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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계승자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 (김정은 평전)
저자 : 애나 파이필드
출판사 : 프리뷰
출판년 : 2019
ISBN : 9788997201471

책소개

베일에 싸인 독재자 김정은의 행동심리와 북한사회를 이해하다!

수수께끼의 지도자 김정은의 알려지지 않은 장막 뒤 이야기를 추적한 『마지막 계승자』. 김정은에 대해 쓴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 책은 베일에 싸인 독재자 김정은의 삶과 행동심리, 그리고 북한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10여 차례에 이르는 북한 현지취재와 다양한 자료, 북한주민과 탈북자 등과의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의 행동심리를 분석하고,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토 웜비어 사건의 내막까지 확인할 수 있다.

1부에서는 김정은의 어린 시절과 스위스 유학시절을 다루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김씨 일가의 초호화판 사치생활과 어린 김정은의 유별난 성격, 위장신분으로 지낸 유학시절의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2부 권력 다지기에서는 3대 권력 승계 과정과 승계 직후 권력을 다지기까지의 공포정치와 장마당 정책, 이복형 김정남 암살과 고모부 장성택 처리과정의 알려지지 않은 내막이 공개된다. 천안함 폭침도 권력 승계 과정에서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김정은이 총지휘한 것으로 책은 밝히고 있다. 3부에서는 내부 권력 장악 이후 한국을 상대로 한 평화공세와 미국과의 담판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북한의 웜비어 치료비 2백만 달러 요구
특종 담은 책. 출간 전 신문에 별도 보도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4월 25일 ‘북한이 지난 2017년 당시 혼수상태에 빠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치료비 명목으로 200만 달러의 청구서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보도를 한 기자는 이 신문의 베이징지국장인 애나 파이필드. 신문은 북한 측이 요구한 청구서가 2017년 말까지는 미지급 상태로 미재무부 금고에 보관 중이었다고 밝히고, 이후 돈을 지불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웜비어는 북한 억류 17개월 만인 2017년 6월 13일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된 엿새 만에 숨졌고, 전 세계적으로 북한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성에 대해 분노와 경각심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도가 논란이 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 측에는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파이필드 기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토 웜비어 사건의 내막을 6월초 발매예정인 자신의 저서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The Great Successor: The Divinely Perfect Destiny of Brilliant Comrade Kim Jong Un)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발매를 앞두고 책에 쓴 200만 달러 요구 건을 먼저 기사화한 것이다.
도서출판 프리뷰는 이 책의 집필 초기단계에서 저자 측과 번역출판 계약을 체결하고, 6월초 영문과 한글판을 동시 출판하게 되었다.

영문과 한글판 동시 출간
집필 초기단계에 한글판 출판계약 체결
자는 서방 언론인 가운데 북한 정보에 가장 정통하다는 평을 듣는 저자는 이 책에서 수수께끼의 지도자 김정은의 알려지지 않은 장막 뒤 이야기를 추적했다. 베일에 싸인 독재자 김정은의 삶과 행동심리, 그리고 북한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10여 차례에 이르는 북한 현지취재와 다양한 자료, 북한주민과 탈북자 등과의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의 행동심리를 분석하고,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에 대해 쓴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라는 평가를 듣는 책이다.

김정은의 행동심리와 북한사회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저자는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비밀주의와 신화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다층구조적인 내면을 너무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그려낸 김정은은 영리하고 잔혹하며, 외교적인 요령까지 터득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권력유지라는 최종 목표에 맞춰져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2018년 말까지 워싱턴포스트의 서울특파원과 도쿄지국장으로 활동하며 한반도 문제를 집중 취재했고, 2019년 초 베이징지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십여 차례의 북한 현지취재를 통해 북한정권의 향방을 꾸준히 추적해 왔다.
책은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에서는 김정은의 어린 시절과 스위스 유학시절을 다루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김씨 일가의 초호화판 사치생활과 어린 김정은의 유별난 성격, 위장신분으로 지낸 유학시절의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2부 권력 다지기에서는 3대 권력 승계 과정과 승계 직후 권력을 다지기까지의 공포정치와 장마당 정책, 이복형 김정남 암살과 고모부 장성택 처리과정의 알려지지 않은 내막이 공개된다. 천안함 폭침도 권력 승계 과정에서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김정은이 총지휘한 것으로 책은 밝히고 있다. 3부에서는 내부 권력 장악 이후 한국을 상대로 한 평화공세와 미국과의 담판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새로 밝혀낸 김정은 일가 이야기 가득
이한영 여동생 이남옥 행방 최초 알아냈으나 특종 포기
이복형 김정남 암살 과정의 내막이 상세히 소개되고, 오토 웜비어 사망을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치료비 2백만 달러를 미국 측에 청구한 내막이 상세히 소개된다.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자녀인 이한영과 이남옥 남매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가 최초 공개된다. 이한영은 한국으로 망명 후 서울에서 북한 공작원의 손에 암살당했다. 김정일의 수양딸로 살다 서방으로 망명한 이한영의 여동생 이남옥은 이후 이십년 넘게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저자가 이번 집필과정에서 소재를 알아냈다.
저자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파리에 살고 있는 이남옥의 행방을 알아내 찾아갔으나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는 그녀의 청을 받아들여 이를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다. 저자는 특종을 포기한 이유를 콩가루 집안이 된 김씨 왕조의 혈육 가운데 유일하게 정상적인 삶을 찾은 이남옥의 꿈을 허공에 날려버릴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해 8개국을 다니며 탈북자, 북한의 고위공직자, 일반 주민들과 수백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서 김정은이라는 퍼즐을 맞추어나갔다. 퍼즐을 맞추고 나서 얻은 결론은 아직 북한 땅에 갇혀 있는 2500만 명의 주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 속으로 이어서]
허구로 가득 찬 땅
북한 땅에 가면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혼란스러웠다. 당시 나는 6년 만에 북한 땅을 다시 찾았다. 마지막으로 간 게 2008년 겨울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방북 때였다. 나는 뉴욕필하모니의 방문이 역사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오케스트라가 미국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나라에 와서 공연하는 것이었다. 무대 양쪽에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가 마치 북엔드처럼 세워져 있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곡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을 연주했다.
“언젠가 평양의 미국인이라는 곡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지휘자 로린 마젤
(Lorin Maazel)은 연주 시작에 앞서 북한 관객들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나중에 이별을 노래하는 애절한 선율의 민요 아리랑이 연주되자 철저히 선별해서 참석시킨 평양 관객들 가운데서도 동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역사의 전환점은 오지 않았다. 그해 북한의 최고통치자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이 심장질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몇 년 뒤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가 쓰러지고 나서부터 북한정권은 한 가지 일을 해결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 한 가지 일은 바로 이 공산왕조가 흔들림 없이 대를 이어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막후에서 김정일의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는 작업이 진행됐다. 당시 24살에 불과한 김정은을 북한정권의 다음 지도자로 앉히기로 한 것이다. 그가 외부 세계에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나서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당시 김정은이 개혁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서방국가를 여행하면서 자본주의의 맛을 보았다는 사실을 분석의 근거로 내세웠다. 과연 김정은이 그런 과거 경험을 북한 내부에 들여올 것인가?
런던에 유학한 안과의사 출신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집권 초기 실리콘밸리를 방문하고, 여성 운전을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처음에는 비슷한 기대를 모았다. 중국 전문가인
존 딜러리(John Delury)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에 의하면 김정은의 경우도 초기 징조는 괜찮았다. 딜러리 교수는 이 젊은 지도자가 처음에는 1978년 덩사오핑(鄧小平)이 중국에서 한 것처럼 북한에 개혁과 번영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드러나 것은 다른 방향에서의 낙관론이었다. 끝이 멀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낙관론을 말한다. 가까이는 서울에서부터 멀리 워싱턴 D.C.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부관리와 분석가들이 크고 작은 목소리로 북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심각한 정세 불안정과 중국으로의 대량 탈출 사태, 군사정변, 임박한 체제붕괴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 3대 지도자 시대까지 독재정권이 유지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시카고 불스의 열렬한 팬인 스무 살 남짓 어린 지도자, 군부나 정부기관에서 제대로 경력을 쌓은 적이 없는 어린 지도자에게서 정권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북한핵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활동한 빅터 차(Victor Cha) 교수는 북한정권이 수주가 아니면 최소한 수개월 안에 붕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일관되게 이런 전망을 내놓았고, 그의 전망에 동조하는 전문가는 얼마든지 더 있었다. 대부분의 북한 관측통들이 종말이 머지않다고 생각했다. 김정은이 지도자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나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씨 일가의 통치가 3대째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여러 해 동안 북한을 지켜보았다.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에서 일할 때인 2004년 서울특파원으로 와서 남북한을 모두 취재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내심을 갖고 북한 문제에 매달렸다.
이후 4년 동안 북한을 10번 방문했는데, 그 가운데 5번은 평양을 취재하기 위해 간 것이다. 김씨 일가를 위해 만들어놓은 기념물들을 둘러보고, 정부 관리자와 공장책임자, 대학교수들과 인터뷰했다. 이런 일은 항상 북한당국이 보낸 감시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감시인들은 자신들이 철저한 각본에 따라 짜놓은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못하도록, 자기들이 보여주는 것 의외에 다른 것은 보지 못하도록 항상 내 곁에 붙어 있었다.
나는 진실의 희미한 조각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한정권은 나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국가가 파산 상태이고,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경제는 거의 작동을 멈추었고, 사람들의 시선에 담긴 공포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2005년에 나는 평양의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김정일과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려 퍼지는 함성과 박수소리는 녹음해서 틀어주는 것같이 들렸다.
이런 체제가 3대째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까?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틀렸다. 붕괴가 임박했다고 믿은 전문가들도 틀렸다. 나도 틀렸다.
한국을 떠난 지 6년만인 2014년, 이번에는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특파원으로 부임하고 몇 달 뒤, 그리고 김정은이 집권하고 3년 정도 지난 시점에 평양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기자들은 이런 취재 명목으로 방북 비자를 발급받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수도 평양에 건설공사가 한창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광범위한 규모로 진행되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도심에서 한 구역 건너면 고층 아파트 단지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에는 시내에서 트랙터 한 대 보기 힘들었는데, 황록색 군복 차림의 작업인부들과 트럭, 크레인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외국인을 보기가 아주 드문 곳인데도 그랬다. 모두 눈을 내리깔고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시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웠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나아졌고, 새로 만든 링크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아이들도 보였다. 분위기 전체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북한 체제의 선전장이라지만 수도 평양의 삶은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낡아 털털거리는 트롤리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나이 든 여성들이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등에 메고 다녔다. 길거리에서 비만은커녕 약간 통통하게 살찐 사람도 구경하기 어렵다. 넘버원 한 명만 예외일 뿐이다. 그렇다고 망하기 일보 전의 도시도 아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70년이 지난 시점에 북한 공산주의의 얼굴인 평양에 와해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 기간 중 세계는 무자비한 통치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면서 자신의 사욕만 채운 독재자들의 부침을 무수히 지켜보았다. 아돌프 히틀러, 조지프 스탈린, 폴 포트가 그랬고,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가다피, 페르난도 마르코스, 모부투 세세-세코, 마누엘 노리에가가 그랬다. 그 가운데는 이데올로기 광신자도 있고, 약탈형 독재자도 있으며, 상당수는 양쪽 다 해당되는 독재자들이다.
가족이 돌아가면서 권력을 휘두른 가족형 독재자들도 있었다. 아이티의 ‘파파 독’(Papa Doc) 두발리에는 아들 ‘베이비 독’(Baby Doc)에게 권력을 넘겨주었고, 시리아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는 아들 바샤르에게 권좌를 물려주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넘겼다.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은 지금까지 국가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독재자들과 차별화된다. 김일성이 권좌에 있는 동안 미국에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부터 시작해 9명의 대통령이 자리를 지켰고, 일본에는 21명의 총리가 들어섰다. 김일성은 마오쩌둥이 죽고 거의 20년 더 살았고, 조지프 스탈린이 죽고 40년 더 살았다. 북한은 이제 옛소련보다 더 장수한 국가가 되었다.
나는 김정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내 도대체 이 젊은 지도자에 대해, 그리고 그가 물려받은 북한정권에 대해 사람들이 내놓은 전망이 왜 틀리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김정은이라는 수수께끼 인물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그와 직접 만난 적이 있는 사람과는 모조리 인터뷰를 시도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우선 그를 직접 만난 사람의 수가 너무 적고,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 그와 의미 있는 정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내가 가진 직관을 총동원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서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미래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이모와 이모부를 찾아냈다. 그의 십대 시절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스위스에도 갔다. 그가 예전에 묵었던 아파트 건물 바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그가 다닌 학교 주변을 한참 서성거려 보기도 했다.
어두컴컴한 중국 식당에서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와 점심식사를 두 번 함께 했다. 일본 요리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온 그는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의 전속 스시 요리사였고, 또한 김정은이 어렸을 때 미래의 지도자인 그의 놀이 상대가 되어 주기도 한 사람이다.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Dennis Rodman)이 북한에 갔을 때 일행으로 함께 간 사람들과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곧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그가 피살되고 불과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시신이 안치된 시체안치소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화가 잔뜩 난 표정의 북한 관리들이 분주히 오갔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갔더니 대사관 직원들은 기자들의 방문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출입문에 붙어 있는 초인종마저 떼어내 버렸다. 나는 김정남의 이종사촌 누나를 찾아냈다. 그녀는 김정일의 수양딸이 되어 김정남과는 남매지간이 되었으며, 그녀가 서방으로 탈출하고 김정남이 마카오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이다. 그녀는 지난 4반세기 동안 이름을 바꾸고 다른 사람이 되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2018년 들어 다양한 외교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북한 지도자를 만난 사람을 찾아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김정은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한국 가수에서 독일의 체육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평양에서 김정은과 만난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그가 탄 자동차 행렬이 내가 서 있는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이 수수께끼 같은 독재자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했다.
유엔 북한대표부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에게 김정은과 인터뷰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계속했다. 이들은 이스트 리버의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있는 숙소에 함께 모여 사는데, 그러다 보니 뉴욕에서 이스트 리버는 우스갯소리로 북한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인터뷰 요청은 성사 가능성이 매우 낮은 시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터무니없는 발상도 아니다. 김일성도 1994년 사망하기 얼마 전 외국기자 일행을 단체로 초대해 점심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북한 외교관들을 만날 때마다 김정은과의 인터뷰 건에 대해 묻고 , 그 사람들은 내 말에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북한 외교관들과 만날 때는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 사람들은 항상 48달러짜리 필레 미뇽을 주문했다.
2018년 중반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에 정상회담이 있고 한 달 뒤 북한대표부에서 외국 기자를 상대하는 리용필 차석대사를 만났다. 상냥한 매너를 갖춘 외교관인 그는 내 말에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꿈은 꿔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꿈만 꾸며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체제 전시장인 수도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해 줄 만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 취재는 허용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김정은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새로 시행되는 정책을 보고 그의 됨됨이에 대해 말해 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가 권력을 물려받은 이후까지 그곳에 살다 우역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북한 취재를 하는 동안 나는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김씨 세습 정권을 피해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다. 탈북자를 영어로 ‘탈주자’라는 뜻을 가진 defectors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defectors는 북한정권에서 도망쳐 나온 이들의 행위에 바람직하지 않은 점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탈북자’(escapees)나 북한 ‘난민’(refugees)으로 부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가면서 증언해 줄 사람을 만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탈북자의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 보안이 강화된 때문이기도 하고, 북한 내부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탈북자들의 한국 내 정착을 돕는 단체들을 통해 북한 주민 몇 십 명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들 역시 쉽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관리도 있고, 평양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 그리고 국경지역에서 밀거래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경에서 장사하다 적발되면 아무리 하찮은 죄목이라도 악명 높은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들 가운데는 젊은 지도자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들을 만났는데, 주로 교외 위성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오는 사람들을 재래시장 안에 있는 고깃집에서 만났다. 북한을 탈출한 뒤 제3국을 경유해 기약 없이 먼 길을 떠도는 이들을 메콩강변에서 만나기도 했다. 라오스와 태국의 우중충한 호텔방 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도 있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중국 북부에서 이들을 만나는 때였다. 중국당국은 탈북자들을 경제적 난민으로 취급해, 이들을 적발하면 강제 추방한다. 이들은 체포되어서 북한으로 송환당해 가면 반역자로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세들어 사는 아파트로 찾아간 내게 자신들이 겪은 일을 용기 있게 털어놓았다.
8개국을 다니며 이들과 수백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서 김정은이라는 퍼즐을 맞추어나갔다. 퍼즐을 맞추고 나서 얻은 결론은 아직 북한 땅에 갇혀 있는 2500만 명의 주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12장 오토 웜비어 죽음의 진실
(중략)
오토 웜비어 사건
김정은은 외부 세계, 특히 북한정권이 ‘교활한 미제 도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쓰는 또 한 가지 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인질 몇 명이 더 필요한 때가 되었다. 미국인 인질이었다. 과거에도 미국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수법이었다. 그동안 북한이 억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과의 국경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들이었다. 사업가 행세를 하며 실제로는 포교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고 1년쯤 되었을 때 북한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Kenneth Bae)를 체포했다.(한국 이름이 배준호인 그는 빙그레 이글스 초대 감독을 지낸 배성서씨의 아들이다.) 그는 중국을 근거지로 삼아 김정은 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민 죄로 15년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년 동안 억류돼 있다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동안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하고 평양 외교단지에 있는 친선병원에 강제입원 당하기도 했다. 이곳은 외국인이 치료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다.
그 다음 억류된 미국인은 매튜 밀러(Matthew Miller)였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이 젊은이는 평양 공항에 도착하자 여권을 찢고는 북한에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입국과정에서 법질서를 위반한 혐의로 억류된 지 8개월 만에 풀려났다.
그 다음은 오하이오주에 사는 도로관리인 제프리 포울(Jeffrey Fowle)씨가 관광객으로 왔다 억류됐다. 56세에 안경을 쓴 그는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 데이턴에서 열린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시범경기에 가서 산 농구공 하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그는 북한에 가지고 가려고 한다며 글로브트로터스 선수들의 사인까지 공에 받았다. 그는 그 공을 김정은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한국어 성경도 한 권 가지고 갔는데, 청진시에 있는 외국선원 클럽(Seaman's Club) 화장실에 그 성경책을 두고 나왔다. 북한의 지하 기독교 신자 누구든 가지가 가서 읽으라는 생각에서였다. 성경책을 발견한 북한 주민이 즉각 당국에 신고해 포울씨는 6개월 정도 억류시설에 갇혀 있다 풀려났다.(8)
오직 한 명의 신 김정은만 섬겨야 하는 북한에서 기독교인은 환영받지 못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국어를 구사하는데다, 북한정권은 이들을 민족의 반역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특히 더 싫어한다. 그래서 첫 번째 억류 목표가 바로 이들이다.
북한정권은 보통 자기들 기준으로 미국 행정부의 상당히 고위급 인사가 이들의 석방을 위해 직접 찾아올 때까지 이들을 억류한다.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와 빌 클린턴(Bill Clinton)도 미국인 억류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평양을 찾은 고위인사 대열에 합류했다. 북한 언론은 이들의 방북을 외국의 유명인사들이 최고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라고 포장해서 선전한다. 매튜 밀러와 캐네스 배는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정보국(DNI) 국장인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가 북한을 방문한 뒤 풀려났다.
2015년 말, 한 젊은 미국인 대학생이 미국에서 남학생끼리 파티에서 했으면 캠퍼스 경찰에 불려가 훈계나 듣고 풀려날 법한 짓을 했다. 하지만 그 짓을 한 장소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실책이 되고 말았다.
당시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는 21세를 갓 넘긴 청년이었다. 신시내티 교외 마을의 다재다능한 모범생으로 특이한 중고 티셔츠 수집 취미를 가진 부유한 집안 아이였다. 명문 버지니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홍콩으로 해외연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외여행도 제법 해보았다. 가족과 함께 쿠바 여행을 했고, 런던에 연수를 다녀왔으며, 유대교 신앙을 따라 이스라엘에도 가 보았다. 그리고 홍콩 연수 가는 길에 북한에 들러 볼 생각을 했다.
애초에는 아버지 프레드(Fred)씨와 동생 오스틴(Austin)등 삼부자가 고려관광을 이용해 함께 갈 생각이었다. 고려관광은 베이징에서 북한으로 가는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오래 된 여행사이다. 북한으로 개별여행은 허용되지 않으며, 영국인들이 운영하는 고려관광은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최종적으로 오토 웜비어 혼자 가기로 했고, 그는 자기 나이 또래들이 함께 가는 ‘영 파이오니어 투어’(Young Pioneer Tours) 패키지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공산당청년동맹에서 이름을 딴 프로그램으로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객을 모집했다.
나는 평양에 취재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이 그룹 일행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오전 11시경 워터파크의 카페테리어를 지나가는데 이들이 그곳에서 맥주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룹의 리더 격인 청년이 주위에 지나가는 북한 여성들을 희롱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 장면을 보며 ‘저러다 큰 일 나는데.’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오토 웜비어는 12월 29일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4박 5일 ‘신년맞이 관광’길에 올랐다. 처음 며칠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평양 중심가에 있는 21미터 높이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 동료 관광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북한 주민들은 눈길을 힘들게 걸어와 의무적인 참배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외국인들을 위해 공연하는 기이한 음악회도 관람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추운 주차장에서 북한 어린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사진도 있다. 1968년 북한에 강제 나포된 미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 전시장에 갔을 때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82명의 해군 승선원들은 구타당하고 굶다시피하며 1년 가까이 억류되어 있다 풀려났다. 하지만 함정은 돌아오지 못한 채 평양 대동강에 전시되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반미 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새해 전 날 관광단 일행은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았다. 북한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 가운데 하나이다. DMZ 관광을 마친 일행은 평양으로 돌아가 저녁식사 후 맥주를 조금 마시고 다시 김일성광장으로 가서 요란한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그러고 나서 일행은 20세 전후 그 또래들이 새해 전날 밤이면 으레 그러듯이 계속 술을 마셨다.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은 자정 조금 넘긴 시간부터였다. 그날 밤 자정부터 새벽 4시 사이에 정확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토 웜비어의 룸메이트인 영국인 대니 그래턴(Danny Gratton)이 방에 돌아왔을 때 미국인 친구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김정은 정권 주장으로는 새벽에 짧은 시간 동안 오토 웜비어는 호텔 내 직원만 출입하도록 되어 있는 층으로 내려가서 ‘김정일 동지의 애국심으로 철저히 무장하자!’라고 쓴 대형 선전물을 끌어내렸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행위를 국가에 대한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1월 2일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오토 웜비어를 공항에서 체포했다.
북한은 그로부터 3주 뒤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고 나서야 그를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억류 뒤 오토 웜비어의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2월말이 되어서였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카메라 앞에 나온 젊은이는 자신의 죄목으로 적시된 모든 사실을 인정한다는 기괴한 자백을 했다.
온 가족이 돈에 쪼들려 지냈는데, 자기가 다니던 오하이오주 감리교회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호텔에 걸린 그 선전물을 ‘전리품’으로 훔쳐 오면 1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그의 가족은 돈에 쪼들리지 않았고, 그는 유대교 신자이기 때문에 감리교회에 다닌다는 말도 거짓이다.
또한 자신이 저지른 도발의 배후에 중앙정보국(CIA)과 ‘Z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의 버지니아대 비밀 학생조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자백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면 사용하지 않은 서툰 표현이 가득해 그를 억류한 북한 사람들이 대신 적어준 글임을 짐작케 했다. 오토 웜비어는 극도로 겁먹은 표정이었고, ‘생애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하며 허리를 깊이 숙여 어색한 사과 인사를 했다.
김정은이 오토 웜비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건 초기에는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당국의 보안원들은 별도의 허가 없이 최고지도자의 명예를 지키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체포된 이후 어느 시점에 새로운 인질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북한은 인종적으로 백인 미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인질을 구분했기 때문에 백인 미국인 인질은 중요한 보고 사안이 된다. 보고를 받고 김정은은 이 젊은 백인 미국인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그해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유용하게 써먹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괴한 모습으로 처음 카메라에 등장하고 나서 2주 뒤에 그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3월 16일, 그는 수갑을 찬 채 법정으로 들어서서 한 시간 가량 공개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 그는 15년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10주를 북한의 독감방에서 보낸 21살의 청년에게 상상할 수 없는 중형이 내려진 것이다.
재판 이튿날 북한정권은 새해 첫날인 1월 1일 오전 1시 57분이라고 찍힌 흐릿한 감시용 보안 카메라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키 큰 남자가 복도로 걸어들어가 벽에 걸린 선전물을 떼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영상은 그 남자가 떼어낸 선전물을 바닥에 내려놓는 장면에서 끊어졌다. 그 남자가 오토 웜비어라고 말할 단서는 일체 없었고, 영상과 관련된 모든 점이 의문투성이였다. 영상 속의 남자는 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는 기색 하나 없이 곧장 선전물이 붙은 벽을 향해 다가갔다. 선전물을 떼어내 바닥에 내려놓는 모습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만성 전력부족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그 시간에 그곳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건물 내 불필요한 곳에 그처럼 전기를 켜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불이 꼭 켜져 있어야 할 곳에 켜놓지 않은 곳이 많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내가 들은 새로운 정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토 웜비어가 그 선전 포스터에다 오줌을 누었다는 것이었다. 다수의 인사가 북한 내 소스를 인용해 그랬다는 말을 해주었다. 오줌을 누며 북한정권에 대한 욕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북한이 상투적으로 하는 수법인 과장이나 조작한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신뢰할 만한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들었고, 나도 그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이 두 번째 영상을 내보낸 시점은 오토 웜비어가 이미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부상을 당한 뒤였다. 재판에서 형이 선고된 바로 그날 밤에 그의 신변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 북한 측은 그날 저녁 그가 시금치와 돼지고기를 먹고 나서 식중독 증세를 나타냈고, 그래서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약물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일부 소식통들은 재판이 열린 그날 저녁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이 젊은이가 감방 안에서 자살을 기도했고,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늦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나는 이 설명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줌을 눈 게 사실이라면 이튿날 술을 깨고 나서 새벽에 자기가 한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의식불명의 상태에 처한 게 분명했다. 케네스 배가 치료 받았던 평양의 친선병원으로 옮겨졌다. 북한정권이 아무리 망나니짓과 도발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미국인의 피를 직접 손에 묻히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앞서도 케네스 배처럼 나이가 좀 더 들었거나 몸이 아픈 억류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한 다음 풀어주었다. 죽은 억류자는 협상카드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보안기관은 놀라서 자기들이 한 짓을 숨기기 바빴다. 오토 웜비어가 처한 상황을 상부에 즉시 보고해서 고국으로 돌려보내 치료를 받도록 하는 대신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곧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할 것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나는 재판 판결이 있고 6주 뒤에 양각도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오토 웜비어와 인터뷰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전 억류자들도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공개했기 때문에 그와의 인터뷰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선전 포스터를 훔치기 위해 갔다는 그 층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두 가지 요청 모두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흘렀지만 그와 관련해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북한 외무성 관리들은 스웨덴 외교관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스웨덴 대사관은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 정부를 대신해 북한 당국과 접촉했다.
중개인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오토 웜비어를 비롯해 선교와 관련된 다른 세 명의 한국계 미국인 억류자를 모두 ‘전쟁포로’라고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그 중개인은 또한 이 사건 처리과정에서 북한 외무성은 완전히 배제돼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며, 북한이 인질들을 선거 후 미국과 협상을 개시하는 데 필요한 담보물로 잡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오바마 대통령을 제쳐놓고 차기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뒤 인질들을 풀어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 이란 대학생들이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무시하고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인질들을 풀어 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선거일이 지나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도 인질들의 거취는 오리무중이었다. 웜비어가 억류되고 16개월이 지난 2017년 5월까지도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
5월에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는 전직 미국 관리들과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향했다. 특별한 의제 없이 북한 측은 미국의 정책 방향에 대해 궁금한 사항들을 묻고, 미국 측은 북한에 좀 더 책임 있는 행동을 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의 통상적인 회담이었다.
미국 국무부의 북한 담당 특별대표인 조셉 윤은 미국인 인질 4명의 석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 오슬로로 향했다. 피요르드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가진 회담에서 조셉 윤은 최선희에게 선의의 조치로 4명의 인질과 영사 접촉을 갖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해 긍정적인 답을 얻어냈다. 네 명 모두 여러 달 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최선희는 귀국해서 보안 당국에 오슬로에서의 합의사항을 전달했다. 최선희는 그제서야 대단히 큰 문제가 발생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안 당국은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있으며, 억류된 17개월 중 15개월을 그런 상태로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최선희는 즉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엔에 나가 있는 북한 외교관들에게 즉각 그 사실을 통보했고, 이들은 그 소식을 조셉 윤에게 전달했다. 이 청년을 즉각 데려와 치료받게 하기 위한 급박한 노력이 시작됐다. 조셉 윤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인 의사 한 명을 대동하고 북한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북한은 언론의 관심을 따돌리기 위한 미끼가 필요했다. 그들도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될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당시 두 나라 관계는 최악의 상태였다. 거친 설전이 계속되고 있었고, 긴장 상태가 실제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심각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데니스 로드먼이 끼어든 것이었다. NBA 챔피언 출신인 로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에 진행하던 '셀레브리티 어프렌티스'(Celebrity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TV쇼에 두 번 출연한 바 있다. 그는 술에 취해 흥청망청한 두 번째 북한 방문 이후 이상하게 북미 문제에 끼어들게 되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셀레브리티 어프렌티스 쇼를 진행하던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을 모두 아는 사람은 데니스 로드먼 한 명뿐이었다.
로드먼의 등장은 그 자체로 기괴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후원사인 합법적 마리화나 산업의 암호화폐 ‘포트코인’(PotCoin)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평양에 도착했다. 그가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다는 추측까지 있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까지 한 권 들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드먼은 미국 외교팀이 웜비어를 송환하기 위해 북한으로 간 같은 시간에 방북 초청을 받았다. 로드먼은 그해 여름 내내 북한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북한 측에서 계속 미루다가 미국 외교팀의 비밀 북한행과 정확히 타이밍이 맞추어졌다. 북한 측은 로드먼에게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였다.
로드먼이 사이드 쇼를 펼치는 가운데 조셉 윤과 미국 의사는 여러 시간의 협상 끝에 마침내 웜비어가 누워 있는 병원으로 갔다. 코로 듀브가 연결되어 있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실랑이 끝에 감형을 허락한다는 의식이 병상 옆에서 진행된 다음, 의사는 환자를 집으로 데려갈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했다. 북한 측은 오토 웜비어를 내주기 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요구사항을 조셉 윤에게 내밀었다. 웜비어의 치료비 청구서였다. 200만 달러였다.
김정은 정권은 아주 사소한 위반을 저지른 혐의로 건강한 청년을 억류해 뇌사상태에 빠트렸다. 제때 제대로 된 치료도 해주지 않은 채 1년 넘게 억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뻔뻔하게 ‘치료비’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조셉 윤은 호텔에서 당시 국무장관이던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에게 전화를 걸었고, 틸러슨은 트럼프 대통령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조셉 윤에게 200만 달러 지불 약정서에 서명해 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단 이 젊은이의 국내 송환이 먼저라는 단서가 붙었다.
오토 웜비어는 그로부터 6일 뒤 신시내티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뛰놀며 자란 숲이 우거진 교외에 있는 병원이었다. 200만 달러 치료비 청구서는 재무부로 보내졌다. 청구서는 지불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곳에 보관돼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프롤로그

수수께끼 인물의 퍼즐 맞추기



PART 01 후계자 수업

1장 어린 독재자

2장 스시 요리사 친구

3장 스위스 유학

4장 독재자 수업



PART 02 권력 다지기

5장 3대 세습의 주인공

6장 통제의 끈을 늦추다

7장 공포정치

8장 고모부 장성택

9장 평해튼 사람들

10장 평양의 밀레니얼 세대와 리설주

11장 친구 데니스 로드먼



PART 03 자신감

12장 오토 웜비어 죽음의 진실

13장 이복형 김정남

14장 핵 보검을 가지다

15장 비밀병기 김여정

16장 미국과의 담판



에필로그

어디로 갈 것인가

감사인사

주석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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