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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행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산과 역사가 만나는)
저자 : 심산
출판사 : 바다출판사
출판년 : 2019
정가 : 16800, ISBN : 9791189932206

책소개

어느 날 이름도 없는 계곡과 그곳을 무심히 빠져나가는 맑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바위에 깊게 새겨진 저 글씨들이 궁금해졌다.

이 절집의 편액은 누가 썼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산을 노래한 한시들을 음미하고 싶어 옥편을 뒤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당집과 당나무를 찾고, 허물어진 산신제단 앞에서 예를 갖추고,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마애불을 우러러보며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인문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_서문에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 / 역자소개

심산 저자 : 심산
산에 즐겨 오르는 작가. 연세대 불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먹고 살았다. 현재 심산스쿨 대표이며 한국산서회 부회장, 코오롱등산학교 및 한국등산학교 강사로 활동 중이다. 2005년에 한국초모랑마휴먼원정대에 참가하였고, 2015년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비트〉 〈태양은 없다〉 등의 시나리오와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 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히말라야의 눈물》 등의 산악문학을 썼다. 그밖에 지은 책으로는 시집 《식민지 밤노래》,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 《사흘낮 사흘밤》, 에세이 《심산의 와인 예찬》 《첫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난 제주올레 트레킹》, 작법서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시나리오 가이드》《시나리오 마스터》 《대부: 시나리오와 제작노트》 등이 있다.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은 우리 산의 능선과 골짜기마다 남겨진 다양한 문화유산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산길, 배낭 벗고 쉬어가던 계곡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산행을 더욱 풍성하고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의 다른 책

    마운틴 오디세이 (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2018.03
    히말라야의 눈물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그 가슴 뜨거운 감동 실화)
    2015.12
    마운틴 오디세이 (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2014.11
    첫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난 제주올레 트레킹
    2011.06

목차정보

서문 등산과 인문학을 함께 즐기다5
시작하며 산에 오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14

제1부. 서울경기 인문산행

진경산수화 속의 인왕산을 걷다 _인왕산과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24
민초들은 인왕산에 올라 빈다 _인왕산의 무속과 민불37
봉원사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인연들 _안산의 봉원사와 봉수대51
북한산성 안에서 역사를 논하다 _숙종, 북한산성을 오르다62
한강 너머 산들이 아득하여라 _《경교명승첩》의 현장을 찾아서74
관악산 계곡에는 볼 것도 많아라 _자하동천과 바위글씨를 찾아서84
오직 은선동만이 기이함을 떨쳤다 _수락산의 폭포들을 찾아서95
비보풍수의 현장을 가다 _호암산의 풍수와 비보107
만장봉은 높고 연단굴은 깊네 _도봉산의 바위글씨를 찾아서118
우리 놀던 그곳이 대군의 별업이었네 _인평대군의 송계별업을 찾아서133
물은 맑고 돌은 희어 선경이 완연하니 _세검정과 백석동천을 찾아서147
비 오는 날에는 바위글씨를 보러 가자 _귀록의 도봉산행과 겸재의 묘소를 찾아서162
안양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다 _삼성산의 안양사지와 삼막사를 찾아서179
미수의 발자취와 추사의 글씨 _노고산 삼하리와 독재동의 바위글씨를 찾아서194
동봉의 달이 서계의 물을 비추네 _수락산 서계 고택과 매월정을 찾아서209
만산홍엽의 비봉을 넘다 _북한산 승가사-비봉-진관사를 찾아서226
과천노인 추사가 만년을 의탁한 산자락 _청계산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을 찾아서241
청평산 품 안에 펼쳐진 고려의 선원 _춘천 청평사와 이자현의 식암을 찾아서254
이 바위산 아래에 새 왕조를 펼치다 _백악과 삼청동의 바위글씨를 찾아서270

제2부. 유북한산기

보현봉에 올라 서울을 넘보다 _2월, 전심사-사자능선-보현봉-일선사-평창동매표소288
천이백 년 된 빗돌엔 이끼만 잔뜩 끼어 _3월, 수리봉-향로봉-비봉-승가사-구기동305
그 안에 나라가 있었네 _4월, 북한산성 입구-대서문-중성문-산영루-중흥사319
백운대의 오른쪽 날개를 타다 _5월, 시구문-원효봉-영취봉-백운대-우이동330
매가 날던 능선을 따라 문수봉을 넘어 _6월, 진관사 입구-매봉능선-사모바위-문수봉-문수사341
고려왕조의 비애 서린 천혜의 피난처 _7월, 불광사-향림담-향림사 터-비봉능선-진관사 계곡352
나라 터를 굽어보던 아스라한 암릉길 _8월, 도선사 광장-위문-만경대리지-용암봉-용암문364
사색에 잠기는 가을날의 산책로 _9월, 내원사-칼바위능선-보국문-대성문-형제봉능선377
한국 암벽등반의 메카를 가다 _10월, 인수산장-설교벽-인수북릉-인수봉-우이동390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의 칼날능선 _11월, 사기막골-숨은벽리지-인수봉과 백운대 사이-백운산장405
뒤바뀐 것, 사라진 것, 변치 않는 것 _12월, 백화사-가사당암문-의상능선-부왕동암문-삼천사415
폭설을 헤치며 노적봉에 오르다 _1월, 진달래능선-대동문-동장대-노적봉-산성 계곡426

마치며 인문산행의 즐거움과 과제439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동봉 김시습이 시를 읊조리던 계곡
인평대군의 별서에 새겨진 바위글씨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의 현장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을 일구던 능선

산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을
문학, 사학, 철학의 관점에서 배우고 즐기다

인문산행,
능선과 골짜기에 서린 역사와 문화를 말하다

인문산행은 산에 오르며 그 속에 숨겨진 역사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발굴하고, 규명하고, 해석하고, 향유하는 행위다. 한국의 산에는 산등성이와 골짜기마다 역사가 서려 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사랑하여 그에 대한 글과 그림, 시를 무수히 남겼다.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팀은 꾸준히 산을 답사하며 숨겨진 역사와 문화유산, 남겨진 지명의 유래, 진경산수화에 그려진 산길 등을 찾고 고증하여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산악문화유산을 조명하고 연구해왔다. 이 책은 그 인문산행의 기록을 담은 것이다.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숨어 있는 산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무학대사는 북한산을 훑으며 새 도읍지를 찾았고, 세조는 보현봉에 올라 서울을 넘보며 왕위 찬탈의 기회를 노렸다. 김시습은 수락산에 10여 년을 머무르며 동봉을 호로 삼고 시를 읊었으며, 겸재 정선은 우리의 산을 화폭에 담았고, 추사 김정희는 산을 오르며 금석학을 연구하고 바위글씨를 남겼다. 무심코 오른 산등성이와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즐긴 계곡에는 이처럼 잊히거나 모르고 지나치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인문학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단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과 함께 산을 오르다 보면 몇 번이고 올랐던 북한산, 수락산, 도봉산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을 오르고 즐기는 산행을 넘어, 새로운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철저한 고증과 끈질긴 답사로
역사의 현장을 찾아내다

저자와 한국사서회 인문산행팀은 철저한 답사와 고증으로 인문산행의 품격을 높였다. 답사지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논문과 단행본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훑어보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몇 번이고 현장을 답사하며 고증을 해나갔다. 이런 작업으로 그동안 묻혀 있었던 여러 장소의 인문학적 위상을 높이고 많은 문화유산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한장석의 〈수락산 유람기〉에 등장하는 ‘문암폭포’가 어디인지 찾아내고 폭포 뒤편의 계곡 이름이 ‘은선동’임을 알아냈으며, 겸재 정선의 손자 손암 정황의 진경산수화 〈양주송추〉를 재해석하여 겸재 정선의 묘소 터를 비정했고, 수락산에서 우암 송시열의 바위글씨를 찾아내기도 했다. 구천은폭 인근에 인평대군의 별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물증인 ‘송계별업’ 바위글씨를 찾아낸 것도 인문산행팀의 공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등산과 인문학이 결합하는 연결고리가 학문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새롭게 발견해낸 역사적 사실과 유산은 그들의 고증과 답사 그리고 해석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방증한다. 이런 노력이 겹겹이 쌓여 인문산행을 더 깊이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인문산행은 그 이름처럼 산의 높낮이나 유명세와 관계없이 오로지 인문학의 관점에서 산을 바라본다. 궁산은 해발 74미터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군사적 요충지이며 겸재 정선이 현령으로 지내며 다양한 그림을 남긴 곳이다. 산 근처의 허가바위는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이 태어났고, 허준이 《동의보감》을 저술한 곳이라고도 한다. 호암산은 비보풍수(풍수적 결함을 인위적으로 보완하는 것)를 살펴보기 좋은 곳이다. 호암산은 한양도성을 넘보며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꿈에 호랑이가 등장하여 경복궁을 때려 부수었다고도 한다. 이 무서운 기운을 막기 위해 선조들은 산 아래의 절을 중턱으로 끌어올려 비보 사찰을 지었다. 호암산 호압사에 얽힌 이야기다. 산행에 인문학의 개념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산은 더욱 높고 깊어져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을 오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더 즐겁게, 더 깊이 있게 산을 오르다

‘1부 서울경기 인문산행’은 ‘인왕산과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 ‘수락산의 폭포들을 찾아서’ ‘청계산의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을 찾아서’ 등 매번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산행을 안내한다. 인왕산에서 나고 자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의 장소를 답사하고 비정하여 인왕산을 오르며 필운대와 세심대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수락산을 오를 때는 김시습과 그를 흠모하여 수락산에 사당을 지은 박세당의 한시를 감상한다. 북한산을 걸을 때는 선조들이 그 안에 만들어놓았던 하나의 나라인 북한산성의 모습과 의미를 되새기고, 춘천의 청평산에 올라서는 고려시대의 정원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한다.
‘2부 유북한산기’에서는 선조들이 남긴 유산기의 형식으로 절기별로 북한산의 아름다운 코스를 소개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산속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세조가 올랐던 보현봉을 오르는 기분, 비봉 위 비석의 가치를 밝혀낸 추사 김정희의 집념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궁이나 박물관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는 책 속에만 있지 않다. 인문산행은 오래된 경구인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 산을 오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말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은 독서의 성과를 산 위의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 산을 오르며 역사를 배우고, 산을 오르며 지난 시간을 사색하는 것, 인문산행은 몸의 공부이자 마음의 운동이다.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과 함께라면 평범했던 산이 새롭게 다가오고, 산행은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한가운데 있는 편액이 ‘무량수각無量壽閣’이고, 왼쪽에 걸린 편액이 ‘산호벽수珊瑚碧樹’이며, 오른쪽에 걸린 편액이 ‘청련시경靑蓮詩境’이다. ‘무량수각’은 옹방강翁方綱(청나라의 서예가이자 학자)의 글씨고, ‘산호벽수’와 ‘청련시경’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글씨다. 추사와 석파石坡(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추사는 석파의 스승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외가 쪽으로 따지면 5촌 친척 형이 된다. 추사와 옹방강의 이 멋진 편액들이 아소정에 걸려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인연 때문이리라.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서울 서대문구 한복판의 산중에서 이런 호사스러운 안복을 누린다. 봉원사에는 석파와 관련된 유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봉원사 범종이다. 이 종은 본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던 가야사의 것인데, 풍수지리를 신봉했던 석파가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그곳에 쓰겠다며 절을 폐쇄하는 바람에 쫓겨나 이리로 온 것이다. 석파가 쫓아낸 범종과 석파가 말년을 보낸 아소정 건물이 이제 이곳 봉원사에 나란히 자리 잡은 것을 보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소정과 함께 딸려온 정원장식용 석물들이 봉원사 뒷마당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것을 보니 또한 만감이 교차한다.
---「봉원사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인연들」중에서

칠성대에서 산을 횡단하여 영락대로 향한다. 향로봉과 주봉을 잇는 능선상에 위치한 전망 좋고 넓은 바위다. 이 능선의 너머는 의정부시에 속한다. 일행들은 시계를 넘어 은선동으로 내려선다. 숨은 신선(隱仙)의 계곡(洞)이라, 참 멋진 이름이다. 이 계곡과 그 끝에 걸쳐져 있는 멋진 폭포에 참으로 오랜만에 제 이름을 찾아주었다는 것이 이번 인문산행 최대의 성과다. 바로 은선동과 문암폭포다. 옛 유산기들을 찾아보면 수락산의 3대 폭포로 꼽는 것이은선, 옥류, 금류이다. 나는 처음에 은류의 옛 이름이 은선인 것으로 오해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탐구와 집요한 답사 끝에 은선이란 은선동의 문암폭포를 뜻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 개의 폭포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문암폭포인데, 삼산재 김이안(三山齋 金履安)의 〈기유(記遊)〉와 〈문암유기(門巖遊記)〉 그리고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 등의 〈문암폭포연구(門巖瀑布聯句)〉(이상 1746년), 영재 유득공(?齋 柳得恭)의 〈은선동기(隱仙洞記)〉(1775), 미산 한 장석(眉山 韓章錫)의 〈수락산 유람기(水落山流覽記)〉(1868) 등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오직 은선동만이 기이함을 떨쳤다」중에서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인평대군에게도 그러나 짧은 봄날과 숨 쉴 틈은 있었다. 25세가 되던 해인 1646년, 삼각산 조계동에 아름다운 별업別業을 짓게 되니 그곳이 곧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송계별업이다. 그가 남긴 〈제조계보허각암벽상題槽溪步?閣巖壁上〉에는 저간의 사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략) 송계별업은 단일건물이 아니다. 그는 이곳 조계동 일대를 온통 자신의 별장과 정원으로 만들었다. 그가 세운 건축물은 두 개로 보인다. 하나는 영휴당永休堂이다. 그 터가 바로 지금 이곳 우리가 서 있는 배드민턴장이다. 다른 하나는 보허각步虛閣이다. 우리는 그 터를 구천은폭 바로 아래로 비정한다. 영휴당(터)에서 보허각(터)은 빤히 올려다보인다.
---「우리 놀던 그곳이 대군의 별업이었네」중에서

송추松楸의 ‘송松’은 소나무이고 ‘추楸’는 개암나무 혹은 가래나무인데, 본래 묘지 부근에는 이 두 종류의 나무를 심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양주송추〉란 ‘양주에 있는 선영의 묘지’를 그린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우리는 전율했다. 이 그림은 바로 손자인 손암이 조부인 겸재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4개의 묘소와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행의 모습도 보인다. 게다가 이 그림은 진경산수화이니 이제 겸재의 묘소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난해 한국산서회의 월례회의에서 조장빈이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이후 우리는 뻔질나게 도봉산 일대를 뒤졌다. 겸재의 사후 무려 250여 년이 지난 다음, 그의 손자인 손암이 그린 〈양주송추〉의 진경산수화를 마치 보물지도처럼 손에 들고서. 그의 그림이 워낙 사실적이어서 묘소의 위치를 비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자부심에 가득 차서, 참가자들에게 겸재가 마지막으로 누운 곳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비 오는 날에는 바위글씨를 보러 가자」중에서

세종 연간의 북한산 일대에서는 자못 드라마틱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잉태된다.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꿈꾸며 보현봉을 오르내리던 바로 그즈음, 비봉 너머 골짜기에 위치한 진관사에서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등의 젊은 집현전학사들이 사가독서에 열중하고 있었고, 저 밑의 왕궁에서는 귀여운 신동 하나가 세종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로 생후 8개월부터 글을 깨치고 세 살 때부터 한시를 읊었다는 모차르트급 천재 시인 김시습이다. 《동경지東京誌》에 따르면 그가 다섯 살 때 세종이 운韻을 불러주자 단박에 지어냈다는 시가 저 유명한 〈삼각산〉이다. (중략) 그러나 그로부터 16년 후, 역사는 돌연 비극으로 치닫는다. 세종과 문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을 폐위시켜버린 다음 스스로 왕좌에 앉는다. 이때 김시습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곳 역시 북한산(아마도 중흥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이다. 그는 3일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통곡하더니 이내 발광하여 지니고 있던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그 길로 머리를 깎고 미친 걸승乞僧을 가장하여 이 나라 산천을 중음신처럼 떠돌며 슬픔에 겨운 한시들을 끝없이 토해낸다. 사육신으로 죽어간 집현전 학사들의 시체를 저 홀로 수습하여 노량진의 언덕 위에 묻어준 사람도 역시 김시습이다. ---「보현봉에 올라 서울을 넘보다」중에서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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