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본문

유쾌한 창조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유쾌한 창조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저자 : 이어령|강창래
출판사 : 알마
출판년 : 2010
ISBN : 9788992525800

책소개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을 엿보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과 나눈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유쾌한 창조』. 문학평론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희곡작가, 시인, 대학교수, 언론인, 전 문화부장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지성인 이어령. 이 책은 수많은 강의와 강연과 대담을 해온 그가 못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인터뷰어 강창래와 나눈, 아직도 남아 있는 그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어령이 죽음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들, 그의 문학을 둘러싼 오해, 창조성 넘치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이어령, 일흔다섯의 나이에 기독교도가 되어 세례를 받은 그의 영성 등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내 그물에 걸려 올라온 은빛 반짝이며 퍼덕이는 물고기를 덕장에서 줄지어 말리고 있는 죽은 오징어처럼 만들지 말라.
유쾌하고 행복한 창조를 뜨거운 햇살 아래 그대로 드러나게 하라.”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지금까지 100여 권의 책을 쓰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강의, 강연 그리고 대담을 해온 그에게 아직도 하지 않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인터뷰어 강창래가 이어령과 만나 나눈, 아직도 남아 있는 이야기와 이어령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직접 만나보자.

이어령은 일흔일곱 살이다. 그가 1956년 ‘〈우상의 파괴〉를 쓰고 명동에 나가보니 유명해졌더라’는 게 스물셋 때의 일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김윤식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잘 돌아가기에 마치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람개비 같은’ 정열로 엄청난 양의 글을 써왔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강의와 강연 그리고 대담을 해왔다. 이어령이 앉는 그 자리가 곧 강의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이어령에게 더 이상 할 말이, 더 써야 할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어령은 여전히 현역이다. 끊임없이 창조적인 사업들을 벌이고, 글을 쓰며, 강연을 하고, 대담을 한다. 다작을 하고, 미디어와 대중의 환호를 받아온 이어령이지만 그 만큼 그에 대한 오해도 많다.
이 책《유쾌한 창조》는 현역 이어령의 건재함과 오해를 넘어 이해를 지향하며 2만 4천개의 직소퍼즐(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판매되고 있는 가장 많은 조각 수의 직소퍼즐이 2만 4천 조각이라고 한다)과 같은 그의 모습을 맞춰보는 책이다.

이번 인터뷰집의 키워드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이어령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수의를 마련하는 심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 가지 일,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학교’, ‘한국인 이야기’다. 그는 이 세 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일들은 실패할 일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이어령은 왜 실패할 것이라면서도 이 일들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밝힌다.

둘은, 이어령의 문학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어령의 문학을 둘러싼 ‘오해’라고 해야겠다. 이어령은 스스로를 “문학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문학이 아니라고 해도 ‘문학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어령의 정체성은 소설가나 시인 또는 극작가 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활동이 다 ‘문학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실상 그는《장군의 수염》《환각의 다리》를 비롯한 소설과 시를 쓴,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다. 오랫동안 문예지《문학사상》의 주간을 담당했으며 비평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한마디로 뛰어난 문학가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이어령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성이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평은 찾아보기 어렵거나, 아니면 평가 절하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저항문학을 외치던 이어령이 왜 뉴크리티시즘이나 기호학으로 갔는지, 1967년 말과 1968년 초에 걸쳐 치열하게 벌어졌던 김수영 시인과의 “불온시 논쟁”, 그 현장으로 돌아가 그 당시 어떤 일들이, 어떤 말들이 오고갔는지 현장검증을 해본다. 그러기 위해 “불온시 논쟁”의 주인공이었던 이어령과 김수영의 글, 여덟 편을 원문 그대로 시간 순서에 따라 실었다. 원문을 읽어보면 40여 년 전 그때로 되돌아가 그 현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평을 통해서도 아니고, 누가 옮고 그른지도 떠나서 이어령과 김수영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보자. 책에 실린 불온시 논쟁 원문은 다음과 같다.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한국문화의 반문화성〉, 이어령, 조선일보, 1967년 12월 28일
〈지식인의 사회참여〉, 김수영, 사상계, 1968년 1월호
〈서랍 속에 든 ‘불온시’를 분석한다―〈지식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반론〉, 이어령, 사상계, 1968년 3월호
〈누가 그 조종을 울리는가?―오늘의 한국문학을 위협하는 것〉, 이어령, 조선일보, 1968년 2월 20일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오늘의 한국문학을 위협하는 것’을 읽고〉, 김수영, 조선일보, 1968년 2월 27일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이념의 시녀가 아니다―‘오늘의 한국 문학을 위협하는 것’의 해명〉, 이어령, 조선일보, 1968년 3월 10일
〈‘불온성’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 김수영, 조선일보 1968년 3월 26일
〈논리의 현장검증 똑똑히 해보자〉, 이어령, 조선일보 1968년 3월 26일

셋은, 이어령의 창조성이다. 이어령은 “창조적인 사람”이다. 그의 창조성은 그의 작품들이나 그가 기획해 세계를 놀라게 한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이어령은 사람들이 자신을 “크리에이터”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09년에는 창조학교를 설립해 명예교장까지 맡고 있다. 그런 이어령이 ‘창조’라는 화두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음 세대를 위해 창조성을 배양하고 창조적인 사람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장에서 이어령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자들에게 산파술産婆術로 진리란 무엇인지를 가르쳤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인터뷰어 강창래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어령은 창조성이 ‘회색지대Gray Zone’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 회색지대는 예를 들어, 손등과 손바닥처럼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이런 생각 방식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런 창조성과 창조적인 인물들을 제대로 길러줄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창조학교의 역할과 필요성, 그리고 그 한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넷은, 이어령의 영성이다. 그는 일흔다섯의 나이에 기독교도가 되어 세례를 받았다. 당시 그가 세례를 받는 모습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감각적인 기사 제목 아래 크게 보도되었고, 이어령의 딸 장민아의 남다른 사연과 함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국 최고의 지성, 그동안 기독교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이어령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문지방 위’에 서 있다.
이번 인터뷰집《유쾌한 창조》에서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문지방 위’에 선 이어령이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받아들인 인간 예수의 모습과 영성으로 받아들인 기독교 그리고 그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기까지의 극적인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도대체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_이어령은 끊임없이 글을 써낸다. 수많은 인터뷰와 글을 써내는 이어령을 보면, 김윤식의 말처럼 “너무나 잘 돌아가기에 마치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람개비 같은” 정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어령의 오래된 책들을 꺼내 읽다 보면 안도현의 시,〈연탄재〉가 생각난다.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러나 이어령은 아직까지 한국의 문단, 또는 젊은 지성인들과 ‘소통의 어려움’, ‘오해받음의 쓸쓸함, 또는 안타까움’에 대해 충분히 대답한 것 같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해’에 대한 대답을 중심으로 충분히 길고 새로운 대화 마당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어령에게 그런 마당이 필요한 것은 이어령이 문학권력을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창작과비평》이나《문학과지성》이 문학잡지를 중심으로 집단과 권력이 형성된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문학사상》을 들먹일 것이다. 이어령은《문학사상》을 1972년에 창간해서 문예지로 성공시킨 주역이었으며 1985년까지 주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어령 자신도 설명한 적이 있지만, 김윤식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문학사상》은 오히려 패거리를 파괴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_86~87쪽
아무리 놀라운 작품을 써냈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일단 교과서에 실리거나, 대학입시에서 작품이 거론되거나, 추천도서목록에 늘 오른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젊은이들이 ‘대학시험’을 치르기 전에는 시험과 관련된 문화권력 카르텔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참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명작’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천정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_88쪽

이어령 문학의 씨앗과 두 가지 오해_ … 이어령 문학에 대해서 …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가지 오해를 정리해두고 싶다. 하나는 저항문학을 외치던 이어령이 뉴크리티시즘과 기호학으로의 변신이 너무 갑작스러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갑자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일찍부터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실천이 아니라 ‘언어’를 선택한 것이고, 현실이 아니라 ‘허구’를 선택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부터가 현실에서의 도피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앙가주망의 논리〉나〈현대 작가의 책임〉처럼 작가가 역사와 사회,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글에 섞여 있다. … “사람들은 내가 5.16 이후에 변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은 4.19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한 건데. 5.16 군사정권이 무서워서 그랬지? 그런 말도 들었어요. 그러나 내가 쓴 을 읽어보면 알아요. 그 소설 때문에 내가 고생도 했는데 …”
… 이어령은 4.19를 거치면서 “정의로운 마음과 정의로운 사람들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저항의 문학을 거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뉴크리티시즘, 기호학으로 갔다”는 것이다. … 이어령은 4.19 이전의 문인들 태도와 이후의 태도가 너무나 다른 것에 실망했다. 4.19 이전의 문인들은 독재 권력에 ‘그다지’ 저항하지 않았지만 권력이 무너진 뒤 쏟아져 나온 4.19 찬양시, 독재자 비판 글들을 보고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것이다._92~98쪽

이어령과 김수영의 불온시 논쟁 원문_독자들이 이어령과 김수영의 불온시 논쟁의 원문을 읽어보면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원문을 순서대로 읽어보아야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이어령의 글과 김수영의 글을 순서대로 싣는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적어도 이어령이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_109쪽

3장 이어령의 회색지대, 그 창조의 공간
KBS 제4편이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이어령은 지식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끝없는 회색의 공간, 간단히 ‘이거다, 저거다’라고 말할 수 없는 그 회색 공간에서 방황해보지 못한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결론을 내기보다는 질문 기능을 가진 자가 지식인이며, 한마디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글을 쓰고 지식인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어령은 끊임없이 회색의 공간Gray Zone에 대해 역설한다. 그 공간이 이어령이 말하는 창조의 공간이다._165쪽

창조성과 목욕탕_“그런데 차렷 자세로는 창조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화장실이나 목욕탕같이 일상적인 외부공간과 단절된 곳에서 창조적인 상상력과 생각이 탄생하는 거지. 공동변소라도 화장실에는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잖나. 그곳에서 비로소 모든 긴장이 풀리는 거지. 우리는 사실 어머니의 아기집 안에서 나온 이후 한 번도 그런 나 홀로의 밀실에 들어 있어 본적이 없어. 그래서 철학자 린위탕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생각들은 아마도 대부분 화장실에서 뒤를 보다가 떠올랐는지 모른다’고 했어.”
“그러면 선생님의 그 목욕탕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레이 존에 있지.”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바로 그 그레이 존이군요. 그러면 그, 외국 사람 이름처럼 들리는 ‘그레이 존’은 어디에 있습니까?”(웃음)
“새는 자기 몸에 달린 날개로 무엇을 하나?” “왜 갑자기 날개 이야기를 꺼내시는지요?” “그레이 존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려고 그러는 거니까 대답해보게.” “날개야 새를 날게 해주는 것이잖습니까 그래서 날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새는 밤낮 날아만 다니나?” “아니죠. 나뭇가지 같은 곳에 앉아서 쉬기도 하지요.” “그러면 쉴 때도 그게 날개인가?” “아니군요.” “새는 알을 품을 때 무엇으로 감싸나.” “글쎄요. 날개로도 감싼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그럴 때도 날개는 날개인가?” “굳이 말하자면 품개가 되겠네요.” “자네는 조금 전에 그레이 존을 지나왔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레이 존을 한국말로 바꾸면 회색지대가 아닌가? 회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흑과 백을 적당히 섞어놓으면 회색이 되지요.” “흑과 백을 모두 아우르는 색깔이지. 사물을 이것이다, 또는 저것이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한쪽만 보이는 지대가 아니라 양쪽이 다 보이는 지대가 바로 그레이 존이네.”_178~180쪽
먼저 내가 말한 그레이 존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더 설명해야겠네. 이대 고별 강연에서도 말했듯이 그건 역逆박쥐의 역할을 말한 거야. 아무리 정의로운 싸움이라고 해도 동물과 새가 패를 갈라 전쟁을 하는 양극의 갈등 구조 속에서는 진리를 얻을 수가 없어. 거기에 평화의 길을 놓는 것은 역박쥐의 역할이란 거지. 새들에게는 자기가 쥐처럼 생겼지만 그들과 같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물들에게는 새처럼 생겼지만 그들과 같은 짐승의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거지. 새와 동물의 대립을 탈구축하며 그들을 융합하고 화합해 보다 넓은 생명의 원천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보인 것이야. 새와 짐승에게 있어 고정 관념과 자신이 속한 영역의 벽을 허물 수 있게 하는 것이 역박쥐의 정보 역할이란 말이지._183쪽

창조학교의 퀴즈, 창조적 대답_나는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쓴〈창조계급의 부흥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이라는 책을 들고 나갔네. 종이책이야말로 아날로그 세계의 대표적인 존재 아닌가. 그곳에서 나는 그 책을 읽고 창조학교를 세울 결심을 했다고 말했지. 그 책에는 한국의 창조지수가 프랑스보다는 못하고 영국보다는 나은 16위로 나와 있어. 높은 편이지. 놀랍지 않나? 우리는 경제성장에만 매달려 있어서 창조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지.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다음 장의 내용이었어. 그 높은 한국의 창조지수가, 일인당 평균 창조지수를 내어 보니 40개 가까운 국가 가운데 꼴찌에서 세 번째 정도 되는 거야. 이 말은 한국인들의 창조력이 몇 안 되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겼나? 수많은 아인슈타인, 수많은 피카소, 수많은 세종대왕, 수많은 장영실, 수많은 황진이가 미친 사람이 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야. 나는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확인시켜주고,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창조학교와 같은 창조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네._210~211쪽

예수와 디지로그_이어령은 “어금니로 씹는 디지털”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이 말을 이해했는가? 어금니로 씹는 행위는 아날로그다. 그런데 씹을 수 없는, 그저 의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디지털을 씹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 이어령은 이어서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 대해서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을 씹는다, 말이 먹힌다’와 같은 말을 쓰잖나. 한국 사람들은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나이도 먹고, 심지어 욕도 먹어요. 그리고 월드컵 때 어땠어요? 한 점 잃었다고 하지 않고 한 점 먹었다고 하지. 돈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이거 얼마 먹혔어?’ 하잖나. 감동도 먹었다고도 하고. 이런 한국 사람들을 두고 옛날에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모든 것을 먹는다고 했겠나 그랬지. 그러나 그게 아니지. 씹는 것, 너와 내가 하나로 되고 싶은 욕망, 이게 어느 민족보다 강해서 그런 표현이 나온 거요. … ”
…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 “어금니로 씹는 디지털”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팟iPOD이나 닌텐도 위wii처럼 디지로그 제품들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이어령은 디지로그를 말할 때마다 누구보다 더 디지로그적인 한국 사람들이 구체적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고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일흔일곱의 나이라는 것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것과 같아요. 조금 늦든 빠르든 이제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거지. 내가 죽어도 내 집이나, 아이들, 돈, 모두가 남겠지만 내가 가진 창조성은 사라질 것이니 이것을 주고 떠나고 싶어. 그래서 디지로그 창조학교를 만든 것인데, 그런데 그게 실패할 것 같아.”_224~226쪽

4장 프리즘에서 나온 이어령의 기독교
진실 가까이 가기_이어령은 일흔다섯의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도가 되었다. 그 전에는 기독교도를 공격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성경을 기호학을 공부하는 텍스트로, 문화를 읽는 텍스트로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만두론을 꺼내 든다. “그것은 만두를 먹을 때 만두 속을 꺼내어서 양파, 당면, 돼지고기를 따로따로 먹는 것과 같아요. 그러면 그게 만두를 제대로 먹는 건가? 아니지. 만두는 그 모든 것을 만두피로 싸놓은 것이고, 그것을 한꺼번에 씹어야 만두 맛을 느낄 수 있잖나. 마찬가지야. 성경도 통째로 씹어 먹어야 해. 그러면 앞뒤 아귀가 딱딱 맞거든.”_234쪽
지성에서 영성으로_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문턱을 넘어선 뒤의 이어령에게서 ‘영성’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것은 쉽지 않았다. 이어령은 여전히 영성적이기보다 지성적이었다. 영성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도마 같다’고 말한다. 도마는 의심이 많았던 예수의 제자다. … 이어령은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지성에서 영성으로》, 211쪽)고 했다. 이어령의 어법으로 보아도 도마스럽다는 말은 지성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어령은 세례를 받은 뒤에도 여전히 문 너머가 아니라, 문 앞이거나 문지방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어령은 다르게 해석한다. 세례는 ‘서울 30Km’와 같은 이정표나 학교에서 받은 학생증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에 도착할지 도착하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 입학한 학교를 졸업할지, 좋은 학생이 될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이어령이 세례 받은 것들 두고 친구들도 그다지 좋게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명예도 있고, 처자식 있고, 돈도 가진 사람이 뭐가 답답해서 그 나이에, 무릎 꿇고 앉아서 청승을 떨고 세례 받느냐”(〈백지연의 人터뷰〉, CGN TV, 2008년 3월 11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대답은 외로움이었다._245~246쪽

변화의 씨앗과 계기_이어령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변화는 변화일까? 이어령은 스스로 그 씨앗을 여섯 살짜리 아이였던 때에서 찾아내고 있다.

대낮 보리밭 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돌부리에 채인 것도 아닙니다. 귀가 멍멍하도록 고요한 대낮, 새하얀 햇빛 한복판에 서서 아무 이유 없이 뺨을 타고 내리던 눈물방울을 느꼈지요. ―《지성에서 영성으로》, 34쪽

아무 이유 없는 이런 외로움이 영성을 갈구하는 씨앗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모든 씨앗이 잘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과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는 이어령의 딸 장민아(이민아가 아니고 장민아인 것은 결혼한 뒤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였다._254~255쪽

5장 시지프스의 신화―스리피스로 만든 한 벌의 수의
깊은 우물을 하나 파고 싶다_그는 수의를 마련하는 마음으로 세 가지 일을 벌였다. 그 세 가지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학교’, ‘한국인 이야기’다. … 그의 말대로 그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지 그가 판 우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어령은 뜻밖에 그 많은 성공을 ‘마무리’하는 실패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왜 이 세 가지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세 가지 일은 나를 남기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요. 나는 우물 파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으니까, 재미있게 잘 지냈으니까, 그것으로 된 거야. 물이 좀 고인 것도 있고, 조금 더 파면 물이 나오겠지만 파다 만 것도 있겠지.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파는 이 세 우물만은 깊이 파서 뿌리 깊은 나무를, 샘이 깊은 물을 만들어보자는 거야. 그래서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 나무 그늘에서 쉬고, 나무 열매를 따먹고 우물에서 나오는 물로 갈증을 풀 수 있게 해주자는 거지. 물론 이것도 순전히 남을 위해서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 내가 해본 것들 가운데 아직 해보지 못한, 실현해보지 못한 즐거움과 재미를 여기서 느끼기도 하니까. 깊이 파보는 것도 처음이거든.”_277~282쪽

가위바위보의 균형을 위한 일_“… 한국의 아이덴티티는 중국, 일본과의 삼각관계를 생각하지 않고는 확인될 수 없는 것이야. 그런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 나라의 문화를 비교분석해보아야 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십이지, 매난국죽이지. 십이지와 매난국죽에 대한 문화는 세 나라 모두에 오랫동안 지녀온 전통문화지. 그것들을 통해 해양, 반도, 대륙의 차이와 동일성의 문화를 비교해보자는 거야.” … 그런데 이 일이 왜 실패하리라는 것일까?
… “세 가지 문제가 있어요. … 한중일비교문화연구는 미래를 위한 준비예요. 내 자식, 내 손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지적 자원을 마련해주는 것이지. … 그런데 이런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주 적어요. 경제를 위해서, 안보를 위해서, 정치적 이념 투쟁을 위해서 모이자고 하면 잘 모이지만 십이지하자, 매난국죽하자 그러면 다들 관심이 없어. … 나는 일본문화론을 쓰고, 한국문화론을 썼지만 중국문화론을 쓰지 못했거든. 해야 하고,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거야. 나에게 너무나 넘치는 테마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못했던 것이었지. 그런데 이제는 개인적으로도, 실패하더라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된 거요. …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문제인데,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은 내가 주인이고, 언어라는 것이 변덕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잘 들어주었어요. 내가 좌로 가라고 하면 좌로 가고 우로 가라고 하면 우로 가고,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다루기 쉽고 소통의 도구로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었지. 그런데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하는 일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리더십을 필요로 해요.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 내 상상력만으로 해온 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조직이 하는 일이야. 또 돈도 많이 필요한데, 이 재단의 규모는 아주 작아요. … ”_282~287쪽

뒤에 오는 사람에게 주는 창조의 실마리_ … 이어령이 시작한 창조학교가, 경기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시작한 창조학교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 같다. 그런데 창조학교도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창조학교는 태생적인 한계가 뚜렷해요. 가장 비창조적 집단인 관료조직과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하려고 하는 자유분방한 예술문화집단의 만남이었거든. 이것은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야. …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난센스’가 아니면 창조학교를 만들 수 없어요. 이런 학교는 애플apple과 같은 기업이나 대학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개인이 20~30억을 낼 수는 없으니까,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 앞으로 창조학교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생각만 하면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에요. 실패할 것 같아.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시대와 현실이 제시하는 방향이야. 그래서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작한 거요. … 죽음은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 창조학교 역시 실패한다 하더라도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창조학교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 창조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 창조를 이어갈 누구에겐가 실마리를 줄 수 있을 테니까 시작한 거지. 아니 실패해야 해. 성공을 하면 사람들이 또 시기하고 욕하겠지만 실패하면 울어줄 거야. 그리고 자신들이 잘난 체하는 이 아무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생길 테지. 나는 내 가슴으로 그들의 과녁이 되어도 좋을 만큼 늙었다는 것을 요즘에야 조금씩 깨닫고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지금 나를 위해 분노할 사람 그리고 울어줄 사람이 필요해. 그 사람만이 내 목숨의 대를 이어줄 사람이거든.”_288~294쪽

영원히 묻힐 수 있는 이야기_앞의 두 가지 일은 그렇다 해도, ‘한국인 이야기’는 글쓰기다. 구체적인 글쓰기로서의 문학이다. 글쓰기는 오늘의 이어령을 있게 한 것이고, 이어령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실패를 이야기한다. 〈한국인 이야기〉를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일제시대 말까지의 이야기에서는 실패하지 않을 거요. 성공할 자신도 있어. 그러나 해방 뒤부터는 자신이 없어. 그 치열한 이념 싸움, 그 많은 폭동, 혁명 … 그리고 전쟁, 그 혼돈의 역사 속에서 그 엄청난 역사를 내 개인사로 기록하는 데 어려움이 너무나 많아. 복잡한 이해관계와 이념이 얽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지. 내가 아무리 공정한 입장에서 쓰려고 하더라도 이미 나에게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가, 그 부분에서 자신이 없어.”_295쪽
… 실패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한국인 이야기〉를 꼭 써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이지.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삶을 쓰지 않고 다른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인가. … ”_295~298쪽

시지프스의 신화를 생각하며_이어령은 이렇게 세 가지 실패라는 수의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 가지는 내 삶을 설명해주는 프로젝트지만 그 삶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성공해야 하는데, 그런데 미완의 것이 되거나 실패로 끝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아요. 그런데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하나의 노동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고, 실패할 줄 알면서, 무익한 줄 알면서 돌을 다시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야. 뻔하게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고, 그것을 줍기 위해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 돌덩어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전력을 다해 정상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지.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사람들에게 나의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역설적으로 성공한 거요. 그러나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절대적인 실패를 겪게 될 거야, 아마. 누군가 이 세 가지 어려운 일이 실패하는 이유와 과정을, 그리고 내가 왜 실패로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하는가를 읽을 수 있다면 내가 전 생애에 해온 일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_298~299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이어령의 들어가는 말
- 장고처럼 울리는 책

강창래의 들어가는 말
- 자궁 속 20억 년의 기억

서장 죽을 준비로 바쁜 사람을 붙잡다
1장 귀여운 어령이
2장 소문에 가려진 진실, 불온성 논쟁
3장 이어령의 회색지대, 그 창조의 공간
4장 프리즘에서 나온 이어령의 기독교
5장 시지프스의 신화 - 스리피스로 만든 한 벌의 수의
강창래의 나가는 말 일란성 쌍둥이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