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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혼 (1940년, 누가 시를 보았는가)
시의 황혼 (1940년, 누가 시를 보았는가)
저자 : 조영복
출판사 : 한국문화사
출판년 : 2020
ISBN : 9788968178665

책소개

“시는 어느 때 보다 아름답고 숭고하고 빛나는
우리말의 성채를 담금질하고 있다.”

어둠 속에 잠겨든 침묵의 문자를 읽는 것은 ‘상징’을 읽는 것이고, 시대의 ‘황혼녘’에서 우리시의 빛나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했다. 임화의 일제말기 평론들이 주는 가치를 읽게 되었고, 1930년대 중후반기에 등단한 신진시인들의 언어적 · 문학적 관점이 갖는 힘들이 느껴졌다. ‘시단’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말(언어)’이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언급된 시인들은 임화, 김광균, 이용악, 오장환, 서정주, 윤곤강, 백석, 김기림 등이다. 윤동주, 이육사, 정지용, 임학수, 이찬, 조벽암, 김종한 등의 시와 논점이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기존의 문학사조적 관점이나 ‘모더니즘/리얼리즘 관점’으로는 포회되지 않는 조합인데, 그들은 한결같이 어둠 속에서 별무리처럼 얽혀있는 언어의 불꽃들을 친구 삼아 시를 썼다.
- 머리말 중에서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머리말]
‘황혼(黃昏)의 시학(詩學)’을 위하여

어둠 속의 별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입 속에 장미가시가 돋고 저 무덤이 일어나 먼 곳의 강물을 굽어보고 등곱새가 샘물을 찾아 물 한모금 마시고 거리로 내려오는, 그런 시대의 시를 읽었다. 일제말기, 그러니까 1940년 전후의 시들 · 시론들 · 시인들의 글을 읽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의 술어의 전환이 필요했던 시대는, 신비롭게도, 그 어느 시기보다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유연하고도 유장하게 넘실거리는 그런 생명의 힘들이 있다. 저 어둠의 거리를 휘몰려 다니는 군중들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빛이 어른거리는 시대는 ‘시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일제시대 신문 · 잡지를 읽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문헌연구에 속한다. 어쩌면 가장 아카데믹하고 고답적인 문헌연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학위취득용 연구의 주요대상들조차 1980년대의 문학으로 옮겨온 지 꽤 오래되었다. 근대문학 100년의 문학사적 토대에서 일제시대 문학은 지루하기도 하고 또 동어반복적인 가치를 재생산하는 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본인 스스로 ‘근(현)대문학전공자’라기 보다는 ‘고전문학연구자’, 아니면 ‘근대문헌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집약돼 있는 일제시대의 문학적 담론을 다루는 연구 자체가 타인들에게는 공소하기 그지없는 동어반복의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는 문학의 윤리적 태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시기의 문학적 주제들인데, 타인의 눈에는 그 연구가 오히려 비문학적이거나 또 비문학적이어서 비윤리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무용하고 공허한 동어반복이 연구자로서의 자존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본인 역시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문학과 윤리, 시와 산문(담론)이 ‘안’과 ‘밖’의 문제로 서로 어긋나고 겹치면서 또 서로가 서로를 지우면서 각자 자신의 길을 달려나가는 시대의 힘이 이 시기의 문학에 있다. 이것만큼 인내의 시간을 붙들어 매는 것도 없다.
‘일제말기’라는 범칭적인 용어를 되풀이한 것은 1940년 전후의 사회 · 정치적 환경이 고려된 때문인데, 이 연구는 우리말로 문학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의 소멸 시점, 그러니까 1940년 전후, 민간신문인 〈동아일보〉 · 〈조선일보〉 폐간 전후와, 〈문장〉 · 〈인문평론〉 등의 잡지의 폐간 전후에 나온 시들 및 문학적 담론들을 주 대상으로 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모국어(조선어)로 시를 쓸 수 있는가, 시를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는가 등의 문제가 시인들에게 어떤 ‘윤리’를 강요하고 있었다면, 이 ‘윤리’란 정치적 · 산문적 윤리와는 다른 차원에 속하는 문제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인들은 어떻게 말하는가’가 이 저서의 기본 출발점이다. ‘상징’을 새삼 끌고 온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유입 같은 문예사조사의 문제가 아니다. 불요불급하나 불가항력적인 말의 힘이 ‘상징’에 있고 그것이 일제말기의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러다보니 시는 어느 때 보다 아름답고 숭고하고 빛나는 우리말의 성채를 담금질하고 있다. 장미의 가시를 입에 문 채 시인들은 언어의 칼을 달구면서 홀로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역사의 맨얼굴을 본다. “이윽고 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잠겨든 침묵의 문자를 읽는 것은 ‘상징’을 읽는 것이고, 시대의 ‘황혼녘’에서 우리시의 빛나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했다. 임화의 일제말기 평론들이 주는 가치를 읽게 되었고, 1930년대 중후반기에 등단한 신진시인들의 언어적 · 문학적 관점이 갖는 힘들이 느껴졌다. ‘시단’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말(언어)’이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언급된 시인들은 임화, 김광균, 이용악, 오장환, 서정주, 윤곤강, 백석, 김기림 등이다. 윤동주, 이육사, 정지용, 임학수, 이찬, 조벽암, 김종한 등의 시와 논점이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기존의 문학사조적 관점이나 ‘모더니즘/리얼리즘 관점’으로는 포회되지 않는 조합인데, 그들은 한결같이 어둠 속에서 별무리처럼 얽혀있는 언어의 불꽃들을 친구 삼아 시를 썼다. 그것이 공부하는 내내 힘이 되었고 어쩌면 숭고했을 그들의 책무 앞에서 나 스스로 겸허해졌다. 한 철학자는 이 같은 시대의 심정을 ‘십자옥 앞에서 누구나 고민하는 정신’이라 썼는데, 철저하게 무신론적이고 비루하고도 속악한 것들에 집착하는 본인마저 무엇인가 종교적이고 경건한 ‘십자옥’ 앞에 내던져진 감흥들을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저서에 다소 종교적인 용어나 개념들이 사용되었지만 기독교적인 맥락이나 종교적인 문맥으로 이해할 바는 아니다.
‘고전문헌’이나 다름없는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 5년 가량의 시간은 시 공부하는 자로서의 재미를 붙이는 일이기도 했다. ‘윤리’나 ‘의무’ 같은 그런 무거운 의식은 사실 애초에 없었는데도, 일제말기를 산 시인들의 ‘심정’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은 좀 어렵잖이 가질 수 있었다. 윤곤강이 말했듯, 어둠의 깊은 장막 속에서나 가슴에 불을 품고 별떼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법인데, 지금 본인은 너무 많은 말과 그 말에 비해 그다지 갖출 것 없는 요설을 풀어놓고 있다. 말이 이렇게 무성한 시대에 말을 줄이고 말을 절약하고, 말을 가슴의 불로, 장미로 키우는 훈련이 필요할 듯하다.
근대시사의 ‘판’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새삼 한다. ‘어둠’과 ‘밤’을 ‘역사주의적인’ 문맥으로 가르치는 시교육의 문제도 새삼 고민하게 된다. 양식론적인 관점에서 ‘시’와 ‘산문(담론)’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시키고, 비유(상징)라는 시적 언어의 말법으로 시를 가르치는 것을 시교육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개인의 목소리가 집단의 음성으로 터져나오는 그런 ‘꽃씨가 터져나오는 밤’의 숭고한 목소리를 읽고 그것을 각자 자신의 것으로 이해해야 시가 재미있다. 일제시대의 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1부는 총론격의 서술이며, 2부는 일제말기 시를 읽기 위한 전체적인 ‘구도’와 각각의 ‘개념’을 서술했다. 마지막 3부는 개별 시인론인데, 일정 정도 1부 · 2부의 글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이 저서에 인용된 텍스트는 1940년 전후에 발간된 신문 · 잡지에서 온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사후 출간된 전집들에서 추출된 부분도 있다. 표지화의 작은 모티브들은 일제말기에 간행된 잡지의 컷 · 삽화에서 차용했다.
상품성도 상업성도 없는 연구서를 출간한다는 것은 출간을 의뢰하는 입장에서도 송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출간해 주신 한국문화사와 편집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9년 12월 마지막 날을 보내며,
저자 조 영 복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PROLOGUE
소극적 반동에서 능동적 의지로
- ‘하지 않으면 안 된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1부 총론
시와 불, 시인과 장미

2부
황혼과 양식
1. ‘최후의 양식(Lateness)’으로서의 상징
(1) 황혼기에 시는 어떻게 오는가
(2) 황혼의 역사철학적 해석-황혼과 비극적 세계관

2. 황혼과 상징
(1) 황혼, 꿈과 외롬 ‘사이’에 있는 것
(2) 상징과 계시, 상징주의 재론
(3) ‘밤’의 언어 - ‘상징’의 소셜미디어(Social Media)적 가치
(4) 예언의 말, 침묵의 노래- ‘-노라’와 묵시체
(5) 황혼과 세대론-신세대 시인과 상징 코드

3. ‘황혼’의 시적 논리와 해석학적 관점
(1) 시적 언어와 산문적 언어
(2) ‘황혼’의 이론적 · 해석학적 접근
(3) 文章‘保國’: ‘文章’保國-산문과 담론의 논리를 넘어서
(4) 현실: 언어-상실된 것: 영원한 것

4. ‘황혼’의 이념과 그 표상들
(1) 황혼과 숭고
(2) 황혼과 고전
(3) 황혼과 울음
(4) 황혼과 무덤
(5) 황혼과 고원
(6) 황혼과 가을
(7) 황혼과 중간인들

3부
황혼기의 시인들
김광균; ‘황혼’을 움직이는 반가(反歌)의 산책자
이용악; ‘황혼’에 나는 등곱새와 미래의 꽃씨
오장환; 어둠 속 푸른 불을 품은 거북
서정주; 마왕 ‘루시퍼’(Luciper)의 교의(敎義)로부터 ‘브륀힐데’(Brynhildr)의 구원으로
윤곤강; ‘황혼’의 풍경화와 ‘별떼’의 축제
백석; ‘슬픔’의 질문에서 ‘침묵’의 성스러움까지
김기림; ‘어둠’을 빨아들이는 청동 그릇의 향훈(香薰)

EPIOGUE
‘황혼의 시학’과 시의 주권(主權)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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