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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저자 : 이선옥
출판사 : 돌베개
출판년 : 2011
ISBN : 9788971994184

책소개

옛 선비들, 사군자 그림에 마음과 뜻을 오롯이 담다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의 참모습이 살아 숨쉬는「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시리즈 제8권『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수백 년 동안 걸쳐 내려온 우리나라 사군자화의 역사를 생생한 컬러화보와 함께 소개한 책이다. 사군자가 문인과 선비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주된 창작의 소재가 된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다. 사군자의 네 가지 소재, 즉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각각의 시대별로 구분해 그 특징과 변화 양상을 2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사군자’라 불리는 매란국죽은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의 덕성을 닮은 대상으로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다. 사군자에 대한 애호와 이를 소재로 한 예술 창작과 문화의 역사는 유교철학의 발달과 이를 주도했던 문인들의 문화 흐름과 그 맥을 나란히 한다.

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 시리즈의 제8권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문화원형 가운데 하나이자, 지금도 여전히 수묵화의 소재로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군자 그림의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책이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 선비들이 마음에 품고 사랑했던 ‘사군자’의 문화사

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 시리즈의 제8권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문화원형 가운데 하나이자, 지금도 여전히 수묵화의 소재로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군자 그림의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책이다.

‘사군자’라 불리는 매란국죽은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의 덕성을 닮은 대상으로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다. 사군자에 대한 애호와 이를 소재로 한 예술 창작과 문화의 역사는 유교철학의 발달과 이를 주도했던 문인들의 문화 흐름과 그 맥을 나란히 한다.

옛 선비들, 사군자 그림에 마음과 뜻을 오롯이 담다

책의 서두에서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특별히 사군자(四君子)라 부르게 된 연유, ‘사군자’가 문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살핀다. 특히 사군자를 생활과 사상의 일부로 삼았던 문인들의 고결하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대표작 그림들을 통해, 문인과 선비들이 가장 사랑했고 주된 창작의 소재로 여겼던 사군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독자들은 수백 년에 걸쳐 그려진 한국의 사군자화를 2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감상하게 된다. 사군자 네 가지 소재를 각각 시대별로 구분하여, 그 특징과 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시대별로 그리고 화가에 따라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그려진 사군자를 통해, 그린 이가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또한 어떠한 마음으로 사군자를 바라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군자 그림에는 다른 어떤 소재의 그림보다도 더욱,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매란국죽은 어떻게 ‘사군자’라 불리게 되었나?

매란국죽을 사군자라 부르게 된 것은, 옛사람들이 이들의 특성에서 군자의 품성이라 할 만한 특별한 장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군자는 ‘군자’(君子)라는 최고의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강한 가치지향적 상징을 지닌 대상이 되었다. 군자란 유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 덕목을 갖춘 인간상으로, 곧 선비정신을 간직한 고결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매화’의 개화로 봄을 가늠하고 ‘국화’ 향으로 가을이 짙어감을 짐작하던 시절, 사람들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려는 겸손함이 있었다. 눈보라 속에 꽃망울을 맺어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다녔고, 풀잎처럼 약해 보이지만 한결같이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난’을 그리워하였다. 뭇꽃이 진 늦가을 서리에도 꿋꿋하였던 ‘국화’를 칭송하였고, 곧고 늘 푸른 ‘대나무’를 정신적 친구로 삼기도 하였다. 옛사람들은 모진 계절의 변화에도 의연히 제 본분을 지키는 이들 식물에서 군자다운 삶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군자의 길은 옛 선비들이 가장 닮고 싶어 했던 ‘이상적 인간상’이었다. 많은 선비들은 군자의 모습을 닮은 사군자에 특별히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 그림으로 그렸다.

고고한 기품의 매화 그림, 맑은 향기 머금은 난 그림,
서리를 이긴 은은한 향취의 국화 그림, 공간미 담은 대나무 그림
- 사군자 그림의 연원과 사군자 문화의 발달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되는 선비를 군자라 일컫는 만큼 ‘사군자’는 원래 뜻이 높은 네 사람을 일컫는 말로,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유래했다. “제(齊)나라의 맹상(孟嘗), 조나라의 평원(平原), 초나라의 춘신(春申), 위나라의 신릉(信陵) 등 네 군자는 모두 밝은 지혜가 있으면서도 충성스러운 믿음이 있었고, 관대하고 후덕하면서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현자를 존경하면서도 선비를 중하게 여겼다”라고 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사군자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덕이 있는 네 사람을 칭하여 사군자라 부른 예가 종종 있었으며, 이밖에 세한삼우(歲寒三友, 매화와·소나무·대나무)나 이아(二雅, 매화·수선)처럼 의미와 성격이 서로 비슷한 사물을 묶어 사람에 비유하거나 시로 읊고 아끼는 전통이 있었다.
중국 송대의 성리학자들이 철학의 논리와 사상을 끌어와 사물에 부합시키려는 노력에 힘입어 영물시(詠物詩)와 함께 시서화의 조화와 필력을 중시하는 문인화가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문인화의 주요 소재는 산수와, 매란국죽 사군자이다. 산수는 예로부터 우주자연의 축소판으로 화폭에 도를 체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소재로 여겨졌고, 사군자 역시 그 상징성으로 인하여 문인들이 가장 가까이했던 소재였다. 특히 사군자를 그리는 필획은 문인들이 늘 쓰는 글씨의 필획과 유사하여 문인화의 대표 화목(畵目)이 되었다.

사군자를 사랑했던 문인들

사군자라고 하면 대체로 사군자화를 떠올리지만 그림으로 그려지기 훨씬 이전에도 많은 시와 글에서 사군자가 노래되었다. 사군자는 그것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오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된다. 눈 속에 매화를 찾아다녔다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나 매화를 아내 삼아 고산에 은거하였던 송대 은일시인 임포, 국화를 심고 이를 가꾸며 유유자적했던 진나라 때의 도연명, 대나무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했던 왕휘지나 북송대 문인화가 소식 등의 고사(故事)는 중국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들의 고사는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졌으며 그림의 소재로도 즐겨 다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시 60여 수로 『매화시첩』을 엮은 조선 중기 이황을 비롯해, 매화를 좋아하여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매화시를 읊고 매화차를 마시며 사는 곳도 매화시 백 수를 읊는다는 뜻의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했다는 19세기 매화화가 조희룡, 수십 종의 국화를 길렀다는 무명의 18세기 김노인(金老人)의 이야기 등은 이야기 자체로서도 흥미를 더하며 사군자화의 발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벗이자 이상, 사군자 그림의 이해와 감상

- 조선시대 최고의 매화도라는 찬사, 오만 원권 뒷면에도 실린 어몽룡의 ‘월매도’

매화는 종류에 따라 나무의 생김새나 꽃모양이 다소 다르긴 하나, 옛 문인들은 매화의 여러 가지 중 자신이 좋아하는 점을 들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였다. 어떤 이는 운치를, 또 어떤 이는 자태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전반적으로는 줄기와 가지, 꽃은 번잡하지 않고, 나무가 오래되어 구불구불 괴이하게 생기고, 줄기와 가지는 야위었으며, 활짝 핀 꽃보다는 봉오리가 맺힌 꽃을 더 귀하게 여겼다.

어몽룡은 조선시대에 당대 최고로 매화도를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 그의 그림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매도〉가 유명한데, 굵고 곧은 매화 줄기는 오랜 풍상을 겪은 듯 모두 끝이 부러져 있고, 가지는 기운차게 뻗어 올라 잔가지에 듬성듬성 매화꽃과 봉오리를 달고 있다. 매화와 달이 이루는 간결한 구도로 시원한 여백을 두어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본문 107~108쪽). 〈월매도〉는 오만 원권 지폐 뒷면에 실려 있기도 하다.

― 매화도의 새로운 장을 연 19세기, 이를 주도한 매화 마니아 조희룡의 ‘홍매도대련’
공간의 미를 한껏 살리며 고결함과 선(禪)적인 고요의 경지까지 보여주었던 조선 중기 어몽룡의 매화와,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매화 그림을 보여주었던 강세황·심사정 등이 활동했던 조선 후기를 지나면,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새로운 모습의 매화도가 등장한다. 이는 당대의 매화 마니아였던 여항화가 조희룡에 의해 주도된다.

조희룡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하였던 만큼 매화 그림 또한 다양한 형식으로 즐겨 그려 한 작가로서는 가장 많은 30여 점이 넘는 작품이 전한다. 그의 매화도는 이전 시기의 매화도와는 달리 줄기는 굵고 각이 져 기이하게 구불거리며, 꽃잎의 필선 하나하나에 탄력이 있어 탐스럽고 화려하다. 조희룡은 또한 홍매를 즐겨 그렸는데, 붉은 꽃이 핀 화려한 매화도는 당시 매화도 화풍을 주도할 만큼 독창적이었고 형식에서나 화풍 면에서 후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매화도 화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홍매도대련〉은 물을 박차고 승천하는 용처럼 뻗어 올라가는 줄기에 붉은 꽃이 화면 가득 피어 있는 두 폭의 그림이다. 붉은 꽃은 온몸의 기운이 토해져 나온 듯 불꽃같은 형상이다(본문 141쪽). 그는 〈홍백매도팔폭병풍〉에 자기 매화 그림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제사(題辭)를 적기도 했다(본문 145쪽). 이에 의하면, 조희룡은 자신의 매화 그림은 기존의 화론에서 이야기하는 꽃과 나무를 그리는 화법(畵法)이 아닌 전서와 예서의 서법에서 온 것이라 하였다. 매화 그림의 요체를 서체에서 찾은 것이다.

― 호방하고 활달한 필치와 자유로운 감각, 임희지의 ‘난죽석도’
꽃 중의 군자로 일컬어져 고결함을 상징하는 난은 연약한 듯하면서도 사철 푸른 빼어난 잎과 맑고 은은한 향으로 오랜 세월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문인화의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동양화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시작할 만큼 필획의 기본으로 삼는 문인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

난은 군자의 꽃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소동파(소식)의 「양차공의 춘란에 쓰다」(題楊次公春蘭)라는 제화시는 난을 미인에 견주고 있다. 그러나 예사 미인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인은 곧 군자인 셈이다.

춘란은 미인과 같아,
春蘭如美人
캐오지 않는다면야 스스로 몸 바치길 부끄러워하네.
不採羞自獻
때때로 이슬 머금은 바람에 향내를 느끼되,
時間風露香
쑥 덤불 사이에 있어도 그 모습 보이지 않네.
蓬艾深不見

조선 후기의 화가 임희지의 난 그림은 잎의 유연함이 마치 미인의 자태를 보는 듯하다. 그의 〈난죽석도〉는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나온 괴석과 괴석 뒤로 뻗어 나온 대나무, 그리고 괴석 아래 활달하고 힘찬 난이 자신감 있게 펼쳐져 있다(본문 180쪽). 대나무는 먹의 농담을 이용해 속도감 있게 그려내었고, 괴석도 선으로 각진 바위를 그린 후 다시 엷은 먹으로 선을 흩뜨려 독특한 효과를 내었다. 세 가닥 난 잎은 밖을 향해 펼쳐진 반면, 엷은 먹으로 그린 한 송이 꽃은 안을 향해 살짝 굽어 균형을 이룬다. 난 잎의 유려한 모습처럼 난 아래에는 자신의 호 ‘수월’(水月)이라는 글씨가 흘려 쓰여 있어 마치 드러난 난 뿌리처럼 보인다.

임희지는 호방한 성격으로도 유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난 그림을 “깨끗한 잎새에 흥을 붙이노니 마음을 같이한다 한들 어떠하리”라며 노래하였다. 또한 기생을 거느리며 “내가 채마밭도 없이 기른 꽃이니 이것은 마땅히 유명한 한 떨기 꽃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라 하였다고 한다. 난 작품에서도 그의 호방한 삶만큼이나 자유로운 감각이 느껴진다.

― 글과 글씨와 그림이 진정 하나 된 경지, 김정희의 ‘불이선란’
담묵으로 오른편 하단에서부터 담담하게 길고 짧은 몇 개의 선을 그어 올렸다. 모두 중간 부분에서 꺾이듯 오른쪽으로 굽어 먹이 점점 엷어지면서 바람에 날리는 듯 흐려진다. 같은 먹으로 무심하게 세 번을 꺾어 올린 꽃대는 손가락을 펼친 듯 살짝 벌렸다. 진한 꽃술을 머금고 있는 꽃이 아니면, 필선은 난 잎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不二禪蘭)이다(본문 185쪽). 이른바 절엽난화법(折葉蘭畵法: 난 잎을 구부러지게 그리는 방법)으로 그린 난 잎은 거친 붓으로 담담하게 몇 줄을 그었으나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치우친 난의 초탈한 경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한쪽으로 모두 꺾인 잎을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꽃으로 바로잡아 균형 잡힌 구도감각을 보여준다. 일부러 난을 그리려 했다기보다는 마치 글씨를 쓰다 남은 먹으로 무심히 그은 선이 난이 된 듯 자연스럽다.

그림 그린 뜻을 김정희는 화제에 밝히고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문득 그려낸 것이라 하였으니 가슴속에 그 세월 동안 응축된 난의 실체가 이러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유마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설법하였던 선(禪)의 경지를 난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 난을 ‘선과 난이 서로 둘이 아니다’라는 뜻에서 ‘불이선란’이라고 한다.

김정희의 〈불이선란〉은, 그림은 글씨 같고 글씨는 그림 같아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곁들인 것인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곁들인 것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난 그림의 각진 듯 거칠고 굵고 가는 필치는 여백에 가득 쓰인 추사체와 닮아 있다. 김정희가 추구하였던 글과 그림과 글씨가 어울린 문인화의 경지가 이러할 것이다.

― 뿌리를 드러낸 망국의 한, 민영익의 ‘노근묵란’
조선 말기 명성왕후의 친정 조카로서 민씨 세도정치의 중추세력이었던 민영익은, 개화파 정치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거듭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고종 폐위음모에 관련되어 상해로 망명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글씨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림에서는 묵란과 묵죽에서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 〈노근묵란〉(露根墨蘭)에는 뿌리를 드러낸 두 무리의 난과 함께 여러 무더기의 난이 비스듬한 구도로 그려져 있다(본문 198쪽). 난을 비스듬히 두 무리로 배치한 것은 매우 독특한 구도이다. 네모진 화면에 많은 난을 변화 있게 그릴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더구나 위아래에서 하나씩 길게 뺀 잎의 파격은 그 변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게 한다. 끝이 모두 잘린 듯한 난을 그린 것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느낌으로 해석하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의 분출로 보인다.

한편, 뿌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도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하는 뿌리내릴 곳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토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은 잎에 비해 크고 반개한 상태로 한 줄기에 여러 개가 달려 있다. 꽃의 중앙에 진한 먹으로 점을 찍어 화심을 나타내었는데, 마치 반쯤 눈을 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형태이다. 수많은 꽃은 비록 뿌리내릴 땅은 없지만 꿋꿋하게 그 향을 날리는 듯하다.

― 문예부흥을 주도한 개혁군주, 정조의 국화도
국화는 매화나 대나무처럼 단단한 줄기가 있어 강인함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난처럼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잎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선비들이 국화를 좋아한 것은 소박한 모습이지만 가을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함과 은은한 향취 때문이었다. 모든 꽃이 지고 없는 서늘한 가을에 핀 향기로운 국화는 가히 가을을 대표할 만한 꽃이라 할 것이다. 국화는 인내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으로서 시문과 서화는 물론 장식미술의 소재로도 사랑을 받았다.

정조의 〈야국〉(野菊)은 담백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려진 국화와 풀벌레의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으로, 문예부흥을 주도해 나간 슬기로운 군왕의 면모가 엿보인다(본문 216쪽).

상하로 긴 화면 좌측 중앙에 둥근 바위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는 두 포기, 가운데로는 낮게 한 무리의 국화가 피어 있다. 정조는 『홍재전서』(弘齋全書)라는 방대한 문집을 남길 만큼 시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썼을 뿐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났다. 그는 도화서 소속 화원과 별도로 궁중 소속의 자비대령화원을 두어 특별시험을 통해 관리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이들을 뽑을 때 직접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는데, 이때 정조는 화제를 주고 각자 원하는 대로 그리되 “모두가 껄껄 웃을 만한 그림을 그리라”라고 지시하였다. 이 시기에 풍속화가 발달하였던 직접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조는 다양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감상하기도 하였으나 자신이 그린 그림은 수묵 위주의 사군자류가 대부분이다.

― 우리나라 묵죽을 대표하는 묵죽화가, 탄은 이정의 ‘묵죽’
대나무는 옛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존재였다. 뾰족이 올라온 죽순은 더없이 좋은 먹을거리였고, 자라서는 마을 뒤편에 숲을 이루어 북풍을 막아주었으며, 각종 생활 도구의 재료로 쓰여 삶을 편리하게 하였다. 생활 속의 이로움뿐 아니라 문인들에게는 유교를 토대로 형성된 동아시아 지성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문인들 뿐 아니라 화원화가나 직업화가 사이에서 가장 애호되는 화목은 묵죽이었다. 우리나라 묵죽을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이정이다. 그는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자로 곧 왕손이다. 왕족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시간적 여유와 타고난 예술적 재능으로 서화에 취미를 가졌고, 30대를 전후하여 묵죽에 두각을 나타냈다. 종실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는 생을 살고 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이정은, 40세 무렵 임진왜란 중 왜적의 칼에 맞아 오른팔을 다치는 화를 당하였다. 그러나 곧 회복하여 오히려 이전보다 더 뛰어난 품격의 작품을 남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림은 물론 손으로 그리지만 가슴속에 품은 뜻이 크고 또 대상을 잘 관찰하여 그 요점을 파악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문인화론이 반영된 것이다.

이정의 〈묵죽〉은 대각선 구도로 뻗어 오른 대나무 줄기와 담묵으로 그 형태를 그림자처럼 나타낸 대나무 한 줄기를 그린 것이다(본문 247쪽). 진한 먹을 사용하여 대나무의 날카롭고 빳빳한 질감을 날렵하게 표현하였고, 대나무 잎은 세 잎이 한데 어울려 ‘?’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잎은 길고 끝은 날카로우며 모두 아래를 향해 겹쳐져 있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고개를 떨군 줄기와 잎들은 방금 비가 시원하게 적셔주고 지나갔음을 알려준다. 우죽(雨竹)인 셈이다. 줄기는 잎에 비해 가늘고 유연하며, 죽간은 끊어진 것처럼 사이를 띄운 후 둥근 선을 넣어 표시하였다. 이처럼 그의 대나무 그림은 절제되고 응축된 기세를 표현한 특징이 있으며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외심을 느끼게 할 만큼 근엄하고 강경하게까지 보인다.

생활 속의 사군자 - 공예품과 민화를 통해 민간에서도 사랑을 받은 매란국죽

사군자는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문인들뿐 아니라 민간에서까지도 다양한 상징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공예품, 민화 등 일반인들의 생활공간 깊숙이 파고들어 새롭게 해석되거나 변형되면서 다채로운 형태로 활용된 것이다.

사군자는 그 이미지가 갖는 품격과 도안하기에 간결한 형태로 각종 도자기나 생활용품에 즐겨 애용되었다. 고려청자의 기형에 사용된 죽절문(竹節文)이나, 문양으로 사용된 국화문·매화문 등은 대표적인 사군자 문양이다.

18세기 이후 회화 전반에서 이루어진 민화의 등장과 유행은 사군자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군자화는 특히 구도나 문양을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각종 민화의 장식에도 활용되었다. 민화에서는 오랜 사군자화의 전통을 따른 것도 있지만, 문인들이 지향하는 바와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재미있게 변형되거나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민화 속의 사군자는 장식적 효과나 의미변형이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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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테마한국문화사를 펴내며〉
Discovery of Korean Culture
Preface
저자의 말

제1부|사군자의 이해
1. 사군자의 뜻|2. 사군자 문화와 문인들의 애호|3. 사군자 고사와 고사화(故事畵)|4. 사군자화의 발달|5. 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

제2부|고고한 기품의 매화 그림
1. 매화 그림의 전개|2. 간결한 구성의 형식미, 15~17세기의 매화 그림|3. 부드러운 가지에 어린 서정, 18세기의 매화 그림|4. 매화도의 화려한 변신, 19세기

제3부|맑은 향기 머금은 난 그림
1. 난 그림의 전개|2. 절제된 엄숙미, 15~17세기의 난 그림|3. 다채로운 변화 속의 격조, 18세기의 난 그림|4. 묵란화의 전성기, 19세기

제4부|서리를 이긴 은은한 향취의 국화 그림
1. 국화 그림의 전개|2. 소박한 기품을 담다, 15~17세기의 국화 그림|3. 완상 문화의 발달과 묵국도, 18세기|4. 분방한 필치와 장식적 경향, 19세기의 국화 그림

제5부|허심의 공간미 담은 대나무 그림
1. 대나무 그림의 전개|2. 고난의 역사와 대나무, 15~17세기|3. 묵죽화의 다양한 변화, 18세기|4. 댓잎에 서린 문인들의 의취, 19세기

제6부|생활 속의 사군자
1. 공예품에 그려진 사군자화|2. 민화로 태어난 사군자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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