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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초록 (정수월 시집)
열세 번째 초록 (정수월 시집)
저자 : 정미자
출판사 : 실천
출판년 : 2021
ISBN : 9791197648915

책소개

정수월 시인은 몽상의 세계에서 길 위로 사유를 펼치기도 한다. 표제시 「열세 번째 초록」은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열세 번째 초록을 맞이한 것이다. 초록의 옹이인 봄은 평생을 건 꿈의 그리움이다. 봄은 초록의 원점이고 그리움이고 염원이고 희망이다. 열세 번째 봄 초록은 닿지 않는 미래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희망, 그리움은 봄을 끌고 와도 또 봄은 봄을 데리고 간다. 봄이 올 때마다 봄은 또 가버리고 그때 또 봄을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것이 열세 번째 초록이다. 희망의 역설을 노래한 것이다. 「숲」은 산길에서 만난 고라니 얘기다. 이 시에는 화자와 이슬과 고라니가 정서적 등가물로 드러난다. 숲의 고라니는 슬픔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산길을 걷다가 고요하고 맑은 이슬이 화자의 발걸음에 놀라 떨어져 내릴 때 눈물이 된다. 화자의 슬픔이 투영된 것이다. 낯선 산길에서 만난 고라니, 역시 길을 헤매는 화자의 걸음처럼 눈망울에 슬픔이 맺혀 있다. 후다닥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달려가는 고라니가 빠져나간 숲에는 부드러운 잎들이 몸을 흔들고 있고 풀벌레도 놀라 소리마저 끊어져 버린 숲길을 화자는 혼자 걷는다. 그럼에도 숲길은 위안을 베풀어주듯 고라니 꼬리처럼 좁다란 초록이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길 위의 산책으로서의 생의 통찰은 슬픔과 희망의 역설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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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집해설]
현실과 몽상의 신화적 상상력과 길 위의 사색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정수월은 카페를 경영하는 시인이다. 진주 금산면 소재 카페 ‘좋은 인연’의 주인장이다. ‘좋은 인연’에서 박우담 시인을 좌장으로 문학 동인 ‘시우담’이 매주 모여 시 공부를 한다. 정수월 시인은 시우담 멤버이다.
프랑스어 ‘카페(caf?)’는 커피(coffee)를 말하는데 커피 파는 집이라는 영어 커피하우스로 뜻이 전의됐다. 커피하우스라는 말보다는 카페라는 말이 더욱 일반적이다. 영어 커피하우스를 밀어내고 프랑스 말 카페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도 프랑스 문화의 힘이다.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 프랑스에서 카페문화는 귀족의 살롱문화에서 보다 대중적인 문화공간으로 이행되면서 형성됐다. 프랑스에서 카페는 술, 음료, 식사, 공연 등을 가볍게 즐기며 미팅이 이뤄지는 문화적 공간이다. 프랑스 파리에는 1686년 개업한 ‘카페 프로코프’가 있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이자 현존하는 카페로 가장 유서 깊은 곳인바, 볼테르, 루소, 디드로 같은 계몽사상가, 위고, 발레리, 발자크 같은 작가들이 즐겨 찾은 문화와 예술의 공간이었다.
프랑스 파리 ‘카페 게르부아’도 마네의 집 근처에 있어서 마네를 따르는 예술가들이 모여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키며 졸라, 뒤랑티 같은 문인들과도 교류하는 문화예술 공간이었다. 이들은 지역 이름을 따 ‘바티뇰 그룹’이라 불리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파리를 떠나 아를르로 거주를 옮겼던 고흐는 임시로 인근의 ‘카페 드라가르’에 머물며 카페의 내부를 「밤의 카페」라는 그림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를 프랑스의 파리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진주에는 남강이 흐르고, 촉석루가 있다. 시우담의 본거지 카페 ‘좋은 인연’도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형기문학제기념사업회 회장인 박우담 시인은 카페 ‘좋은 인연’에서 시우담 멤버들과 이형기문학제를 기획하거나 행사 뒷풀이를 펼친다. 카페 ‘좋은 인연’에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문학과 인생을 논한다. 시우담 멤버들과 막역해서 나도 ‘좋은 인연’에서 함께 어울릴 때가 있다. 주인장 정수월 시인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삶과 예술의 거리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삶 따로 예술 따로가 아닌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그런 경지는 어떤 것일까. 신이면서 인간, 인간이면서 신인 예수 그리스도처럼 삶과 예술이 한 몸일 수는 없을까.
정수월 시인이 노래를 부를 때의 표정이나 눈빛은 몽환적이다. 그는 예술가의 눈을 지니고 있다. 나도 카페를 경영하는 싱어송 라이트 시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운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카페 ‘좋은 인연’의 오브제는 정수월의 시적 정서의 등가물이며, 카페 마당의 화초나 잔디도 역시 그렇다. 원래 시인은 일상적 자아로 시를 쓰지 않는다. 시인은 일상적 자아를 넘어서 내포적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것이다. 정수월 시인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일상적 자아와 시적 자아를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수월은 카페 ‘좋은 인연’에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현실과 몽상을 넘나든다.

시의 길이 꿈틀거린다

새는 날아가고 비가 내리고
은행잎 떨어지고
내가 걸어간다

은유의 날개로 내려앉은 길
자연스레 걸음과 걸음 사이
장단이 있다

길에 깔려 있는 몽상
긴장감이 점점 휘몰아치는 발걸음
어느 쪽에서도
길이 보인다 문장이 보인다

비가 길을 내고 있다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몽상의 길
-「길」에서

정수월의 길은 휘모리 장단이 펼쳐져 있다. 몽상가들이 좋아하는 은행 떨어지는 소리, 가을비 내리는 휘몰이 장단의 길이다. 은행잎이 몽상처럼 현실의 길을 노랗게 물들이는 장단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길이다. 일순간 몽상의 길은 시의 길로 꿈틀거린다. 새가 날아가고 비가 내리고 은행잎이 떨어지고 시인이 걸어간다. 시인이 걸어가는 길은 은유의 날개로 내려 앉은 노란 길이다. 시인의 걸음과 걸음은 빗방울의 장단의 환유다. 길에 깔려 있는 노란 몽상을 보라. 시적 긴장이 점점 휘몰아치는 시인의 발걸음, 어느 쪽에서도 시의 길이다. 비가 시의 길을 내고 있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몽상, 곧 시인의 길이다.
정수월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현실을 몽상하며 걷는 길의 시인이다. 몽상가 시인이다. 그가 걷는 길은 당연히 몽상의 길이다.

갈전천 물결이 흔들릴 때 잽싸게 헤엄치는 송사리떼 보인다

물속에 보름달이 빠져 있다 달이 움직일 때 거품이 일어난다 우두커니 나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도 나를 우두커니 보고 있다 우두자국처럼 박혀 있는 가로등이 빛을 보탠다

송사리가 부푼 달을 파먹고 있다
-「월아 마을」 전문

시인의 길은 물의 길이기도 하다. 그가 걷는 물의 길은 역시 몽상의 길이며 판타지다. 갈전천 물결이 흔들릴 때 잽싸게 헤엄치는 송사리떼를 본다. 그것은 현실 공간으로 물속에 보름달이 빠져 있다. 달이 움직일 때 거품이 일어나고 우두커니 몽상가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도 몽상가를 보고 있다. 우두자국처럼 박혀 있는 가로등도 빛을 보탠다. 물과 달과 가로등과 몽상가의 하모니가 월아 마을의 판타지가 아닌가. 월아 마을에는 송사리가 부푼 달을 파먹고 있다. 정수월에게 현실과 몽상은 교차한다. 현실의 상상력이 펼쳐지다가 어느 새 몽상의 판타지가 되고 신화가 되는 것이다. 송사리가 부푼 달을 파먹는 신화적 상상력이 현실을 토대로 펼쳐지는 것이다.

발톱이 갉아먹던 창백한 꿈
불빛 튕기며 사그라든 별은 지금 어디에 박혀 있는가?

커튼처럼 눈꺼풀이 꿈을 말아올린다
그 속에 있는 내 까만 눈동자
-「꿈길」에서

우리는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넝쿨은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자라고 있었다
-「넝쿨」에서

어미닭 따라
병아리 다섯 마리가 걸어간다
-「해금奚琴」에서

정수월의 시는 신화적 상상력을 매개로 한 현실과 몽상의 판타지가 주조를 띤다. 「넝쿨」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유리창에 수상한 손이 보이는데, 주먹을 움켜진 손은 누구의 손일까라고 자문한다. 그것은 물론 넝쿨이라는 현실이다. 넝쿨손을 목격하고는 문득 입이 바싹 마르고 머리카락이 선다. 집요하게 마지막 숨결마저 뽑아 올리며 화자에게로 오는 넝쿨손은 누구의 손인가. 번개가 번쩍이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자를 부르며 오르는 넝쿨손에서 화자는 한 얼굴을 떠올린다. 화자와 함께 너라고 호명되는 우리는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빛나는 너의 눈, 여름밤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너는 시였음이 밝혀진다. 너와 나는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은유의 숲에서 허우적거리는 화자의 머리를 누가 내리쳤다는 것은 시라는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번개가 번쩍이며 넝쿨손으로 찾아온 너는 바로 시이고, 시에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난다. 여기서 정수월 시인의 시인됨이 드러난다. 뿌리치려고 해도 유리창까지 담벼락을 타고 넝쿨손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시라는 아름다운 운명이다.
「꿈길」은 신화적 상상력이 더욱 강화돼 나타난다. 현실과 몽환이 혼재한다. 고양이 발톱으로 어둠을 할퀴는 저녁이 시간적 배경이다. 별들이 기웃거리는 통나무 모서리엔 달의 표면처럼 움푹 파인 파이가 놓여 있는 것이 을시년스럽다. 단내 맡은 고양이가 잽싸게 달려와 별을 건드려 보는 저녁이다.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로 보이는 사탕별은 어느새 고양이 꼬리에 감기고 꼬리를 흔들자 파이가 흔들리고, 별빛도 흔들리고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운석이 쪼그러드는 저녁이다. 고양이와 달과 별과 사탕과 파이와 운석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현실공간을 몽상의 세계로 이끈다. 이주의 밤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고양이는 새끼를 물고 거처를 옮겨 다니는 꿈길이다. 새끼를 입에 물고 거처를 옮기는 현실은 몽환의 꿈길인 신화적 장소로 이동한다. 이런 현실과 몽상의 경계가 지워진 신화적 상상력은 마지막 연에서는 커튼처럼 눈꺼풀이 꿈을 말아올리는 까만 눈동자로 귀결돼 현실을 직시한다.
「해금奚琴」은 은유의 신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해금 연주를 테마로 내세우면서도 철저하게 어미닭과 병아리의 은유로 드러난다. 해금 연주를 시각적으로 펼쳐낸 것이 어미닭을 따라 병아리 다섯 마리가 걸어가는 형상이다. 해금과 어미닭과 병아리라는 이질적 간극을 신화적 상상력이 메꿔낸다. 해금 연주를 따라 움직이는 닭이라기보다는 닭의 동적 이미지가 해금 연주로 취환된 것이니 곧 신화적 상상력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금 연주는 어미닭의 울음 소리로도 표상된다. 연거푸 들리는 닭울음 소리의 애절함은 해금 연주의 절정으로 상승한다. 목젖이 떨리는 소리는 병아리를 찾는 숨결과 뼈마디에서 우주에 고였다 빚어지는 음률이 있는 세상의 모든 어미의 울음으로 확장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해금 연주로 모성의 우주성을 드러냈다.

봄은 봄을 끌고 온다
봄은 봄을 데리고 간다

봄이 올 때마다 속고 마는 꿈
언제까지 웃자라는 존재일까?
-「열세 번째 초록」에서

낯선 길에서 만난 고라니
길을 헤매는 내 걸음처럼
고라니의 눈망울에도 맺혀 있다

후다닥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달린
이슬
-「숲」에서

정수월 시인은 몽상의 세계에서 길 위로 사유를 펼치기도 한다. 표제시 「열세 번째 초록」은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열세 번째 초록을 맞이한 것이다. 초록의 옹이인 봄은 평생을 건 꿈의 그리움이다. 봄은 초록의 원점이고 그리움이고 염원이고 희망이다. 열세 번째 봄 초록은 닿지 않는 미래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희망, 그리움은 봄을 끌고 와도 또 봄은 봄을 데리고 간다. 봄이 올 때마다 봄은 또 가버리고 그때 또 봄을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것이 열세 번째 초록이다. 희망의 역설을 노래한 것이다. 「숲」은 산길에서 만난 고라니 얘기다. 이 시에는 화자와 이슬과 고라니가 정서적 등가물로 드러난다. 숲의 고라니는 슬픔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산길을 걷다가 고요하고 맑은 이슬이 화자의 발걸음에 놀라 떨어져 내릴 때 눈물이 된다. 화자의 슬픔이 투영된 것이다. 낯선 산길에서 만난 고라니, 역시 길을 헤매는 화자의 걸음처럼 눈망울에 슬픔이 맺혀 있다. 후다닥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달려가는 고라니가 빠져나간 숲에는 부드러운 잎들이 몸을 흔들고 있고 풀벌레도 놀라 소리마저 끊어져 버린 숲길을 화자는 혼자 걷는다. 그럼에도 숲길은 위안을 베풀어주듯 고라니 꼬리처럼 좁다란 초록이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길 위의 산책으로서의 생의 통찰은 슬픔과 희망의 역설로 드러난다.

작은 발걸음으로 씨줄과 날줄을 서로 엮는 매듭
-「詩의 길」 전문

정수월 시인의 시에는 현실과 몽상의 신화적 상상력이 미덕으로 드러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화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몽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색의 길 위에서 슬픔과 희망의 역설이5는 생의 통찰로 시의 지경을 넓혀간다. 한마디로 예술가의 눈을 지닌 시인의 포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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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1부 꿈길

월아 마을
앵강만

환상통

유등
꿈길
넝쿨
해금奚琴
여름 갈전천
머리핀
이명
파문

꽃샘추위


2부 초록 여행

새벽
꿈길


초록 여행

덩굴장미
흑백사진
목련
동백꽃
자치기
로드킬
몽환
층층나무
연잎


3부 초록에 베이다


초록에 베이다
가면극
유랑
능소화
식물학
열세 번째 초록
동백, 동박새

동백꽃
어머니
너도 바람꽃
감나무
합장
여름밤에 시를 적는다
물수제비


4부 회색 울음

의암 바위

물수제비 2
물수제비 3
서열
나는 꿈꿨다


회색 울음
사랑하는 내 딸아
몽환
당신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오늘
詩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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