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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기도하라 (죽어도 죽지 않아)
혁명을 기도하라 (죽어도 죽지 않아)
저자 : 한승훈
출판사 : 문주
출판년 : 2012
ISBN : 9788996767008

책소개

교회 밖에서 변방의 사형수를 만나다!

죽어도 죽지 않아『혁명을 기도하라』. 현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연구 중인 저자 한승훈이 종교 전통 밖에 서서, 그 종교 전통 내부의 비판적 담론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은 교회와 한국 사회를 넘어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의 역사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는 기발한 착상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혁명과 반혁명, 아나키즘과 축제의 예언자를 되살려냈다. 총 3부로 구성하여,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그 예수를 닮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반혁명을 우리 사회의 역사와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더불어 기독교와 종교를 넘어서서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 앞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성찰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이제껏 예수는 없었다.
많은 예수가 기독교 혁신을 위해 호출되었다. 그러나 『혁명을 기도하라』의 예수는 교회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이 예수는 기독교는 물론 종교의 범주마저 넘어서는 영구적 사회 혁명의 가르침이자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교회와 한국 사회를 넘어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의 역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것은 곧 무한의 혁명이다. 기발한 착상과 날카로운 관찰로 되살아난 예수의 말이 통쾌하고, 재미있고, 불온하다. 변방의 사형수, 시대의 아나키스트 예수를 만난다.

되살아난 변방의 사형수, 무한의 혁명을 노래하다.
교회 비판은 익숙하다. 십일조는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재분배 제도였고, 제사를 허용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한때 신사를 참배했다. 공존을 거부하는 땅 밟기는 영역화된 신으로의 퇴행이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빌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에 이르면 사기에 가깝다. 그래서 안티 기독교인들은 야훼를 사막의 잡신이라 조롱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실체적 진실이 있다. 야훼는 방랑자와 노예의 신, 성소를 거부한 뒷전의 신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권력은 야훼를 성전에 유폐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민중을 수탈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예수. 적들로부터 ‘질서를 파괴하는 자’, ‘술꾼에 먹보’, ‘도적과 세리의 패거리를 이끄는 자’라 비난받았던 남자. 그러나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에게는 더 없는 벗이었던 유쾌한 방랑자였던 자.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에 맞서 독설을 내뱉고, 체제 그 자체를 뛰어넘는 사회 혁명을 부르짖었던 시대의 아나키스트.
그 예수가 오늘의 한국에 온다면 뭐라 할까? 예를 들어 레이디 가가와 4대강. 답은 간단하다. 예수의 하나님은 퀴어. 그러니 예수는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그 뒤에 웅크린 권력에 침을 뱉을 것이다. 4대강의 경우 예수는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점령군 로마 군단 귀신들을 돼지 속에 밀어 넣어 호수에 빠트림으로서. 이 사건을 현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예수가 개발 귀신을 쥐떼에 집어넣어 4대강에 빠트렸다.”
젊고 겁 없는 종교학자인 저자는 기발한 착상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혁명과 반혁명, 아나키즘과 축제의 예언자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위트 넘치는 목소리로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2부에서는 그 예수를 닮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반혁명을 우리 사회의 역사와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3부에서는 기독교와 종교를 넘어서서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 앞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성찰하고, 종장에 이르러 혁명적 영성이라는 화두를 통해 예수의 영구적 사회 혁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의 혁명이다.
예수가 변방의 사형수로 죽고 2,000년이 지난 오늘, 현재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는 인류 종교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비판자를 불러냈다. 겁 없는 젊은 학자의 손에 의해 되살아난 예수의 말이 통쾌하고, 재미있고, 불온하다. 『혁명을 기도하라』의 예수는 기독교와 그것의 거울인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강렬했던 변화의 에너지가 제도와 체제로 수렴되고야 마는 인류사의 반복된 역사를 뜨겁게 성찰한다. 2,000년의 시공을 두고 팔레스타인과 한국을 주유하던 예수는 인류가 불의를 극복할 수 있는지, 진정한 혁명이 가능한지, 지속 가능한 혁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 것이다. 혁명 국가가 형용 모순이듯, 혁명 종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초월의 영성에 대한 믿음은 체제에 수렴되지 않는 저항, 끝나지 않을 반란을 꿈꾸게 한다. 불의의 시대. 저자가 되살린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곧 메시아니 너희 자신을 믿으라.”

출판사 리뷰

변방의 사형수, 시대의 아나키스트, 예수가 전하는 무한한 혁명.
기발한 착상과 날카로운 관찰, 아름다운 문체로 되살려낸 검은 메시아.

‘레이디 가가’와 ‘4대강의 쥐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성서적 근거는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다. 그러나 그 날의 야훼가 분노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강간, 정확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가해지는 집단의 폭력이었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는 만약 예수가 살아 있다면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그들 뒤에 웅크린 권력에 침을 뱉을 거라 한다. 예수의 하나님은 퀴어다.
4대강은 어땠을까? 이 문제는 더 쉽다. 예수는 이미 성서 속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남겼다. 예수는 거라사 지역에서 불쌍한 한 남자의 몸에 깃든 귀신을 돼지 떼에 깃들게 하여 갈릴래아 호수에 빠트렸다. 남자의 몸에 깃든 귀신의 이름은 ‘레기온’ 즉, 로마군단. 율법에 의해 돼지를 먹지 않는 유대 사회에서 돼지를 먹는 유일한 자들은 점령군인 로마군뿐. 그러니까 그 예수는 민중 반란에 대한 탄압이 서슬 퍼런 거라사에서 로마군과 그에 결탁한 토착 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그 날의 예수를 현대 한국 버전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예수라는 이름의 예언자가 개발 귀신을 쥐 떼에 깃들게 하여 4대강에 처넣었다.”

여기, 이제껏 보지 못한 예수가 있다.
교회 비판은 익숙하다. 십일조는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재분배 제도였고, 제사를 허용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한때 신사를 참배했다. 공존을 거부하는 땅 밟기는 영역화된 신으로의 퇴행이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빌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그러나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권력은 야훼를 성전에 유폐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민중을 수탈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불의와 좌절의 역사는 반복된다.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여기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가 있다.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에서 살해당한 변방의 사형수 예수. 사실, 예수를 호출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혁신은 언제나 예수의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예수는 기독교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예수는 종교를 넘어선 영구적 사회 혁명의 상징이자,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젊고 겁 없는 종교학자인 저자는 기발한 착상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혁명과 반혁명, 아나키즘과 축제의 예언자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위트 넘치는 목소리로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2부에서는 그 예수를 닮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반혁명을 우리 사회의 역사와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3부에서는 기독교와 종교를 넘어서서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 앞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성찰하고, 종장에 이르러 혁명적 영성이라는 화두를 통해 예수의 영구적 사회 혁명, 무한의 혁명을 제시하고 있다.

변방의 사형수, 시대의 아나키스트.
안티 기독교인들은 야훼를 사막의 잡신이라 조롱한다. 그러나 이 말에 실체적 진실이 담겨 있다. 야훼는 방랑자와 노예의 신, 성소를 거부한 뒷전의 신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에서도 권력은 야훼를 성전에 유폐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민중을 수탈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예수. 적들로부터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먹보에 술꾼’, ‘죄인과 세리의 패거리’로 비난받았던 자. 그러나 실은 버림받은 자들과 축제처럼 웃고 떠들며 세상을 주유하며 장엄한 혁명군 대신, 잉여들과 먹고 마시며 농담과 위트를 무기로 세상의 질서를 뒤집었던 자.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의 벗이었으며, 쫓겨난 이들의 수호자. 사적 소유의 철폐와 소수자의 해방을 외쳤으며,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고 난 다음 해, 즉 50년이 될 때마다 그동안의 모든 금융거래와 부동산거래, 노예계약이 모두 무효화’되는 희년이 도래하는 세상을 꿈꾸었던 남자. 권력은 물론 권력을 낳는 체제 그 자체마저 뛰어넘는 사회 혁명을 꿈꾼 아나키스트, 지상의 율법에 매이지 않는 영원한 방랑자.

기독교를 넘어, 종교를 넘어.
간디는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다.”고 했다. 어째서 예수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은 보수와 부패, 탐욕의 상징이 되어 버렸나? 어째서 소수자를 배척하고, 남의 땅을 밟으며, 권력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 버렸나?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회학적이고 역사학적인 분석 대신, 기독교 내부의 종교적 전통, 즉 기독교 전통 내부에 은폐되어 있던 살아 숨 쉬는 혁명의 전통, 예수를 되살린다.
되살아난 예수의 눈에 비친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그 옛날 예수를 죽였던 자들이 그랬듯 정치권력과 야합한 종교 권력이다. 돈이라는 ‘맘몬’에 영혼을 팔았고, 땅 밟기로 자신들의 신을 영역화된 신으로 퇴행시키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예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의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기독교 비판은 한국 사회 비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인류사의 반복되는 좌절과 불의. 한때 활활 타오르던 변혁의 에너지도 어느새 제도와 체제로 수렴되고야 마는 반복된 역사. 인류는 제 손으로는 불의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부터 이 책의 예수는 기독교는 물론, 종교라는 경계마저 뛰어넘는 성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당신이 구원자다. 당신을 신뢰하라.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을 다루지 않는다. 예수는 남겨진 자, 핍박받는 민중,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 믿었기에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2,000년 전의 그날, 어두운 동굴 안에서 부활이 이뤄졌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가 말했듯이 너희가 곧 구원자며, 하늘의 지배가 지금 이 순간 이뤄졌다고 믿으며, 체제와 권력의 저항하는 백성이 곧 메시아니, 이 순간 싸우고 있는 당신들이 곧 부활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기도하라』의 예수는 반란하고, 전복하고, 그리하여 혁명하라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의에 지치고 좌절한 자들에게 반란의 예언자는 죽지 말라 한다. 모두가 메시아가 되어 임신한 마리아의 수업권을 위해 노래하고, 소수자와 연대하고, 개발의 영을 쥐떼에 가둬 4대강에 처박아 버리라고 외친다. 그리하여 비천한 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지금 여기에 세우라 한다.
2,000년의 시공을 두고 팔레스타인과 한국을 주유하던 예수는 인류가 불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진정한 혁명이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 혁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눈을 마주하고 답하기 시작한다. 혁명 국가가 형용 모순이듯, 혁명 종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초월의 영성에 대한 믿음은 체제에 수렴되지 않는 저항, 끝나지 않을 반란을 꿈꾸게 한다. 불의의 시대. 저자가 되살린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곧 메시아니 너희 자신을 믿으라.”

추천사

오랜만에 유쾌한 책을 만났다. 거대한 성당과 교회, 그리고 권위적이고 자폐적인 성직자들에 가로막혀 만나볼 수 없었던 한 젊은 사내, 예수에 대한 이야기다. 세례를 받거나 교인으로 등록을 하지 않고도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그를 우린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저자에 의해 묶인 입이 풀린 예수의 말들이 통쾌하고, 재밌고, 불온하다. 예수는 교회를 세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 했던 ‘변방의 사형수’였다. 민중의 봉기자였고, 광장의 민주주의자였고, 영구혁명을 꿈꾼 시대의 아나키스트였다. 제도화된 율법의 억압성과 우스꽝스러움을 조롱하는 분열자였다. 백향목처럼 높고 큰 나무가 아닌 겨자씨처럼 작고 비천한 이들을 사랑했던 버림받은 대지의 벗이었다. 계급과 특권과 질서와 전통에 대항해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고 난 다음 해, 즉 50년이 될 때마다 그동안의 모든 금융거래와 부동산거래, 노예계약이 모두 무효화’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진정한 해방자였다. 그런 예수의 혁명적 생애와 말들을 가감 없이 폭로하는 필자의 문체가 한없이 열려있어 아름답다. 그간 특정 종교에만 귀속 당해왔던 예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벗으로 다시 살아 돌아 온 그가 반갑다. 이것이 그가 꿈꾸던 진정한 부활이 아니었을까.
- 송경동, 시인

예수를 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이 책의 저자는 교회에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스스로 성경을 통해 예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수를 보되 교회의 교리적, 신학적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보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그가 찾은 예수는 보통 기독교인이 교회를 통해 알게 된 예수와 사뭇 다르다. 그가 스스로 얻은 결론은 예수가 파격적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체제 변혁을 위해 행동한 아나키스트였다는 것, 오늘날 한국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닮았다기보다 오히려 예수를 살해한 세력과 더 닮았다는 것,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발하면서도 예리하고, 흥미롭지만 날카로운 관찰로 가득하다.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적” 변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용기 있는 젊은 학자의 예리한 관찰에 귀 기울여야 한다.
-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 『예수는 없다』 지은이

기독교가 교회라는 제도에 갇혀 타락했을 때, 예수의 이름은 언제나 종교의 갱신을 위해 호출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호출하고 있는 예수는 종교 그 이상이다.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선험적 범주로서 예수는 그 자체로 종교이자 혁명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이제 기도는 다른 무엇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 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 교수

역사적 이야기의 힘은 그 과거 속에서 현재의 고통과 희망에 관한 생생한 메시지가 살아 있을 때다. 그런 점에서 『혁명을 기도하라』는 훌륭한 역사적 이야기다. 2천 년 전 예수에게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민과 말투, 실천이 고스란히 발굴되고 있다.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그로부터 2,000년이 흘렀다.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힘겨운 독립운동 끝에 해방을 맞은 나라가 있다.
분단이 되었고, 외국군이 주둔하고, 권력자들은 토목공사를 벌인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대박이 터지고 다른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여기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얻어맞고, 연행되고, 구속된다.
종교 지도자들은 2,000년 전에 죽은 그 청년을
높은 첨탑 위에 매달고
국가의 안전 보장과, 부동산 대박과
동성애자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이것은 그 나라에 사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
- 8~10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머리글 교회 밖에서 변방의 사형수를 만난다

1부. 혁명의 예언자 예수 이야기

1장. 불온한 탄생
유다 왕국의 불도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봉기하라
제국의 프로파간다, 레지스탕스의 패러디
제왕들을 끌어내고, 비천한 이들을 높일 아이

2장. 루저들의 신과 구속된 예언자
메시아와 예언자
떠돌이와 노예들의 신
길들여진 야훼, 외치는 예언자
정치범 요한의 팟캐스트
요한이 구속된 후에

3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나를 따르라!
먹보에 술꾼, 죄인과 세리의 패거리
안식일의 난봉꾼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한다
돼지와 함께 물속에 처박혀라
급진적 방랑

4장. 정의의 지배, 돈의 지배
사적 소유 철폐와 토지 개혁의 딜레마
야훼냐 맘몬이냐
거지 떼가 차지하는 나라

5장. 성전을 점거하라!
창녀는 신학자보다 하늘나라에 가까이 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죽는다
성문 돌파 새끼 나귀
성전을 허물어라
카이사르의 것과 하나님의 것
예수의 마지막 도박
돌아오지 않는 예언자

2부 기독교의 반혁명

1장. 구분 짓기 VS 구분 허물기
십일조와 헌금은 저소득층의 신에게
교회에서 쫓겨난 술꾼 예수
예수의 하나님은 퀴어

2장. 저들의 종교는 우상이다 VS 나의 종교가 우상이다
영적 전쟁과 영역화된 신
도둑놈들의 소굴
진짜 우상은 체제다

3장. 권력에 맞서기 VS 권력에 빌붙기
진보는 마귀 새끼
천국은 뉴타운 아파트
여우같은 헤로데, 쥐같은 ……

3부. 경계를 넘어 : 혁명적 영성
기독교인은 왜 예수는 안 믿고 교회를 믿는가?
예수 운동의 게릴라들 : 혁명기도원과의 인터뷰
‘혁명의 국가’와 ‘예수의 교회’

결언 믿음, 혹은 영원한 혁명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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