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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푸른역사 학술총서 5)(양장본)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푸른역사 학술총서 5)(양장본)
저자 : 한명기
출판사 : 푸른역사
출판년 : 2009
ISBN : 9788991510937

책소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살펴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상처’로 점철된 조선 대외관계사의 내러티브를 파헤치다!

『정묘ㆍ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이 책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한ㆍ중ㆍ일을 아우르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과정,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정책과 인식 등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의 역사학계는 병자호란을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대외관계사 연구에 소극적이었던 학계 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정묘 병자호란이 일어난 시기, 급변하게 돌아갔던 17세기 정세를 둘러본다. 일본과의 관계, 명을 버리고 청으로 투항한 한족 출신의 이신들의 모습 등을 그리며 강국 사이에 끼여 있었던 약소국 조선이 생존하기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장본]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동아시아아의 관점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재구성
‘상처’로 점철된 조선 대외관계사의 내러티브를 파헤치다


기억과 망각 속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특히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병자호란 무렵 청군에게 붙잡힌 조선인 포로는 수십만을 헤아렸다. 1637년 2월, 청군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포로들을 심양으로 연행해 갔다. 끌려가는 도중 수많은 포로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지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청군에게 살해되었다. 여성 포로들의 비극은 특히 처절했다. 많은 여인들이 청군 장졸들의 첩이 되어 노리개 감으로 전락했다. 천신만고 끝에 심양에 도착한 뒤에도 이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조선 원정에 나섰던 남편이 조선 여인들을 첩으로 데려오자 만주족 본처들은 질투심에 몸을 떨었다. 본처들 가운데는 조선 여인에게 끓는 물을 퍼붓는 등 고문을 자행하는 자들도 있었다. 내용을 보고받은 청 태종 홍타이지조차 격분했다. “이렇게 잔인한 투기를 일삼는 여인들은 남편이 죽을 때 순사殉死시켜 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 같은 끔찍한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계는 병자호란을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역사학계는 대외관계사 연구 자체를 꺼려했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과 일본 사이에 치여, 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핍박의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해방 된 나라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식민사가植民史家들이 의도적으로 깔아뭉갰던 민족의 저력을 다시 탐구하는 것이 시급했던 상황에서 ‘상처’로 점철된 대외관계사를 언급해 봐야 별로 득 될 것이 없었다. 더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대전란을 겪었던 조선시대의 경우 그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동안 대외관계사 연구에 소극적이었던 학계 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미를 갖는 책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한명기, 푸른역사)가 출간되었다. 저자 한명기는 한중일을 아우르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과정,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정책과 인식,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변화 조짐, 병자호란 시기 조선인 피로인 문제 재론, 정묘?병자호란 시기 이신貳臣과 조청관계,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대청 ‘순치馴致’ 과정 등이 그것이다.

17세기 급변하는 동사이아 국제 정세 속 조선의 선택은?
주목되는 것은 정묘?병자호란이 기본적으로 조선과 청 사이의 전쟁이었음에도 저자의 시선이 일본과의 관계에까지 미치고 있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임진왜란을 도발하여 조선으로부터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원수[萬世不共之讐]’로 매도되었던 일본은 두 차례 호란을 계기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인다. 위기에 처한 조선에 ‘조총과 화약 등 무기를 원조하겠다’고 접근하는가 하면 조선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교묘히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려는 자세를 보인다.
이 책은 또한 17세기 초 명을 버리고 청으로 투항한 한족漢族 출신 이신貳臣들이 청군의 일원으로 병자호란에 가담하고, 전쟁 이후 청이 조선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밖에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복원한 것, 포로로 끌려간 지 각각 28년과 37년 만에 탈출해 돌아왔다가 다시 버림받았던 안추원安秋元과 안단安端의 사례를 발굴해 낸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한중일을 동시에 아우르는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이 조선을 향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방향을 사실상 확정한 것은 1633년 6월의 일이었다. 당시 청의 군신들은 조선을 언젠가는 정복하되, 명나라와 몽골을 복속시키기 전까지는 회유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즉 조선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청의 침략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할까?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척화파나 주화파 모두 총론總論에서는 그럴듯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지만 전쟁을 피하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각론各論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 한명기는 이 책을 통해 강국 사이에 끼여 있는 상대적인 약소국 조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지혜가 필수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의 역량이 너무 미약할 경우, 외교적 지혜를 통해 생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따라서 약체성弱體性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정권들에게 요구되는 절실한 과제이자 덕목임을 환기시킨다. 과거 정권에서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사실, 당장 지금도 남북문제를 포함한 외교정책 전반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진 메시지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관점, 다른 해석-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다
저자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병자호란 관련 역사 평설評說을 ≪서울신문≫에 매주 연재한 바 있다. 모두 104회에 걸쳐 원고지 2천매 분량으로 병자호란의 아픔과 교훈을 그려냈던 저자에게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제대로 쓰려면 그 주제와 관련된 학술 연구서를 먼저 쓴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저자에게 이 책은 대중서를 쓰기 위한 바탕이자 원천源泉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는 과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라는 학술서를 쓴 뒤, 그것을 바탕으로 ≪광해군≫이라는 대중서를 출간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라는 역작을 바탕으로 저자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대중서 ‘병자호란’은 어떤 모습을 지닐지 자못 궁금하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책머리에 / 서설

1장 정묘호란과 조선?후금관계
정묘호란의 성격과 원인 재론 / 정묘호란이 조선에
남긴 영향 / 정묘호란에서 후금이 얻은 것

2장 정묘화약의 균열과 병자호란의 발생 과정
정묘화약의 균열 과정 / 명?후금관계의 변동과 조청관계의 파탄

3장 병자호란과 조청관계
성하지맹 이후 청의 조선 통제책 / 청의 통제정책의 영향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에서 청이 얻은 것

4장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인조반정 직후 대일 접촉 양상과 인식의 변화 조짐 / 1629년 겐보의 상경과 그 파장

5장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 정책과 인식
병자호란 직전 ‘야나가와 이켄’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 시기 일본의 동향과 조선의 대응 /
병자호란 이후 청의 존재와 대일인식
6장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변화 조짐
병자호란 이전 전통적 ‘오랑캐’ 인식의 흐름 /
위기의식의 대두와 전통적 ‘오랑캐’ 인식의 변화 조짐 /
병자호란 직후 대청인식의 새로운 조짐

7장 병자호란 시기 조선인 피로인 문제 재론
전쟁 피해의 양상과 ‘피로인 문제’의 심각성 /
대규모 피로인 발생의 원인과 주회인 문제 /
피로인들의 고통 / 조선 정부의 ‘피로인 문제’ 대책과 귀결 /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8장 정묘?병자호란 시기 이신과 조청관계
이신 발생의 배경과 청의 활용 / 이신이 조선에 미친 영향

9장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대청 ‘순치’ 과정
‘찬탈’ 기사의 인지 내막과 인조?효종대의 대응 /
현종?숙종대의 변무 노력 / 영조대의 변무 노력과 그 귀결 / ‘변무 문제’가 조청관계에서 가지는 의미

참고문헌 / 영문초록 / 찾아보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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