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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주체성과 재현 (라틴아메리카 문화이론 논쟁)
하위주체성과 재현 (라틴아메리카 문화이론 논쟁)
저자 : 존 베벌리
출판사 : 그린비
출판년 : 2013
ISBN : 9788976827715

책소개

'트랜스라틴 총서' 11권.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존 베벌리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전지구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좌파 정치 세력들이 속속 집권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들이 민중 혹은 민족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이란 누구일까? 혼혈의 역사가 오래된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들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가 진정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느낀 여러 학자들은, 주로 남아시아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하위주체연구라는 새로운 학문적 틀을 가져와 라틴아메리카에 접목시켰고, 특히 여기에 문학적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켜 주요한 연구 쟁점으로 삼았다.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문학이 오히려 지배 엘리트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하에,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봉기와 그것을 기록한 문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하위주체성에 대해 성찰한다. 하위주체는 지식인에 의한 재현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다문화적 차이가 심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하위주체 또는 민중의 정치적 연대는 어떤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능할까? 문학의 한계, 좌파 정치 운동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학계의 권위와 문학의 권위 등 모든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와 변화를 위한 구체적·실천적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벌리의 급진적인 문화정치 이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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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트랜스라틴 총서』 11권.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존 베벌리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전지구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좌파 정치 세력들이 속속 집권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들이 민중 혹은 민족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이란 누구일까? 혼혈의 역사가 오래된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들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가 진정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느낀 여러 학자들은, 주로 남아시아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하위주체연구라는 새로운 학문적 틀을 가져와 라틴아메리카에 접목시켰고, 특히 여기에 문학적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켜 주요한 연구 쟁점으로 삼았다.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문학이 오히려 지배 엘리트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하에,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봉기와 그것을 기록한 문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하위주체성에 대해 성찰한다. 하위주체는 지식인에 의한 재현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다문화적 차이가 심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하위주체 또는 민중의 정치적 연대는 어떤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능할까? 문학의 한계, 좌파 정치 운동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학계의 권위와 문학의 권위 등 모든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와 변화를 위한 구체적·실천적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벌리의 급진적인 문화정치 이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의 새로운 좌파 정치학 기획!
하위주체성에 대한 문학적·정치적 논쟁을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찾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이 되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더 크고, 무겁고,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다. 그것은 ‘권력’이 된다. 지식인은 그 권력을 사용하여 자기를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구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누구를 위해” 말할 수도 있다. 자기를 말함으로써 자기를 세울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구를 말함으로써 자기를 더 높이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위주체연구는 권력의 그러한 측면에 주목한다.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은 신자유주의의 ‘대홍수’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남아시아에서 발전된 하위주체연구라는 학문적 틀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이분법적 갈등과 적대주의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하여’ 혹은 이들을 ‘위하여’ 말을 하지만, 그러한 학계의 말들이 오히려 하위주체(subaltern)를 ‘재-하위주체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위주체연구는 끊임없이 탈중심화를 추구하고 주변부를 주목하는 운동성을 지닌다. 이처럼 끊임없이 중심부의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부정’(negation)성이, 시민사회운동과도 구별되는 ‘하위주체성’(subalternity)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위주체연구가 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에서 탈식민·탈근대 이론과 함께 발전해 온 이유일 것이다. 국내에 라틴아메리카 담론을 꾸준히 소개해 온 『트랜스라틴 총서』(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기획·그린비출판사 발행)의 열한 번째 권으로 출간된 『하위주체성과 재현: 라틴아메리카 문화이론 논쟁』(Subalternity and Representation)은 아카데미 권력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좌파 정치학의 새로운 기획을 담은 저작이다. 지은이 존 베벌리(John Beverley)는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문학 및 문화연구의 대가로 평가받으며,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창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베벌리는 이 책에서 하위주체성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을 짚고, 앙헬 라마(?ngel Rama),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N?stor Garc?a Canclini) 등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의 문화이론의 측면에서 기존 학계와 지식인들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해체하며, 라틴아메리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진보적 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의 한계를 급진정치와 결합하여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베벌리의 문화적 성찰과 인식론적 기획을 담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성과와 노력을 결산하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중심부 권력을 해체하다 : 서구, 남성, 지식인의 ‘재현’을 넘어!

“하위주체연구는 권력을 다룬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것을 획득해 가는 이와 잃어 가는 이들을 연구한다. 권력은 또한 재현과 연결되어 있다. 인식론적 권위를 가진 혹은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는 재현과, 권위나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재현으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이다.”(본문 43쪽)

하위주체연구는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 등 남아시아의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기존의 ‘공식적’ 역사에서 역사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지워져 있던 하위주체가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베벌리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은 이러한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문제제기와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켰는데, 재현의 과정에서 오히려 고착화되는 권력 관계의 문제는 이들 문제의식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일찍이 스피박은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라는 논문에서 ‘엘리트 지식인이 하위주체를 위하여 쓰는 행위가 실제로는 하위주체에 대하여 쓰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식인의 선한 의도조차 그들의 권력 강화로 이어지고, 하위주체는 끝내 재현의 대상으로 머무를 뿐이라는 스피박의 비판은 날카롭지만 얼핏 냉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그러한 비판을 통해 정말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재현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윤리적’ 관계의 필요성이었다. 하위주체연구가 나아가야 할 지점은, 하위주체의 목소리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재현에 담긴 모순과 위험성을 깨닫고, 그들의 목소리와 지식인이 매개되는 방식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 문학비평가의 급진적 문학 비판-‘문학’에 반대하여 ‘증언서사’로!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베벌리는 이 문제의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베벌리에게 하위주체연구는 단지 윤리적 성찰이 아닌, 구조를 뒤엎는 정치적 기획이다. 베벌리는 침묵당한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그의 전공인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사실 문학이야말로 하위주체와 가장 거리가 먼 고급문화 장르이기 때문에, 문학비평가 출신으로서 베벌리는 가장 급진적으로 문학을 비판하고 구체적·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1993년 베벌리가 그의 전작인 『문학에 반대하여』(Against Literature)에서도 지적했듯이, 문학이라는 장르는 작가가 비록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 할지라도 작품 내에서 하위주체의 목소리는 작가의 논리 안에 포섭되고 만다는 서사적 재현의 한계를 지닌다. 베벌리는 이 지점에서 문화연구와 하위주체연구의 절합을 통해, 이전에는 가치 있는 텍스트로 인정받지 못했던 서사 양식의 복원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증언서사’이며 베벌리가 추구하는 아카데미에서의 정치적 실천의 한 방식이다. 증언서사의 텍스트에서 하위주체는 재현의 대상이 아닌 자기 목소리를 지닌 ‘주체’로 존재하며, 그 텍스트 안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문학의 지위를 허물고 하위주체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증언서사’라는 형식은 문학적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 서사로서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 논쟁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베벌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중요하게 연구되었던 과테말라 원주민 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Mench?)의 『나, 리고베르타 멘추』(I, Rigoberta Mench?)나 쿠바에서 노예 생활을 한 에스테반 몬테호(Esteban Montejo)의 증언을 담은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The Autobiography of A Runaway Slave)과 같은 텍스트들은, 하위주체 정보제공자와 그들이 증언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가 사이의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재현의 문제와 저작권 문제 또한 드러내며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증언서사라는 새로운 양식을 통해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으나 이내 또 새로운 한계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타자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아카데미와 지식인 헤게모니가 하위주체의 ‘부정’을 끊임없이 요구받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화 시대, 하위주체의 전략 : 식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동시에 넘어서기!

베벌리는 ‘우리가 정말로 이분법적 적대주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와 있다면, 지금은 현재의 상황에 맞는 좌파의 새로운 기획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시장의 세계화가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베벌리는 저항하는 하위주체와의 정치적 연대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실천적 전략으로서 증언서사는 국가주의 프로젝트나 시민사회운동이 담보하지 못하는 모순들을 드러낸다. 증언서사와 하위주체연구는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처럼 증언서사라는 양식의 문화적 실천 운동은 과테말라 또는 니카라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전세계의 하위주체와 지배 엘리트를 가로지르며 정치적 연대를 요청한다.

▶ 하위주체와 국가의 이분법을 가로질러-민중적 헤게모니로!
하위주체연구는 세계화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의 전통 중에서도 현실 정치·사회 구조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실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와 더불어 20세기 후반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칠레의 바첼레트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민중 정치의 기치를 내건 좌파 정치 세력이 잇달아 집권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붉은색으로 표상되는 이전의 공산주의와 구별하여 ‘분홍빛 물결’(marea rosada)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세계화라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독특한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하위주체연구자들에게는 하위주체의 헤게모니 획득과 국가와의 관계라는 과제를 남겼다. 하위주체는 언제나 국가의 사각지대에 존재해 왔고, 그들의 목소리는 국가의 공식 역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이는 압축적인 성장을 통해 근대화·산업화를 겪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하위주체연구는 하위주체가 국가를 통해 헤게모니를 획득하는 ‘분홍빛 물결’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위주체가 국가와 만난다면 더 이상 하위주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는 기존의 하위주체연구와 분리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베벌리는 이처럼 하위주체와 국가가 관계를 맺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다양한 민족 정체성들의 혼혈의 역사가 오래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문화횡단’이나 ‘혼종문화’와 같은 문화이론의 개념들을 통해서 동일성(identity)을 바탕으로 한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찍부터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문화적인 차이를 무조건 인정하고 학계의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에 가치를 두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하위주체연구가 주목하는 곳은 그러한 다문화적 차이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지배와 종속의 사회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타자’의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그릇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처럼 복잡한 ‘혼종성’과 그들 주변부 세력을 정치적으로 결집하려는 노력.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연구는 이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띤다. 베벌리에게 하위주체연구는 단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정치를 가로지르는 구조적인 것이다. 하위주체는 헤게모니가 될 수 있는가? 세계화 시대에 국가주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위주체의 새로운 국가는 가능한가? 『하위주체성과 재현』을 통해 베벌리는 가장 급진적인 문화정치학의 영토에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하위주체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 놓는다. 이처럼 현실 정치와 사회에 밀접하게 얽혀 있는 베벌리의 실천적 논쟁 지점들을 읽으면서, 지배와 종속의 권력 관계를 성찰하고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정치적 실천의 방법을 상상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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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글
서문

1장 거꾸로 쓰기
: 하위주체와 아카데미 지식의 한계

2장 문화횡단과 하위주체성
: ‘지식인 도시’와 투팍 아마루 봉기

3장 우리들의 리고베르타?
: 『나, 리고베르타 멘추』, 문화적 권위와 하위주체 행위자의 문제

4장 혼종이냐 이분법이냐?
: 하위주체와 문화연구에서 다루는 ‘민중’의 범주에 관하여

5장 시민사회, 혼종성 그리고 “‘문화연구’의 정치성”
: 가르시아 칸클리니에 관하여

6장 영토성, 다문화주의 그리고 헤게모니
: 민족의 문제

옮긴이 해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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