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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년 가까이 줄곧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인류가
불과 300여 년 전부터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서평
이한구(李漢龜)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영미철학)

인간해방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독창적 설명

인간해방이란 여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그것은 정치, 경제, 심리, 역사 등 여러 차원에서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적 차원에서의 인간해방 이론이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 할 수 있겠다. 경제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증자료를 토대로 하지 않고는 논의를 전혀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해방의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경제현상에 대한 단순한 설명을 넘어서서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인간해방의 원동력을 논의하는 경제철학적인 저서이기도 하다. 일견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나 칼 맑스의 『자본론』에 상응하는 저서로 느껴진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호모사피엔스 약 30만 년의 역사에서 처음 약 29만 년 동안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500달러 내외의 평균 소득을 갖고 정체된 삶을 살다가, 그로부터 근세 전야에 이르는 약 1만 년 동안에는 500달러 내외에서 1,000달러 내외로 소득을 ‘조금’ 밖에 늘려오지 못하던 인류가, 300년 정도 밖에 안 되는 최근세에 이르러서 1,000달러 내외의 소득을 1만 8,000달러로 ‘아주 크게’ 늘린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ⅶ쪽) 이런 질문은 지금까지의 어떤 경제학자가 던진 질문보다도 더욱 포괄적인 질문으로 생각된다. 이 질문은 다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진다.

“1) 수렵채취시대 내내 경제가 정체되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2) 수렵채취시대 공유경제는 인류의 ‘이상향’ 이었는가? 3) 농경목축시대에 들어와서 세계 도처에서 다수의 ‘찬란한’ 문명을 건설한 공동체가 출현하였지만,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소수의 치자治者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피치자被治者가 가난하고 억제된 삶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4) 근대화와 인간해방은 상승작용을 하면서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5) 인간해방의 요체는 무엇이며 그것이 지속적이며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6) 인류는 지난 300여 년 동안 이루어온 경이로운 발전을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을까?”(ⅶ쪽)

이런 질문들에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며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여러 장들도 이런 질문들과 대체로 상응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가설은 ‘인간해방이 비약적 경제를 발전시킨 근본적인 힘’ 이라는 것이다. 인간해방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가 재산을 소유하며 경제활동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사유(私有)와 자유(自由)이다. 그러므로 인간해방은 누구에게도 사유재산이 없었던 공유상태나, 소수가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여 절대다수의 평민들은 노예로 살던 상태와는 현격하게 구별된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되어, 노예와 주인 모두가 해방을 맞이한 역사적 사건을 인간해방이라 부른다. “현재 지구상에는 70세 내외의 평균수명을 지니고 1만 8,000달러 정도의 소득을 가진 약 8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인간해방이 촉발한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지금도 지구상에는 1,000달러의 연간소득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다가 40세가 되면 일생을 마감하는 10억 명 내외의 사람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해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이래 인간의 가치가 적어도 250배 그리고 세계 경제의 규모가 150배 증대된 것입니다.”(ⅵ쪽) 저자는 특히 〈5장 노예해방=인간해방〉과 〈10장 인간해방과 인류의 진보〉에서 인간해방의 문제를 자세하게 천착한다. 이런 과정에서 이 책의 주장과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을 인류역사를 양분하는 기준으로 활용한다. 말하자면, 인류의 역사를 산업혁명 이전의 역사와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로 나눈다. 그렇지만 저자는 산업혁명 자체만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이면에는 더 근원적으로 사유와 자유로 규정되는 인간해방이 존재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한다.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한 가운데 오직 소유 형태만 공동 소유에서 사적 소유로 바꿀 때, 1인당 소득이 680달러에서 3,825달러로 다섯 배 이상 증가한다.”(140쪽) 그리고 자본재를 도입하면 토지와 노동력만으로 생산하던 것보다 훨씬 큰 10,800달러의 소득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근거에서 저자는 인간해방과 경제발전은 상생 작용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인간해방이 경제발전을 촉발시키며, 다시 경제발전이 인간해방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해방이 경제발전을 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해방이 이루어져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일어나기 때문이다.(160쪽) 물론 노예경제에서도 주민들은 투자에 나설 수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본의 축적이 필수적이지만, 공유경제나 노예경제에서는 인적 자본의 축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저자가 설정한 다음과 같은 종속 가설도 타당해 보인다. 즉 인간해방의 역사가 길수록, 그리고 그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발전의 정도가 높다. 반면, 인간해방의 역사가 짧을수록, 그리고 그 정도가 낮을수록 경제발전의 정도가 낮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저자는 지난 300년간의 경제발전의 역사에 나름대로의 경제모형을 활용해서, 기본 가설, 즉 인간해방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임을 증명해 보여 주었고, 인간해방의 역사가 짧은 나라들과 긴 나라들을 비교하면서 종속 가설의 타당성도 입증해 보여 주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사유재산 지상주의나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기심과 공동체의 조화를 인류가 풀어야 할 커다란 과제로서 제시하고 있다.

얼마 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가 『21세기 자본』을 출간하여 세계적 주목을 받았을 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은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1세기 자본』도 지난 300년간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책이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주장하면서 ‘세습자본주의’의 병폐를 막기 위해서는 부에 대한 누진적 글로벌 과세와 자본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제시했다.

피게티의 『21세기 자본』이 자본주의의 다소 어두운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지순 교수의 『인간해방의 경제학』은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저서로 이해된다. 두 저서가 기본적으로는 다른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상호보완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자본』과 『인간해방의 경제학』을 꼭 함께 읽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길잡이

제 1 장 수렵채취시대의 경제생활: 공유경제
1.1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1.2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30만 년 동안 살던 모습
원시 공동체
원시 공동체의 경제활동
공유경제의 생산함수
원시 공동체 구성원들의 현명한 선택
최적 선택의 문제와 그 풀이
1.3 수렵채취시대의 경제상황
수렵채취시대의 정상상태: 수식을 통한 이해
수렵채취시대의 정상상태: 수치를 통한 이해
수렵채취시대의 경제 변화

제 2 장 상상의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사적소유의 세상
2.1 사적소유와 경제활동의 자유
2.2 사유(자유)경제의 정상상태 도출
모형의 설정
모형의 해 도출
2.3 상상의 세상, 사유경제의 모습
사유경제의 정상상태: 수식을 통한 이해
사유경제의 정상상태: 수치를 통한 이해
2.4 공유경제와 사유경제의 정상상태 비교
수식으로 본 정상상태의 비교
구체적인 수치 예로 본 정상상태의 비교
2.5 경제 여건의 변화와 정상상태의 이동
2.6 인류의 불행했던 역사

제 3 장 농경목축시대의 경제생활: 노예경제
3.1 공동체 규모의 확대와 정치·경제의 구조 변화
3.2 독재정치와 노예경제의 일상화
독재정치의 성립
노예경제의 성립
3.3 노예경제의 정상상태
노예경제의 특징
노예경제의 정상상태 결정
3.4 노예경제의 모습
노예경제의 정상상태: 수식을 활용한 이해
노예경제 정상상태의 특징: 수치 예를 활용한 이해
3.5 노예경제의 다양한 모습
노예경제와 문명 건설
노예경제의 전 지구적 확산
노예경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착취(exploitation)

제 4 장 도구와 기계의 활용과 경제생활
4.1 물적자본(자본재)이 중요해진 이유
4.2 자본재가 추가된 사유(자유)경제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자유인들인 개개인의 경제상황
자본재가 추가된 사유경제에서의 의사 결정
자본재가 추가된 사유경제의 정상상태
4.3 자본재가 추가된 노예경제
주인의 의사결정
노예경제의 정상상태: 수식
노예경제의 정상상태: 수치 예
도구와 기계가 있어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인 노예의 처지
도구와 기계의 도입으로 몰라보게 개선되는 주인의 처지
노예경제의 경제규모 및 국력
4.4 자본재가 추가된 사유경제와 노예경제 비교
자본재 도입 후 대폭 향상된 주인의 경제적 처지
노예경제로의 이행은 역사의 필연이었는가?
노예제도 붕괴의 씨앗

제 5 장 노예해방＝인간해방
5.1 당위로서의 노예해방과 실증적 명제로서의 노예해방
사유경제와 노예경제의 비교
사유경제의 우월성: 당위
노예경제로 나아간 까닭들
정치 노하우의 발달과 인간해방
5.2 노예해방의 경제논리
노예해방의 역사
노예해방의 다양한 양상
5.3 노예해방의 경제논리: 수치 예를 통한 이해
5.4 노예해방(인간해방)은 경제발전의 선결 조건
5.5 현대인은 진정한 자유인인가?

제 6 장 자본축적과 경제발전
6.1 신고전학파 성장모형: 이론
모형
운동의 법칙
정상상태
정상상태와 경제성장
6.2 신고전학파 성장모형의 함의
정상상태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이행성장
정상상태 이해: 수치 예
정상상태의 이동과 경제성장
신고전학파 성장모형이 주는 메시지
정상상태 자체의 변화에 대해 침묵하는 신고전학파 성장모형
6.3 정상상태의 상향 이동
물적자본 투자율의 제고
인적자본 투자 확대
정상상태 상향 이동 가설
무엇이 정상상태의 상향 이동을 촉발하는가
정부가 주도한다?
발전 친화적인 제도와 장치와 정책
경제개혁과 정상상태의 상향 이동
6.4 경제개혁을 통해 정상상태를 상향 이동시킨 사례들
영국
미국
일본
대한민국
중국, 베트남, 인도
6.5 정상상태의 하향 이동
정상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

제 7 장 전통 경제에서 근대 경제로의 이행
7.1 미래를 위한 투자와 산업혁명
7.2 전통적 생산방식과 근대적 생산방식
전통적 생산방식
근대적 생산방식
7.3 근대적 생산방식과 지속적 경제발전
근대적 생산방식을 활용하는 경제의 특징
1인당 소비의 결정
‘적게 낳아 잘 기르는 선택’과 경제발전
지속적 성장의 속도 결정
7.4 전통적 생산방식과 근대적 생산방식의 혼용
전통적 생산방식과 근대적 생산방식에 대한 노동력 배분의 문제
노동력의 합리적인 배분 결과로 정해지는 생산함수
7.5 전통적 생산방식으로부터 근대적 생산방식으로의 이행
이행의 메커니즘
기계의 활용과 산업혁명
인적자본을 엔진으로 하는 근대적 생산방식
7.6 무엇이 근대적 생산방식으로의 이행을 촉발하는가
인간해방과 근대 경제
인간해방과 투자
인간해방과 인적자본
7.7 인간해방과 기술발전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진보
인적자본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의 정상상태
인적자본과 기술이 다른 점

제 8 장 후발주자의 경제발전: 경험으로부터의 배움
8.1 후발주자가 경제발전에 나선 모습들
서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
상대적으로 소외된 동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지중해 연안 남부 유럽
영국인이 주축이 되어 건설한 신대륙 국가들
일본
조선의 경제적 정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여타 아시아 국가들
개혁과 개방을 통한 후발주자의 경제발전
8.2 경험으로부터의 배움
경험, 학습 그리고 능률향상
사례: 삼성전자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인적자본 축적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인적자본 축적이 갖는 외부경제효과
8.3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의 경제원리
경험과 생산성
경험의 축적
초기 경험
경험 축적의 경제원리
초기 경험의 결정
사례: 수소자동차
새로운 재화 생산개시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8.4 경험으로부터 배움과 경제성장
사례: 필리핀과 대한민국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이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메커니즘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8.5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근대적 생산방식
경험 축적과 인적자본 축적
경험으로부터의 배움과 경제구조의 재조정

제 9 장 후발주자의 경제발전: 기술 이전
9.1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9.2 후발주자의 기술추격 전략
모방(imitation)
모형을 활용한 이해
후발주자의 기술발전 전략: 개량(improvement)
사례: 현대자동차의 엔진 기술
선발주자가 후발주자에게 기술을 이전하는 경우
9.3 후발주자의 신기술 개발 전략
신기술 개발과 기술역전
9.4 후발주자의 기술발전: 성공의 조건들
개방과 기술발전
인적자본과 기술개발
고급 두뇌와 기술개발
사적소유, 경제적 자유 그리고 기술발전
두뇌 유출과 두뇌 유입

제10장 인간해방과 인류의 진보
10.1 인류사의 대전환: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세계
10.2 산업혁명을 촉발한 인간해방
10.3 인간해방을 촉진하는 경제발전
10.4 인간해방에 동참한 나라들의 풍요로운 삶
10.5 인간해방에 동참하지 않은 나라들의 비참한 삶
10.6 인간해방의 물결을 거스르려는 움직임들
10.7 사유와 자유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10.8 자원과 환경의 문제
10.9 기술낙관론은 답이 아니다
10.10 인간과 자연과 기계와 신
10.11 희망은 없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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