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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자서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과 휘장의 떨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자서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과 휘장의 떨림)
저자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출판사 : 한국문화사
출판년 : 2018
정가 : 35000, ISBN : 9788968176340

책소개

예이츠의 『자서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1916)은 슬라이고와 런던, 더블린 등에서 그가 유년기부터 20대 중반까지 겪은 일들을 적고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 제1부와는 달리, 제2부 『휘장의 떨림』(1922)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그가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며 겪었던 공적, 사회적 삶의 기록이다.

『자서전』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이 작품이 그의 다른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이츠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므로 『자서전』은 그의 다른 작품들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둘째로 『자서전』은 예이츠 문학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인 예술과 삶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절대적 걸작이며, 예이츠가 남긴 최대의 작품’이라는 아서 시먼스의 평처럼 『자서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 / 역자소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의 시인 W.B. Yeats는 더블린의 샌디마운트가에서 탄생했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더블린 및 런던에서 화가가 되려고 수업하였으나 전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시집 《오이진의 방랑기 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는 켈트 문학 특유의 유현(幽玄)하고 표묘(渺)한 정서를 풍겨, 당시의 세기말 시인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과의 교우로 ‘시인 클럽’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그는 라파엘 전파(前派)의 영향 아래, 낭만적인 주제와 몽환적(夢幻的)인 심상(心象)을 즐겨 묘사하였다.

1891년 동지들과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어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1899년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더블린에 창립하였다. 이 동안 그는 환상적이며 시적인 《캐서린 백작부인》(1899년 초연)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 J.M.싱 등과 협력하여 아일랜드 극(劇) 발전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미모의 민족주의자 M.곤 등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극장 경영, 배우 훈련, 정치 참여 등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의 중기는 대체로 실천에 중점을 두었다.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그의 시상은 이 실천으로 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여전히 심령론(心靈論) 연구를 계속하였고, 1917년에는 무녀(巫女)와 결혼까지 하였다. 예이츠의 복잡한 후기의 시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舞姬)》(1921) 《탑(塔)》(1928) 등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성적이고 우미하던 스타일은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환상적이던 심상(心象)은 금속적(金屬的)이라 할 만큼 구체성을 지닌 심상으로 전화(轉化)하였다. 그와 동시에 주의의 초점은 그 근저에 깔린 세계관(그것은 그의 경우, 동시에 예술관이기도 하지만)의 심화이다.

그는 시초부터 라파엘 전파, 이어서 상징주의의 영향에서 자연과 대립하여, 자연보다 우월한 것으로서의 예술의 세계를 믿어 왔다. 그의 후기의 고투는 이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는 고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고뇌를 그는 W.블레이크의 《예언의 서(書)》를 생각하게 하는, 독자적 신화로써 극복하려고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난해한 산문집 《환상 (A Vision)》(1925) 을 지었다.
[예스24 제공]

저자의 다른 책

    The Wild Swans at Coole
    2018.10
    The Green Helmet, and Other Poems
    2018.10
    Where There Is Nothing Being
    2018.03
    Mosada a Dramatic Poem
    2018.03

목차정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
서문

[휘장의 떨림]
서문
제1권4년간의 삶: 1887~1891
제2권파넬 이후의 아일랜드
제3권카멜레온의 길
제4권비극적 세대
제5권깨어나는 뼈들
권말주석

해설: 젊은 시인의 초상
예이츠 연보
예이츠 친가 외가 가계도
찾아보기: 예이츠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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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젊은 시인의 초상

자서전이란 무엇인가? 자서전을 예술작품의 하나로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자서전을 읽는가?

과거에는 잘 알려진 문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 주로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 필자의 범위는 시대가 흐를수록 확대되어 왔다. 이런 현상은 단지 출판문화의 환경변화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자신을 표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의 수적 증가는 개개의 인간이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은 흔히 회고록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둘 사이의 경계는 사실상 모호하다. 그런데 ‘자서전’이라는 말은 그 대상이 필자 자신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 반해, ‘회고록’이라는 말에는 회고의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윈스턴 처칠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처칠 자신의 얘기라기보다는 세계대전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처칠의 회고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자서전은 주로 한 개인의 생애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 데 반해 회고록은 한 개인의 눈을 통해서 보는 사회로 초점이 열려 있다. 자서전은 그 집필행위를 하는 주체와 대상이 동일한 데 반해, 회고록은 주체와 대상이 동일할 수도 상이할 수도 있는 셈이다.

자서전은 일기나 일지와도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일기나 일지도 집필자 자신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서전과는 달리 매일 매일의 기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자서전이 그 필자의 전 생애를 대상으로 한다면 일기나 일지는 특정 기간의 세세한 일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이 일기나 일지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더 문학적인 틀을 지닌다는 것이다. 일기나 일지는 그날그날 새로이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나중에 하나의 일관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재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단순한 기록의 누적에 불과하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 요구되는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긴밀하게 연결된 통일적 구조와 전개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서전을 전기의 파생된 형태로 보아야 할지, 문학의 장르 상 소설양식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지 하는 등의 문제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엄밀히 보아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서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자서전 하면 흔히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나 [헨리 애덤스의 교육]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예컨대 소설 형식을 취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은 작품도 자서전의 범주에 포함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논의들을 제쳐놓고라도 우리가 자서전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읽는 것은 자서전을 발행하는 행위로 해서 이미 알려지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 아닌 비밀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위는 아니다. 물론 자서전을 쓴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나 그 사람이 혹시나 밝힐지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을 수도 있다. 혹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관심 때문에 읽을지도 모른다.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그보다는 좀 더 복합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선 자서전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 외에도, 현대 영미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그의 시와 시극 등 다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현대 영미시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는 엘리엇과 흔히 비교된다. 몰개성 이론을 내세웠던 엘리엇은 시에서 개인적 목소리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반면 예이츠는 작품에 그의 생애가 그대로 녹아난다.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엘리엇은 고전주의자로, 예이츠는 낭만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생애나 그가 살았던 시대 혹은 역사적 환경을 통해 작품분석을 하는 것을 현대비평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이츠의 경우에는 이렇듯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점에서 자서전은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란 삶에 대한 해석을 영구한 형태로 만든 것이며, 자서전은 예술가 자신의 삶을 예술화한 것이다. 예이츠의 자서전이 중요한 것은 그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인 예술과 삶의 관계를 이 책을 통해 여실히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이츠는 예술과 삶을 하나로 인식한 인물이다. 예이츠는 ‘시인이란 전적인 성실성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시가 훌륭할수록 그의 삶도 성실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과 삶은 불가분의 연속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술가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사적인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 예술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술작품이 되려면 그것들을 객관적 예술형태 속에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이츠가 즐겨 쓴 방법 중의 하나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작품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예이츠의 자서전은 그 자체로도 문학적 중요성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대학생 필수독서목록에도 자주 이름을 올린다. 아서 시먼스는 이 자서전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는 [휘장의 떨림]에 대해 ‘절대적 걸작이며, 예이츠가 남긴 최대의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예이츠의 아버지는 그 자서전에 자신이 아들에게 책을 집어던진 사실이 언급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역시 이 책이 ‘영원히 고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이츠의 자서전은 판본이 여러 개 있다. 처음 [예이츠 자서전]이 나온 것은 1926년의 일로서, Autobiographies: Reveries over Childhood and Youth and The Trembling of the Veil by W. B. Yeats(런던: 맥밀런 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예이츠가 언제부터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자서전 초판에 실린 글들은 예이츠가 애초부터 자서전 일부로 계획하고 썼다기보다는 이미 출판되었거나 초고의 형태로 있던 글들을 다시 다듬고 증보한 것이다. 제1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1916)은 1914년에 쓴 글로서, 예이츠가 유년기부터 20대 중반까지 슬라이고와 런던, 더블린 등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예이츠의 삶을 기록한 제2부 [휘장의 떨림](1922)은 전체가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이츠 자서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38년에 예이츠의 자서전은 이미 초판 출판 이전에 쓴 일기와 그간 나온 각종 글을 추가하여 The Autobiography of William Butler Yeats, consisting of Reveries over Childhood and Youth, The Trembling of the Veil, and Dramatis Personae (뉴욕: 맥밀런 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예이츠 생전에 나온 마지막 판인 이 증보판에 추가된 글은 예이츠의 극작품 및 극 운동과 관련된 [극 중 인물들](1936), 1908년 12월부터 1909년 3월까지의 일기 중에서 뽑은 「멀어진 사이: 1909년 일기 초록」과 1909년 3월부터 1914년 10월까지의 일기 중에서 뽑은 「싱의 죽음」, 노벨상 수상(1923) 때의 스웨덴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스웨덴의 너그러움」(1924) 등이다. 196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자서전부터는 예이츠의 노벨 문학상 연설문인 「아일랜드 극 운동」이 추가되었다.

1999년에 스크리브너 출판사에서 비교적 상세한 주석을 곁들여 ≪예이츠 전집≫ 제3권으로 나온 자서전은 Autobiographies. The Collected Works of W. B. Yeats, Vol. III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껏 출판된 예이츠의 자서전 제목이 일정치 않게 Autobiographies 혹은 The Autobiography 식으로 단수 혹은 복수의 형태를 번갈아 썼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26년판에 복수형을 쓴 것은 1916년에 나온 자서전적인 글인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에다 1922년에 나온 또 다른 자서전적인 글인 [휘장의 떨림]을 단순히 모아서 출판했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1938년판에서 예이츠가 정관사를 붙인 단수형 The Autobiography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정식 자서전으로 확정 짓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러나 맥밀런 출판사는 예이츠 사후에 나온 1955년판에 다시 복수형 Autobiographies을 사용함으로써 예이츠의 바람과는 달리 이 자서전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틀이 있는 완결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1938년 증보판 자서전은 예이츠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자서전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1926년에 나온 예이츠의 자서전을 제외하고는, 증보판에 추가된 글들은 대체로 자서전에 어울리는 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추가된 글은 자서전적인 글이라기보다는 예이츠 자신의 극 운동에 관한 글이거나 일기, 스웨덴 인상기, 연설문 등이며, 사실상 시나 에세이, 편지 등으로 분류하여 따로 출판하기에는 애매한 짧은 글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938년에 나온 예이츠의 자서전을 읽은 많은 독자가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자전적 에세이 모음집 같다고 말하는 것도 증보 자서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이츠는 1926년 첫 자서전 출판 이후 그 책에서 다루지 못한 30대 중반 이후의 생애를 담아 자신의 완성된 자서전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1926년에 그의 나이가 이미 환갑을 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22년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여 자치정부가 들어선 후 그가 6년간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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