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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저자 : 김윤식
출판사 : 솔
출판년 : 2010
ISBN : 9788981339296

책소개

문학, 이야기 이상의 무엇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 이 책은 문화평론가 김윤식이 그동안 해 온 문학비평을 비롯해 자신이 느꼈던 문학과 시대성 사이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책이다. 책 제목의 ‘엉거주춤’이란 그가 자신의 전공인 문학과 시대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해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모양을 빗댄 말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역사에 삿대질할 수 있는 것이 작가다’에서는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 2장 ‘지용과 청마의 술잔에 모란은 떨어지고’에서는 시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3장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에는 각종 문예지 등에 쓰인 글들을 종합하였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전공과 시대성이 서로 눈 흘기고 있는 표정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며 원로 평론가인 김윤식 선생이 평론집 『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을 펴냈다. 자신의 전공인 문학과 시대성 사이에서 느낀 고민과 그동안 해온 현장비평을 담았다. 총 3장의 구성으로 1장 ‘역사에 삿대질할 수 있는 것이 작가다’에서는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글이, 2장 ‘지용과 청마의 술잔에 모란은 떨어지고’에서는 시와 시인, 3장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에서는 각종 문예지 등에 쓰인 글들을 묶었다. 이 책에서 부제로 쓰인 ‘김윤식 교수의 문학 산책’은 2004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한겨레 신문》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문학 칼럼명이다. 이 책에는 2006년 8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가장 최근의 글을 담았고, 같은 기간에 단행본과 각종 문예지에 쓰인 것도 싣고 있다.
선생은 이 책에서 신문에 기대되는, 소위 시사적인 것을 다루는 현장성이나 민첩성의 성격을 담아낼 수 있을지 난감했었다고 고백한다. 이를 “시사성 앞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전공의 표정이오. 혹은 그 정반대이오. 전공과 시대성이 서로 눈 흘기고 있는 표정이라고나 할까”라고 머리말에 밝힌다. 한밤중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원고지 앞에 앉으면 들리는 목소리에서 선생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엉거주춤함을 그대로 적어라. 왜냐면 우리 삶이랄까, 인생 그 자체가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것이란다”라고.
이 책에서는 작품론과 작가론을 가리지 않는 선생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글쓰기를 볼 수 있다. 작가는 무엇이고 작품은 무엇일까? 현장비평을 해오며 느끼는 소회와 고민이 이 글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정답은 단 하나. ‘유령 같다’가 그것입니다.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존재가 작품이기에 이쪽에서 장갑을 끼면 대번에 그 모습을 바꿉니다. 이쪽에서 색안경을 쓰면 대번에 그 표정을 바꾸어버립니다. … 귀먹고 눈멀고 화상 입은 손발로 쓴 글이 제 현장비평이었습니다. 그렇게 쓴 글이지만 나름대로의 빛이나 온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심봉사 모양 개천에 자주 빠지긴 했어도 그는 딸 청이의 아비였던 것. 그 때문에 그는 구원받지 않았을까”.
오랜 세월 현장에서 문학 비평을 해온 선생도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터. 이런 솔직한 고민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제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소, 그야 소설가에게 물어야 되는 것. 그럼에도 굳이 제게 묻는 이유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오. ‘소설 쓰고 있네’를 당사자인 소설가에게 차마 발설하기가 뭣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허나 선생 자신도 뾰족한 답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남의 소설 읽기를 일삼아 왔지만 저 역시 무슨 그럴싸한 답변을 갖고 있을 턱이 없소. 그렇긴 하나 서당개 삼 년이란 말이 있듯 소설가들의 한숨 소리를 엿들은 바는 더러 있소… 문화조직 중 가장 저급하고 단순한 것인 얘기. 바로 여기에 소설가들의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얘기에 바탕을 두기는 하나’, ‘아주 별난 것, 고상한 것, 그래서 문화조직 중 최고는 아닐지라도 썩 그럴싸한 것’이고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만 할 길의 지도 몫을 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소설에 대한 진정한 비평이라고 말한다. 선생이 생각하는 작가 또한 ‘역사의 개입은 할 수 없다’ 해도 역사에 ‘대들 수는 있’거나 ‘삿대질을 할 수는 있’는 것 ‘몸부림은 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주변의 비웃음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그렇게 몸부림치는 것’이 진정한 작가라고 밝히고 있다.
시에 대해 다룬 부분에서는 시적 표현으로 된 초기 불경의 하나인 『수타니파타』를 들며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글쓰는 사람의 길은 세속에서의 수행자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 속엔 이런 대목이 있소.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도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수행자의 길이란 오직 하나. 어찌 세속적인 길과 양립할 수 있으랴”. 대학 강단에서 신입생들에게 했던 말을 회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조금은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향해 또 나는 거침없이 헤겔 흉내 내어 이렇게 말한 것으로 회고되오.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법철학』 서문)라고. 대학이란 무엇이뇨. 학문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예술이 좋아 보여도 여러분은 어쩔 수 없다. 이 로도스섬을 탈출할 수 없다. 그러니 여기서 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느냐. 없다”라고 말한다.


… 나도 어찌 쉽사리 질까 보냐. 재빨리 이렇게 대들었소. 그래도 그는 귀국 직후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2005)를 썼다, 라고. 또 덧붙였소. 이 소설쟁이는 소주에 취하기만 하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기 엉터리 평론가가 있다!”라고 외치기 일쑤였다고.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그는, 키 큰 평론가 김현의 표현으로 하면 제 어미를 팔아 「눈길」(1977)을 썼고, ‘자생적 운명’을 다룬 천금 무게의 『당신들의 천국』(1976)을 썼소. 조국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다시 그곳을 잊어야 했다」(2007)를 그만이 쓸 수 있었소.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4?3 사건의 합동위령제를 다룬 대작 「신화를 삼킨 섬」(2003)을 썼소. 그것은 다름 아닌 이상욱(『당신들의 천국』)이 정요선으로 변장하여 제주도로 간 얘기에 다름 아닌 것. 민족적 악업에 대한 자기 정화력이란 무엇이며 치유의 가능성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라고 스스로 우기는 이 야생 당나귀 모양 고집스런 키 큰 소설쟁이 이청준이여, 우리의 국민작가 이청준 사백이여.
-‘그대, 이제 그대의 천국으로 가시는가’ 중에서

… 참으로 다행히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늙고 초라한 허깨비 소년을 격려하고 또 위로해주는 사람이 둘씩이나 있었소.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칼 포퍼가 그 하나. 진리가 진리일 수 있는 것은 그 진리 속에 거짓이 될 가능성(falsifiability)이 깃들어 있는 동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M. 베버의 조언. 학문이란 무엇이뇨. 예술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능가 당한다는 사실이 그것. 이것이 학문의 운명이자 의의라는 것. 이 운명에 복종하고 헌신하기, 이것을 스스로 원하고 있다는 것.
-‘한 몸으로 두 세기 살아가기의 문법과 어법’ 중에서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머리말_ 어떤 엉거주춤함의 표정을 위하여

1장 역사에 삿대질할 수 있는 것이 작가다

맨 처음 만난 타자가 조선인이었던 두 일본 소년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다나카 가쓰히코(田中克彦)

향파(向波) 글쓰기의 향방
- 탄생 백주년 전집 간행에 부쳐

기생 춘향에서 무희 춘향에 이른 길
- 포킨의 발레 「사랑의 시련」에 부쳐

‘조선의 루쉰’ 김사량
- 루쉰의 阿Q와 김사량의 휴지선생

역사에 삿대질할 수 있는 것이 작가다

좋고도 좋구나, 77년 이어온 춘향제
- 제77회 춘향제 견문기

‘짜라투스트라’ 박상륭을 기다리며

‘얘기 이상의 무엇’ 소설가의 로망
- 소설에 대한 비평, 얘기에 대한 비평

낙원 없는 낙원 ‘샹그리-라’
- 샹그리-라 유감

한국에서 봉황만 봤다는 시바 료타로
- 봉황이냐 악작(??)이냐

불변의 삶터, 우리나라 산천이 참주제
- 『토지』와 『지리산』

박경리와 박완서의 ‘닮은 문학’
- 『토지』의 작가 장례위원장의 ‘아주 오래 안 된’ 농담

문인이 다른 예술가보다 더 불행한 이유

패배한 자의 복수로서의 글쓰기
- 이청준과 이승우

요산의 우리말과 야생초 사랑
- 요산 문학을 보러 가다

한.일 두 작가 전율시킨 ‘멕시코 체험’

‘이병주 노예사상’의 현지를 찾아보니

『토지』와 지네 체험

근대로 건너는 징검다리서 ‘소나기’ 맞다
- 소나기 마을의 설계도

이념보다 소중한 ‘마음의 흐름’
- 황순원, 체호프, 톨스토이

당신들의 씻김굿과 나의 씻김굿

소통의 문제의식
- 작가 김연수 씨의 경우

신바람 일으키는 벽초의 분신들

2009 우리 소설 ‘무소의 뿔’같은 작가들
- 우리 소설계의 수타니파타

2장 지용과 청마의 술잔에 모란은 떨어지고

시인과 인간 사이에 놓인 시
- 김현승의 경우

진실의 기록과 사실의 증언
- 윤동주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경우

신시 백 주기, 이 나라 시에 영광 있어라

지용과 청마의 술잔에 모란은 떨어지고
- 찬란한 슬픔, 북두(北斗)의 윤리감각

통영에 다가가는 방법
- 충렬사와 거북선

우리에게 만주국 글쓰기론이란 무엇인가
- 「부엌녀」와 「용정의 노래」의 경우

학병들이 ‘글쓰기 행위’에 집착한 이유
- 학병 세대 글쓰기와 자기 해방

아, ‘수유+너머’의 맛을 보다
- 나의 ‘수유+너머’와 나의 ‘수유+안 너머’

작중인물 속에 갇힌 수인(囚人)들

‘콰이 강의 다리’의 조선인 포로감시병

인문학의 자리 되새겨준 논문
- 인문학은 무엇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라는가

삶 숨 쉬는 중앙박물관의 네 주인들
- 국립중앙박물관 관법(觀法)

위안부의 이미지, 그리고 증언
- 어둠 속의 박꽃, 순백의 다리

인문학이 서 있는 어떤 자리

무자년 두 개의 기쁨과 두 개의 슬픔
- 2008년 문학계를 되돌아보다

구보와 이상의 ‘명품 문학’ 자각서 싹튼 ‘문학진품’일까

3장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

부처님, 말씀 없으시다
- 조계사, 4월 초파일 하오 5시

장자제(張家界) 공항에서 본 어떤 환각

갈 수 있고 가야 할 세 가지 출발의 형식

호암상의 어떤 인간적 면모

그대, 이제 그대의 천국으로 가시는가
- 이청준을 추모하며

문학평론가 3인 탄생 백 주년의 의의
- 김기림, 임화, 최재서

‘마음의 흐름’에 부쳐
- 「제9교향곡」과 「봉선화」

『임꺽정』과 『순교자』가 만나는 어떤 자리

한 몸으로 두 세기 살아가기의 문법과 어법

이중어 글쓰기 공간의 ‘한복판’을 향하여

그 누구의 몫일 수도 없는 제3의 층위를 향하여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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