yeats, consisting of Reveries over Childhood and Youth, The Trembling of the Veil, and Dramatis Personae (뉴욕: 맥밀런 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예이츠 생전에 나온 마지막 판인 이 증보판에 추가된 글은 예이츠의 극작품 및 극 운동과 관련된 <극 중 인물들>(1936), 1908년 12월부터 1909년 3월까지의 일기 중에서 뽑은 「멀어진 사이: 1909년 일기 초록」과 1909년 3월부터 1914년 10월까지의 일기 중에서 뽑은 「싱의 죽음」, 노벨상 수상(1923) 때의 스웨덴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스웨덴의 너그러움」(1924) 등이다. 196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자서전부터는 예이츠의 노벨 문학상 연설문인 「아일랜드 극 운동」이 추가되었다.

1999년에 스크리브너 출판사에서 비교적 상세한 주석을 곁들여 ≪예이츠 전집≫ 제3권으로 나온 자서전은 Autobiographies. The Collected Works of W. B. Yeats, Vol. III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껏 출판된 예이츠의 자서전 제목이 일정치 않게 Autobiographies 혹은 The Autobiography 식으로 단수 혹은 복수의 형태를 번갈아 썼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26년판에 복수형을 쓴 것은 1916년에 나온 자서전적인 글인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에다 1922년에 나온 또 다른 자서전적인 글인 <휘장의 떨림>을 단순히 모아서 출판했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1938년판에서 예이츠가 정관사를 붙인 단수형 The Autobiography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정식 자서전으로 확정 짓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러나 맥밀런 출판사는 예이츠 사후에 나온 1955년판에 다시 복수형 Autobiographies을 사용함으로써 예이츠의 바람과는 달리 이 자서전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틀이 있는 완결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1938년 증보판 자서전은 예이츠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자서전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1926년에 나온 예이츠의 자서전을 제외하고는, 증보판에 추가된 글들은 대체로 자서전에 어울리는 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추가된 글은 자서전적인 글이라기보다는 예이츠 자신의 극 운동에 관한 글이거나 일기, 스웨덴 인상기, 연설문 등이며, 사실상 시나 에세이, 편지 등으로 분류하여 따로 출판하기에는 애매한 짧은 글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938년에 나온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은 많은 독자가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자전적 에세이 모음집 같다고 말하는 것도 증보 자서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이츠는 1926년 첫 자서전 출판 이후 그 책에서 다루지 못한 30대 중반 이후의 생애를 담아 자신의 완성된 자서전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1926년에 그의 나이가 이미 환갑을 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22년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여 자치정부가 들어선 후 그가 6년간 상원의원으로서 활동한 것도 결과적으로 자서전의 확장을 힘들게 만든 한 요인이 되었다. 더구나 1927년부터 예이츠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그는 폐충혈 때문에 스페인과 남부 프랑스 등으로 요양을 다녔고 1929년에는 이탈리아의 라팔로에서 병으로 쓰러졌다. 상원의원을 연임할 수 없었던 것도 건강문제가 요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가 새로운 자서전을 위한 글을 새로이 써내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따지고 보면 1938년 증보판 자서전에 실린 글들은 1935년에 쓴 <극 중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미 초판 출판 이전에 쓰인 글임을 알 수 있다.

슬프게도 예이츠는 자신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달리 증보판 자서전에서 자신의 후반 생애를 담아내지 못했다. <극 중 인물들>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도 그의 나이 37세인 1902년경에서 끝이 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초판 자서전이야말로 예이츠의 순수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이유들로 해서 1926년 초판 자서전을 번역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이 책의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은 주로 1892년경(27세)까지의 예이츠의 생애와 관련된 기억들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 있는 ‘회상’의 영어 ‘reverie’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몽상, 백일몽, 비현실적인 환상, 꿈속의 생각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초년 시절에 겪은 일들과 그때 느꼈던 생각을 사실적이고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기보다는 떠오르는 대로 그저 꿈꾸듯이 써내려간 글이라는 뜻이다. 제1부의 「서문」에서도 자신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친구나 편지나 옛날 신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억에 떠오르는 대로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든지, 다른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든지,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다는 말은 사실성에 대한 시비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reverie’라는 말은 인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특성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며, 예이츠가 이 글을 쓰던 1914년(49세)에서의 시간적 거리감을 더욱 멀게 느끼도록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 첫머리에 나오는 생애 최초의 기억에 관한 부분에서도 보이듯 단편적 기억들이 마치 꿈에서 나타나는 듯 현재형으로 나열되는 부분이 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이츠는 이렇듯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기술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비판적 독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이 책이 뚜렷한 구조나 탄탄한 틀이 없는 산만한 글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만든다. 애초에 예이츠가 제1부와 제2부를 전체적으로 하나의 틀 속에서 구상하고 기술해 나갔다면, 현재와 같은 제1부와 제2부의 내용 중복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예이츠의 <자서전>에는 한 문장 안에 집어넣기 힘든 내용들이 중문, 복문으로 엉켜있거나 문단의 구분이 적절하지 못하고, 한 문단이 여섯 페이지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체의 부분적인 이유는 이 작품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글이라기보다는 예이츠 자신의 과거 삶을 기억에 떠오르는 대로 기술하고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역자는 원저의 문장과 문단을 그대로 살릴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을 적절히 나누어 우리말로 읽었을 때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인지 하는 선택의 문제로 고민했다. 결국 독자들의 작품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 문장과 문단을 적절히 나누어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제1부가 아무런 구도 없이 닥치는 대로 쓰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비평가들이 있다. 제1부에는 예이츠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은 여러 가지 사건과 가족, 친구, 친척들에 관한 잡다한 얘기가 나온다. 소설의 구조처럼 하나의 중심적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얼핏 전체적인 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건과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예이츠가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갖는 관계와 그들에게서 받게 되는 인상과 영향이 중심축을 이룬다.

선장 출신인 외할아버지 윌리엄 폴렉스펜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매우 강인하고 남성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고, 이것은 약하고 소심했던 어린 시절의 예이츠와 대비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외할아버지의 지혜와 위엄성, 영향력은 점차 쇠퇴하는 반면 삶에 대한 예이츠 자신의 이해력과 인식능력은 확장되어 간다. 부유하고 힘이 넘쳤던 외할아버지는 제1부 마지막에서 재산이 많이 줄어든 채 병들고 약해진 모습으로 죽으면서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때쯤 독립주의자 존 올리어리가 등장하며 예이츠의 마음속에 외할아버지가 차지하던 자리를 이어받는 구조를 갖는다. 외할아버지가 죽을 때쯤 예이츠는 첫 시집 <어쉰의 방랑>(1889)을 출판한다. 이것은 예이츠가 가문의 영향력을 벗어나 시인으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가였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보다 예이츠에게 실질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제1부는 외할아버지와 예이츠의 관계보다는 아버지와 예이츠의 관계가 더 큰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이츠의 성장 과정에 미친 아버지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했다가 최고조에 이른 후 점차 쇠퇴해가는 과정이 이 이야기의 실제 중심축으로 보인다. 제1부 제14장과 제15장의 첫머리는 각각 ‘섹스에 눈뜨는 것은 사내아이의 삶에서 큰 사건이 된다.’와 ‘내 사고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이츠가 성(性)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말은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독립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때쯤 아버지의 영향력은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예이츠에게 성인의 징후가 나타남으로써 아버지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리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실제로 그 이후의 여러 장에서는 아버지의 존재 대신, 예이츠의 창작과 사랑, 신비주의에 관한 관심 등이 이야기의 중심내용이 된다. 예이츠가 첫 시를 쓴 것도 이때쯤이며, 로라 암스트롱과 사랑에 빠지고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 것도 이때쯤으로 되어 있다.

예이츠의 아버지는 자기 예술에 대한 고집이 세고 까다로운 인물로 그려져 있다. 제5장에 나오는 ‘아버지는 그림을 봄에 시작해서 그해 내내 그리셨는데, 그림은 계절에 따라 변해갔고 히스가 덮인 둑에 눈이 내린 풍경을 그리고서는 미완성인 채로 포기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셨고, 자신의 그 어떤 작품도 완성되었다고 자신하지 못하셨다.’와 같은 묘사는 그의 아버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이츠의 아버지는 초상화가였지만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폭넓은 문학적 소양이 있었고, 예이츠가 문학에 관심을 둘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다.

예이츠는 신비주의에 관한 관심 등으로 해서 아버지가 지녔던 성향에서 멀어지고 결국 예술적 독립을 성취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예술관 가운데 그를 평생 지배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술에 있어서의 추상성과 일반화에 대한 혐오였다. 이 책에는 예이츠의 추상성에 대한 혐오와 구체성에 대한 강조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추상성을 피하고 구체성을 중시한다는 말은 사실성을 추구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오히려 제2부 곳곳에서는 19세기의 물질주의를 대표하는 헉슬리, 틴들과 함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카롤루스 뒤랑과 바스티앵르파주가 하나의 다발처럼 같이 묶여 비판되고 있다. 예술의 추상성과 일반화를 피하고 구체화된 경험을 제시하기 위해 예이츠가 택한 방법은 페르소나(persona)의 사용과 극화(劇化)였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페르소나가 작가 자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이츠의 자서전에 나오는 “나(I)”는 예이츠 자신이라기보다는 작품 속에 설정된 가상의 자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2부 <휘장의 떨림>은 대략 1887년경(22세)부터 1903년경(38세)까지 예이츠가 벌인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과 다른 예술가들에 관련된 기억들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제1부가 그랬던 것처럼 자서전으로 묶여 나오기 전에 독립적으로 발행된 작품이다. 그러나 전체가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제2부는 1922년 발행에 즈음하여 한꺼번에 쓰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의 토대가 된 최초의 형태인 소위 “초고”(1972년에 따로 발행된 <회고록>에 실려 있음)는 이미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의 출판을 전후한 시기인 1915~1917년(50~52세)에 쓴 글이다. 예이츠는 이 초고를 바탕으로 1920~1921년 사이에 제2부의 첫 권에 해당되는 「4년간의 삶: 1887~1891」을 쓰고, 1921~1922년 사이에는 「추가 회고록」을 썼다. 그리고 이 두 글과 1896년에 이미 발행된 「1894년의 베를렌」을 수정 증보하여 1922년에 <휘장의 떨림>을 발행했다.

그러나 예이츠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1916)과 <휘장의 떨림>(1922)을 한데 묶어 발행하기 전에 또 이 두 작품에 많은 수정을 가한다. 그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에 실린 글의 일부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1915~1917년의 “초고”를 바탕으로 1923년에 쓰고 발행한 「단편적 전기」를 합쳐서 <휘장의 떨림>을 대폭 수정하고 증보한다. 그러니까 1926년에 발행된 최종적 형태의 초판 <자서전>은 각각 1916년과 1922년에 출판된 형태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주석을 통해 그 차이가 나는 부분을 모두 밝혔다.

“초고”(1915~1917)에 비해 <휘장의 떨림>(1926)은 더 복합적이고 수사학적이며 사색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초고”는 말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의 형태로 되어 있었을 뿐 출판을 전제로 정교하게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휘장의 떨림>의 이런 변화에는 이 두 글 사이에 나온 <비전>(1925)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예이츠의 신비주의적 상징체계를 통합적으로 다룬 <비전>의 집필과 출판은 그의 사고방식과 다른 글의 집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이츠가 “초고”에 쓴 내용 중에 <휘장의 떨림>에서 삭제한 부분들로는 우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내용들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찰스 올덤의 애국심과 도덕성에 대한 풍자나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가 매독에 걸린 일 따위다. 또 예이츠는 글의 전체적인 흐름으로나 균형상 맞지 않는 부분을 조정하기도 했다. 신비주의나 민족주의에 관한 부분 등은 대폭 축소되거나 애매하게 일반적인 관점으로 처리되었고, 예이츠 자신의 성(性)과 사랑에 관한 부분도 역시 축소,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 예이츠가 처음으로 깊은 관계에 빠져든 상대는 다이애나 버넌으로 알려진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였다. 이 관계는 1년 남짓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우정 비슷한 감정으로 변했지만, 예이츠를 감정적으로 깊이 몰두하게 만들었다. 또 예이츠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모드 곤에 대한 사랑은 “초고”의 중심주제 중의 하나였다. 예이츠는 오랜 독신 생활을 접고 1917년(52세)에 조지 하이드 리즈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 두 여인과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중에 희석되거나 축소된 것은 자신의 결혼과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제2부 <휘장의 떨림>의 첫 권 「4년간의 삶: 1887~1891」은 1921년 6월, 7월, 8월 세 차례에 걸쳐 <런던머큐리>와 <다이얼>지에 동시에 연재된 글이다. 이 글이 크게 호응을 받자 예이츠는 자서전을 ≪아일랜드 문예극장≫에 대한 언급으로까지 확장하기로 마음먹는다. <휘장의 떨림>의 제2권 “파넬 이후의 아일랜드” 전부, 그리고 제3권 “카멜레온의 길”과 제4권 “비극적 세대”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었던 「추가 회고록」은 1922년 5월부터 8월에 걸쳐 ≪런던머큐리≫에, 1922년 5월부터 10월에 걸쳐 ≪다이얼≫지에 연재된 글이다. 예이츠는 이 글들을 모아 <휘장의 떨림>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하기로 출판업자 로리와 합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6년에는 10년 전에 이미 발행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을 함께 묶어 <자서전>을 발행했다.

예이츠의 가장 뛰어난 산문 중의 하나로 알려진 제2부 <휘장의 떨림>은 실질적으로 그 분량이나 내용에서 예이츠 <자서전>의 중심적인 부분이다. 제2부는 예이츠의 가족이 베드퍼드 파크로 다시 이사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베드퍼드 파크는 예이츠 가족이 9년 전에 이사 와서 2년 동안 살았던 예술인 마을로서, 그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느낀 경이로운 감정은 제1부에 언급되어 있다. 예이츠는 제2부 서두에서 그 마을에 대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동안 마을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묘사함으로써 제1부와 제2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든다. 이곳으로 다시 이사 온 후에도 예이츠는 가족과 7년을 함께 지냈지만 제2부에는 가족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제1부에서 예이츠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던 아버지의 존재 또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던 만큼 제2부는 개인적 가족사보다는 이런 공적, 사회적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2부에는 가족에 관한 얘기뿐만 아니라 예이츠 존재 자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2부에서 그의 존재는 더 중심적으로 자리를 잡지만, 그 존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신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제1부를 쓸 때의 예이츠는 거기서 다룬 유년기와 청소년기와는 시간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주변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만큼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비교적 심리적으로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2부를 쓸 때의 예이츠는 자신이 글에서 다루는 시기와 시간상 훨씬 가까웠고 언급하는 주변인물들과 아직도 관계가 서로 얽혀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여러 주변인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주변인물을 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페르소나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제2부 제1권 「「4년간의 삶: 1887~1891」은 예이츠가 22~26세이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간은 사실상 제1부 마지막 부분과 겹친다. 여기에는 예이츠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그와 지속적인 우정을 유지한 여러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아일랜드의 행동주의적 민족주의자였던 모드 곤에 대한 사랑 얘기가 담겨있다. 제1부에서는 예이츠가 위기의 순간마다 들었다는 내면의 소리나 요정들, 신비의 새에 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이런 신비적 세계에 대한 예이츠의 관심은 제2부에서는 좀 더 체계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는 마담 블라바츠키와 매서스 등을 만나고, ≪신지학협회≫와 ≪금빛새벽연금술회≫에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제2권 「파넬 이후의 아일랜드」의 제목에 나오는 찰스 파넬은 아일랜드 자치를 위해 일한 의회의 정치지도자였다. 예이츠는 1891년 파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비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아일랜드 문제 해결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향후에는 아일랜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문학예술 운동으로 전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 1891년에 런던에서 창립된 ≪아일랜드 문학회≫와 이듬해 더블린에서 창립된 ≪국립문학회≫였다. 이들의 일차적 목표는 아일랜드의 문학작품을 발행하고 그 책들을 아일랜드 전역에 보급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예이츠는 개번 더피와 편집권을 놓고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그 편집권을 더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예이츠는 자신들의 편집계획을 누설한 친구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제3권 「카멜레온의 길」이라는 제목은 다양성, 변화 가능성, 혼란, 예측 불가 등을 의미한다. 예이츠는 바로 자신도 이런 카멜레온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예이츠는 외삼촌인 조지 폴렉스펜과 함께 여러 가지 신비현상에 관해 탐구한 시절을 즐겁게 떠올린다. 그는 ≪금빛새벽연금술회≫의 매서스에게서 배운 상징들을 실험하고, 그 상징이 인간의 정신에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예이츠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체계나 철학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제4권 「비극적 세대」는 1890년대에 예이츠가 만난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의 인생과 그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들 중 하나는 오스카 와일드로서, 그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결국 동성애 혐의로 파멸한 극작가였다. 재판을 받고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후 국외로 추방되어 파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와일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이츠는 술과 방탕함으로 파멸한 라이널 존슨과 다우슨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제5권 「깨어나는 뼈들」에서 예이츠는 189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폭력적 민족주의 운동들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말았음을 한탄스러운 감정으로 회고한다. 특히 예이츠가 사랑한 모드 곤의 과격한 독립운동에 우려를 표하며, 더 큰 폭력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때 그를 좌절감에서 구한 것은 바로 그레고리 여사와의 만남이었다. 예이츠는 그녀의 장원에 머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그녀와의 협동작업을 통해 아일랜드 민담을 수집하고 아일랜드 극 운동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렇게 이 자서전은 희망적으로 끝이 난다.

제2부에서 예이츠는 자신이 가진 예술관이나 정치적 견해를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당시에 자신이 접한 동료 예술가들과 정치가, 활동가들의 여러 초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인간군상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특별히 알려진 사람 혹은 자신의 예술관이나 정치적 견해와 통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동료 예술가들의 특별한 점을 확실하게 평가해주고 동시에 그들의 기행(奇行) 등도 함께 기록함으로써, 그들이 보여준 활동과 행위의 전체적인 의미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런 포용성과 균형 잡힌 시각은 예이츠가 대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제2부의 권말주석에서 보이듯 예이츠의 자서전은 그가 가졌던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게 배어있다. 어려서부터 그가 가졌던 민간신앙이나 민속, 설화, 마법 등에 관한 관심을 단순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것은 예이츠의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그가 속한 민족과 그 역사, 문화, 전통에 뿌리가 닿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서전 곳곳에서 예이츠는 미신적 행위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여러 행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드 곤이 중요한 사건이 있기 전에 새들을 풀어준 일이나 사람들이 강령회에서 최면에 빠져서 객관적 사실을 망각하는 것을 예이츠는 지적하기도 한다.

예이츠는 자신이 추구한 예술의 경우에도 끊임없이 민족과 역사, 사회문제 등과 연관 지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예술가로서 미를 추구한다거나 민족과 역사의 관점에서 예술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매몰되지 않고 예술을 자연스럽게 민족과 역사, 문명의 문제 등과 연관 지어 전체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독창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어떤 새로운 것, 특이한 것을 찾기보다는 더 큰 덩어리인 자신의 문학적, 예술적 뿌리와 전통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전통에 몰두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민족과 전통의 문제, 예술의 진정한 역할에 관한 문제를 건드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예이츠의 관점에 다른 예술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이츠가 한 고민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는 예술가라면 가져야 할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예이츠가 이 자서전에서 다룬 예술적인 문제들이 예술가로서 고민하게 되는 요소를 모두 포괄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예이츠는 예술가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인간의 삶과 예술의 관계, 예술가와 사회, 시대, 민족과의 관계, 자신이 속한 예술그룹과의 관계 같은 것들에 피상적이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며, 그런 진지한 예술가의 초상이 다른 예술가들에게나 일반 독자들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이츠가 처음부터 자신의 예술관을 보여주려고 이 자서전을 계획했다면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예술의 중요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거론하고 정리했을 것이다. 이 자서전에서 예이츠는 단순히 자신이 지나온 길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이츠가 살았던 시대가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였고 그가 아일랜드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말하자면 그 자신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기와 민족,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얘기를 충실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부딪히게 되는 핵심적인 고민들을 짚어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가 훨씬 편안한 조건에 있었다면, 이를테면 그가 영국인이었거나 지배층으로서 더 안정적인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술가로서 아무리 진지하고 성실했다고 하더라도 창작자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에 거쳐야 할 기본적인 관문, 건드리고 지나가야 할 법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상황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시대였기에 그 상황에 충실하게 대응함으로써 예술에서 고민해야 할 많은 문제가 저절로 건드려진 것이다. 예이츠는 예술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가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은 독자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단지 자신의 살아온 경험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성찰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집필행위 자체가 작가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고 그의 감정을 정화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예이츠는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회고록은 마치 몸을 씻고 새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자신이 깨끗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서전의 의미를 크게 확대한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 매일, 그리고 일생을 통틀어 자서전적 행위를 하면서 살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매일 반추하고 정리하며, 과거의 삶을 회고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 행위가 글을 통해서건 마음속 생각을 통해서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떠올린 과거는 과거 그 자체는 아니다. 떠올린 것이 바로 그날의 일이거나 조금 전의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일 자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에 의해서 재정리되고 해석된 과거, 현재화된 과거이다. 우리는 칼날 같은 현재의 순간에 살고 있을 뿐이다. 영원한 현재밖에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가상의 시간일 뿐이다. 떠올린 과거는 현재 순간에 해석한 과거일 뿐이다.

순간순간 다시 나타남으로써 그것은 살아있는 새로운 현재가 된다. 예이츠가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의 과거를 계속 현재화하며 자신의 삶으로 만들었듯 우리도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과거의 삶을 현재화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도 현재화하고 있다.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 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 지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존재를 확실히 해주는 것은 바로 과거를 계속 현재화하는 우리의 자서전적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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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
서문

<휘장의 떨림>
서문
제1권 4년간의 삶: 1887~1891
제2권 파넬 이후의 아일랜드
제3권 카멜레온의 길
제4권 비극적 세대
제5권 깨어나는 뼈들
권말주석

해설: 젊은 시인의 초상
예이츠 연보
예이츠 친가 외가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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